‘4월’이라는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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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태어난다.
부모는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마주하는 첫 번째 타자다.
사실 우리는 그런 애도를 진작 함께 경험한 적이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애도하는 공통감각을 유지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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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태어난다. 부모는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마주하는 첫 번째 타자다. 우리는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나를 만들기 시작하고, 그 뒤로 이어지는 수많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평생 동안 나를 만들어간다. 이 모든 관계는 그러니까, 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이렇게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서로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다. 내가 개별자가 아니라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고 사회 속에서 어떤 존재가 돼야 하는지 성찰하는 과정에서 윤리가 시작된다는 게 페미니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가 말하는 취약성과 윤리의 개념이다.
나와 관계된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나를 만들고 내 존재를 가능하게 한 조건의 일부를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니 상실은 곧 나의 일부를 지워야 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나와 관계된 누군가의 상실을 겪을 때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부정함과 동시에 사랑하는 이를 되찾기 위해, 적어도 잃어버린 이유라도 알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이들은 ‘죽어도 물러설 수가 없’이 간절”(이번호 ‘레드기획’)하다. 이유도 모른 채 나의 일부를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이번호 포커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7주기’에 실린 이등항해사 허재용(당시 32살)씨의 가족이 7년 동안 그랬다. 박근혜 탄핵 직후 권력 공백기에 발생한 침몰 참사에서 정부는 평소보다 더욱 무능했다. 가족은 물러설 수 없이 간절했다. 침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숙농성, 1인시위, 기자회견, 서명운동 등을 하며 7년을 보냈다. 주검 수습을 위해 국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런 가족이 올해부터 처음으로 ‘침몰 참사 7년’이 아니라 ‘7주기’라는 표현을 쓴다. 죽음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법적·제도적 판단이 조금이나마 나오면서 가족도 마침내 죽음 이후의 과정, 애도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이 애도는 가족을 넘어 사회로 이어질 수 있을까. 사회학자 엄기호의 생각을 빌리면, 나와 연결된 타자의 상실에 내가 “윤리적으로 연루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죽음이 희생자의 개인적인 불운과 사적인 비참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의 상처가 되고 공통감각이 됐을 때”(제1505호 ‘이야기 사회학’) 애도의 무대가 마련된다. 그렇다면 스텔라데이지호 선원의 가족이 느끼는 상실의 고통이 그들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감각이 됐을 때 애도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그런 애도를 진작 함께 경험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2014년 이전과 이후의 4월은 다른 계절이다. 2014년 4월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그 어떤 때보다 깊이 상실에 연루됐고, 그 어떤 때보다 간절한 고통을 함께 느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애도하는 공통감각을 유지해왔을까. 스텔라데이지호 참사를 비롯한 수많은 ‘제2의 세월호’ 참사들을 마주한 우리는, 세월호를 마주했던 우리와 같았을까. 10년은 애도를 완성할 수 있는 시간일까. 애초 애도에 완성이란 게 있을까.
<한겨레21>은 4월을 여는 이번호부터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려 한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스텔라데이지호 참사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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