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내가 사바나 캡짱!” 동시에 ‘맞짱 뜬’ 표범·하이에나·악어
표범이 사냥한 임팔라 손쉽게 빼앗는 하이에나
물 밖에서 나일악어 성큼성큼 등장하자 하이에나도 긴장
억센 턱힘으로 ‘줄다리기’ 끝에 몸뚱이 나눠가져
가엾은 임팔라가 태양이 작렬하는 사바나 복판에 거꾸러진 채로 있어요. 표범으로부터 일격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은 말짱해요. 살아서 도망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자꾸 고꾸라집니다. 그런데 ‘크르르르...’ 씨근덕대는 표범 뒤에서 기괴한 소리가 납니다. ‘우히히 킬킬킬 키득키득’ 웃는 것처럼 울어대 더 섬뜩한 하이에나가 종종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직 파헤쳐지지도 않은 임팔라의 살가죽 아래 고기와 피냄새를 일찌감치 맡은 거예요. 임팔라는 눈앞의 현실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런데 정면을 바라보니, 물웅덩이에서 악어 두 마리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네요. 임팔라의 선택지에 ‘생존’은 없습니다. 표범에게 물려죽거나, 하이에나에게 뜯겨죽거나, 악어 입에서 공포의 회전으로 공중분해돼 죽거나... 약자의 비애이자 먹잇감의 슬픔입니다. 윤리와 도덕 같은 건 없고 본능으로 무장한 야생의 법정에선 정의도 이성도 없습니다. 힘없는 게 죄입니다. 이 가련하고 죄없는 짐승은 힘없는 약자라는 이유로 법정최고형에 처해질 참입니다. 이 비참하고 비정한 상황에서 문뜩 이런 생각이드네요.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게로구나.
임팔라의 최후를 담은 사면초가 동영상이 얼마나 남아프리카 사파리 전문 매체 레이티스트 사이팅스(Latest Sightings)에 올라왔어요. IT전문가인 트레비스 카레이라가 남아공 크루거 국립공원과 접경한 메를로스 야생공원에서 촬영했어요. 안타까운 이 장면은 한편으로는 야생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표범, 하이에나, 악어 등 저마다 한 성깔 하는 야수들이 먹잇감을 두고 일합을 겨룬 거예요. 세계의 무림고수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일합을 겨루는 드래곤볼의 ‘천하제일무도회’의 아프리카 사바나 버전입니다. 한마리의 가련한 임팔라를 자기 뱃속으로 꾸역꾸역 집어넣기 위해 식욕에 눈이 뒤집힌 표범·하이에나·악어가 찰나의 시간을 두고 ‘맞짱’을 뜹니다. 사자의 뒤를 이어 나란히 ‘넘버 투’를 자처하는 이들의 서열이 실제 어찌되나 볼 수 있을 기회입니다. 우선 페이스북 동영상(Latest Sightings-Kruger)을 보실까요?
숨막히게 전개되는 ‘맞짱’ 동영상은 우리가 특정 동물에 대해 갖고 있는 통념이 하나하나 박살나는 과정입니다. 첫번째 등장하는 건 표범이에요. 이제 막 임팔라를 사냥했습니다. 아직 숨통이 끊기지 않은 임팔라가 버둥거리고 있어요. 여기서 표범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집니다. 나무가 우거진 풀숲 등 지형지물이 많은 곳에서 기습 매복 공격으로 먹잇감을 잡은 다음 신속하게 나무 위로 올라간다는 것 말이죠. 다음 페이스북 동영상(Latest Sightings-Kruger)은 표범의 전형적 사냥 패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 기습 공격해서 새를 사냥하려던 재칼을 덮쳐서 식사감으로 확보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번 상황에서는 탁 트인 초원에서 사냥에 성공한 놈은 어찌된 노릇인지 치타마냥 그 자리에서 해체·포식에 들어가려다 화를 자초합니다. 하이에나 중의 하이에나 점박이하이에나에게 피와 살냄새를 풍긴 거죠. 하이에나는 철저히 무리 단위로 죽은 사체만 탐닉하는 청소부라는 고정관념이 또 깨집니다. 속된 말로 놈은 ‘독고다이’였습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표범을 몰아내고 유유히 임팔라를 차지합니다. 이런 사냥방식은 이미 죽은 사체, 혹은 죽어가는 동물에 떼로 달려들어 썩은고기를 먹는 하이에나의 포식법과 결을 달리 합니다. 죽어가는 코끼리 몸뚱이를 먹어치우는 하이에나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Latest Sightings-Kruger)입니다.
