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씌워 싸우고 싶은 이들이 ‘파묘’를 역사전쟁에 끌어들여”[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비교종교학적인 관점에서 동아시아 종교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혁명을 기도하라> <무당과 유생의 대결> 등이 있다. 최근 조선시대 재판 추국에 대한 법정 속기록 <추안급국안>을 바탕으로 한 <왕의 수명을 줄여라>를 출간했다. 주요 논문으로 ‘미륵·용·성인’(역사민속학 33, 2010), ‘개벽(開闢)과 개벽(改闢)’(종교와 문화 34, 2018), ‘종교 자료로서의 심문 기록’(종교문화비평 37, 2020) 등이 있다.
민속신앙을 공적 영역과 연계시키려는 시도에 언론·정치권도 편승
상대에 대해 ‘나쁜 놈·멍청한 놈’이란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
박근혜 탄핵으로 박정희 권위는 상실…우파들에 남은 건 이승만뿐
예전엔 총선·대선 때 대놓고 예언·풍수를 말했지만 지금은 저항감 커
영화 보고 그냥 ‘재밌네’ 하면 문제없어…정략적 공세 경계해야
영화 <파묘>가 한국 오컬트(초자연) 영화 사상 최초로 관객 1000만명을 넘어섰다.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에선, 보기 드문 기록이다.
영화는 묘를 잘못 써서 자손에게 불운이 닥치는 일명 ‘묫바람’에서 출발한다. 미국 부잣집에 대물림되는 우환을 막기 위해 수상한 묘를 파버린 젊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을 그린다. 흥미롭게도 <파묘>는 친일파 집안에 우환이 잇따르는 이유를 ‘묫자리’뿐 아니라 ‘일제가 한반도에 박은 쇠말뚝’에서도 찾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 일제가 민족 정기를 끊기 위해 혈(穴)자리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일간 역사적 앙금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한 모양이다. 이름, 차 번호판 등 영화 곳곳에 숨겨진 ‘항일 코드’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N차 관람’을 이끌어 냈다. 영화 흥행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이 “반일을 부추기는 영화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영화의 주목도를 높인 측면도 있다.
한편으로, <파묘> 신드롬은 이야기 소재가 된 풍수나 무속 신앙이 예전 같은 ‘종교’는 아닐지라도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사람들의 보편적 관심사임을 방증한다. 그런데도 이것들을 공적 영역에서 언급하는 걸 꺼리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죽은 자들의 묫자리가 중요했던 이유는 뭘까?
<파묘>에 얽힌 이야기를 종교학자인 한승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지난달 28일 경기 성남시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예전부터 우리가 조상의 묫자리 등 풍수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사회상이랑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매달리는 문화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만 해도 과거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다들 좋은 묫자리를 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시험에는 장사나 농사에 비해 운의 영역이 많이 작용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이 신봉한 풍수·무속 같은 민속신앙은 현대에 와서도 한국인들의 삶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대통령실 이전 등을 이들에 의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국민이 많은 것은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한 교수는 민속신앙이 정치 등 공적 영역과 연계되는 데 대한 대중의 혐오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기폭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속이나 풍수 등이 공적 영역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파묘>를 둘러싼 정치적 편향 논쟁에 대해선,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 만드는 것에 대해 우리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역사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이런 현상들에는 편 갈라 싸움을 부추기는 정치권도, 이에 편승하는 언론도 자유롭진 않다고 했다.
- 영화 <파묘>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잘 만들었더군요. 영화엔 무속, 풍수, 장의사, 일본 음양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증도 충실합니다. 물론 무당들이 주장하는 영적 세계관이라든지, 풍수에서 이야기하는 조상과 후손들 사이 서로 감응하여 영향을 미친다는 동기감응설(同氣感應說), 그런 세계관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전제로 한다면요. 무당이 사용하는 어휘나 용어 등 세세한 뉘앙스도 잘 살렸고요. 영화 속 논란이 된 ‘쇠말뚝’은 상업적으로 재미있을 만한 소재를 가지고 온 것이고, 마케팅 차원에서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러한 논쟁 자체를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다른 문제겠지만요.”