이번 상황에서 하이에나는 숨통을 끊는 자비도 베풀지 않은 채 산채로 임팔라의 몸뚱이의 해체에 들어가려는데 이번에는 더욱 뜻밖의 광경이 펼쳐집니다. 물가에서 나일악어 두 마리가 기어나왔습니다. 빠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먹잇감을 향해서 거침없이 저속 불도저처럼 돌진합니다. 빼앗긴 임팔라를 되찾을 생각에 골몰해있던 표범이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장면이 선연합니다. 악어에 대한 통념도 와르르 무너집니다. 악어의 사냥법은 ‘데스롤(death roll-죽음의 회전)’입니다. 통나무배처럼 잠자코 물에 둥둥 떠다니듯 있다가 방심한 영양이나 얼룩말이 사정권에 다가오면 전광석화처럼 몸을 뻗습니다. 물속으로 먹잇감을 끌고 들어간 뒤 숨이 붙어있건 말건 그 자리에서 해체를 시작합니다. 얼룩말을 겨냥한 악어의 전형적인 데스롤 장면(Rolf Baerens Facebook)을 한 번 보실까요?
이빨을 몸뚱이에 콱 박고 몸을 빙그르르 돌려서 피와 살과 내장, 심지어 뿔과 눈코입이 그대로인 머리까지 우두두둑 뜯어내 씹지도 않고 허겁지겁 삼키는 ‘데스롤’이죠. ‘데스롤’공격은 악어가 움직임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지는 충분한 수심이 확보된다는 전제아래 가능합니다. 뭍으로 나가는 순간 악어의 움직임은 굼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죠. 그런데도 악어가 물에서 뭍으로 나와 수십m를 올라가서 먹잇감으로 돌진하는 장면은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운 장면입니다. 그만큼 놈들이 종족의 생활패턴을 휘뒤집을 정도로 먹는 데 집착합니다. 먹지 않으면 먹히고, 먹히지 않으려면 먹어야 하거든요.
여기서 잠깐 짐승들의 파워랭킹을 하나 소개해드립니다. 영국 BBC가 작년 4월 물어뜯는 힘(치악력)이 탁월한 짐승 10종류를 골라 순위를 매겼어요 측정단위는 psi(제곱인치당 파운드)로 g했을 때 10위부터 순위를 내보니 이랬습니다. 10위는 점박이하이에나(1100)·9위 회색곰(1160)·8위 북극곰(1200)·7위 고릴라(1300)·6위 황소상어(1350)·5위 재규어(1500)·4위 하마(1800)·3위 미시시피악어(2125)·2위 바다악어(3700), 그리고 마지막 1위는 짐작하신대로 나일악어(5000)였어요. 전세계에서 물어뜯는 힘이 가장 센 동물과 열번째로 센 동물이 먹잇감을 두고 맞붙었습니다. 서로 자기쪽으로 잡아당기려는 줄다리기 구도가 만들어졌어요. 가련한 먹잇감을 줄 삼은 잔혹한 괴수들의 줄다리기입니다. 놈들의 가공할 턱힘으로 양쪽에서 당기는 순간 두두둑 찌이이익 하고 근육이 파열되고 살점이 뜯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듯 합니다. 저마다 ‘사바나 캡짱’을 자처하는 짐승들의 뺏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싸움을 치열하게 벌이면서 멀쩡하게 살아숨쉬던 임팔라는 결국 ‘초가’가 울려퍼지는 ‘사면’을 벗어나지 못한 채 몸뚱이가 공중으로 흩뿌리듯 흩어지며 사바나의 영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혼이 빠져나간 임팔라의 몸뚱이의 대부분은 악어가 차지한 가운데, 끝까지 끈질기게 달려든 하이에나가 줄다리기 끝에 일부를 확보하는 것으로 이 치열했던 천하제일무도회는 마무리됐습니다. 맨 먼저 사냥을 하며 먹잇감을 확보한 표범은 맛도 제대로 못 본 채 헌납한 상황이 됐어요. 야수들이 한바탕 지지고 볶은 살육의 자리엔 티끌 하나 남지 않았습니다. 어스름이 깔리고 밤이 지나가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것입니다. ‘라이온킹’의 첫 장면처럼 말이죠. 이것이 생명의 바퀴(circle of lif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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