- 종교 연구자로서 영화에서 특별히 걸리는 부분은 없었는지요.
“다른 분들도 지적하신 것 같은데요. 영화에 일본인 음양사 무라야마 쥰지라고 나오잖아요. (영화 주인공들의 이름이 독립운동가 이름과 같다는 점에서) 무라야마 쥰지는 실존 인물 무라야마 지쥰(1891~1968)을 겨냥한 걸로 보입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와서 많은 연구를 했어요. 총독부에서 조선인 통치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를 알아야 했을 거잖아요. 그런 이유로 조사를 맡긴 거죠. 그래서 무라야마 같은 경우에는 경찰 조직을 활용할 수가 있었고, 조선인들이 할 수 없던 굉장히 대규모의 조사가 가능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당시 종교집단들이나 무당들에 대한 연구라든지 마을의 민속 문화에 대해서 무라야마 책을 안 볼 수가 없어요. 그냥 이름을 살짝 비튼 거라곤 하지만, 학자를 음양사로 둔갑시켜서 그런 식으로 소비해도 되나 싶어서 그 부분이 좀 걸렸어요.”
- “대한민국 상위 0.1%가 대대손손 성공과 번영을 위해 기를 쓰고 매달린다”는 영화 속 묫자리에 관한 이야기는 <파묘>를 좀 더 대중적인 관객들의 관심사로 확장합니다. 묫자리 등 풍수는 동아시아에만 있나요.
“땅의 기운을 어떻게 하고 사람의 입지를 어디에 두는 게 좋은가, 묫자리를 어디에 쓰는가까지 포함해서 풍수사상이라고 하죠. 이를 감여술(堪輿術), 지술(地術)이라고도 하는데 그 안에도 여러 흐름이 있습니다. 중국·홍콩·대만 등 중화권, 일본, 조선시대부터 유행을 해서 한국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풍수는 계열이 약간 달라요. 크게 뭉뚱그려서 얘기할 때 중국·일본은 양택(陽宅)풍수 쪽이에요. 쉽게 얘기하면 집을 어느 방향으로 할지, 아니면 집 안 가구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를 다루는 겁니다. 요즘은 인테리어하고 연계해 많이 활용돼요. 한국에서는 조상의 묘를 잘 써서 후손들이 좋은 기운을 받고 성공한다고 하는데, 이를 음택(陰宅)풍수라고 합니다. 이 전통은 조선시대 이후 성행해 왔습니다.”
- 왜 흐름이 다릅니까.
“조선시대에는 ‘산송’이라고, 산에 있는 묘지를 둘러싼 소송들이 많이 있었어요. 조상의 무덤을 쓰면서 토지 소유 분쟁이 일어난다든지 아니면 파묘를 하는데 더 좋은 자리로 옮기기도 했지만, 남의 무덤을 파내기도 했어요. 동기는 다양해요. 풍수에 대한 신앙이 강하기 때문에 조상의 묘를 가지고 많이 싸웠을 수도 있어요.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어요. 조상묘를 잘 써서 성공한다는 것은 옛날로 치면 과거 시험이 영향을 많이 미쳤어요. 과거에 급제해야 가문의 명성도 올리고 고관대작이 되잖아요. 이는 장사나 농사에 비해 운의 영역이 많이 작용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조상의 발복이든 뭐든 무조건 받으면 좋은 거예요. 즉 과거 시험에 많은 사람들이 매달리는 문화였다는 것이 중요한 조건이었어요. 그와 달리 일본은 대대로 벼슬을 해먹는 경우였기 때문에 시험이 큰 의미가 없었어요. 중국은 시험을 통해서 관료를 뽑긴 했지만 한국에 비하면 수험생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단 말이죠. 한국에는 인구에 비해서 굉장히 많은 관료 예비군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보니 독점적으로 좋은 묫자리를 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사회상이랑 굉장히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 조선시대 유교는 ‘무속 타파’라는 문화 전반의 개조 작업에 나섰습니다. 그런데도 유교는 종교로서 색채를 상당 부분 잃어버린 반면 무속 신앙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교가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이죠. 유교의 조상에 대한 관점은 조상을 최대한 비인격화하는 방식이거든요. 예학의 차원하고 사람들이 실제로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낼 때하고는 감정이 달라요. 원칙대로 하면 묘에 가서 제사 지내면 안 됩니다. 사당에 모이는 혼백만 조상이고, 묘에는 육신의 껍데기만 있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거든요. 그런데 조선시대 유학자들, 우리가 아는 사람들도 여묘살이를 했어요. 원칙하고 감정적인 부분, 특히 ‘효’라고 하는 정서하고 너무 안 맞았던 겁니다. 반면 무속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다루는 방식은 전혀 다르죠.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욕구도 있고 무당에게 실려 살아있는 사람들한테 말을 걸기도 해요. 그러니 유교가 절대로 무속이나 다른 민속 신앙을 이길 수가 없었던 겁니다.”
-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풍수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데요. 그럼에도 한때 관저 이전을 둘러싼 ‘풍수’ 논쟁이 있었고, 국가 중대사의 결정을 이런 것에 의존하는 데 거부감이 큽니다.
“유학자들이 여묘살이를 했잖아요. 그런 식의 인지부조화를 현재 한국 대중도 비슷한 방식으로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미신 영역에 속하는 것은 뭔가 꺼림칙하다고 여기고 있고, 한편으론 공적으로 드러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내 일이랑 관련 있으면 그런 것들이라도 동원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하는 미미한 믿음도 갖고 있고요. 이런 것들이 동시에 작동해서 숨어서 하는 건 괜찮은데 공적으로 내 앞에 드러나게 하거나, 특히 책임 있는 사람들이 그러는 건 못 견디는 겁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의 행정수도 이전이라든지, 1990년대만 해도 총선이나 대선 때 대놓고 예언이라든가 풍수 같은 얘기들 하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 시기만 하더라도 큰 저항감이 없었는데 지금은 저항감이 커요. 저는 그 중요한 계기가 ‘최순실 게이트’였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최순실씨는 무속하고 전혀 관계가 없죠.”
-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이 <파묘>의 ‘반일’ 정서를 문제 삼아 ‘좌파’ 영화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이 된 측면이 있습니다.
“<서울의 봄> <건국전쟁>에 이어 <1980>도 개봉했잖아요. 이런 영화들이 총선 시기에 맞춰 쏟아져 나오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것들을 ‘역사전쟁’의 결과로 보는 것은 상당 부분 가상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끼우고 싶은 사람들이 지금 <파묘> 같은 영화에 약간 과잉 해석을 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일부 우파들이 보기엔 <파묘>에서 가장 도드라진 것은 반일 정서였나 봅니다. ‘좌파’와 ‘우파’가 왜 ‘반일’을 가지고 싸우는지 궁금합니다.
“이른바 한국의 진보 진영에는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이런 사람들도 있고 민족주의자들도 있잖아요. 서구 같은 경우 민족주의자들은 우파 쪽에 있어야 할 사람들인데 한국에서는 진보주의자란 말이에요. 그중에서 제일 때리기 좋은 건 뭐냐면요, 예를 들어 여러 진보 세력들이 모여서 어떤 정당에 있다고 하면, 그중에서 주체사상 따르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게 그 당을 깨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잖아요. 마찬가지로 ‘반일종족주의’라며 굉장히 강력한 민족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우파 입장에서는 ‘좌파들은 다 저런 멍청한 애들이야’라고 얘기하는 것이 굉장히 편리한 방법인 거죠.”
-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등 역사 논쟁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겠다는 움직임도 있고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박근혜 탄핵’과 함께 전통적인 권위를 굉장히 많이 잃어버렸잖아요. 쿠데타 일으킨 사람들 빼고 나면 남아 있는 사람이 이승만밖에 없어요. 그럼 뉴라이트 인사들이 이승만을 띄우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냐면 독립운동가들을 평가절하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러려면 조선이 굉장히 나쁜 놈이 될 필요가 있어요. 조선 왕조가 가만히 놔둬도 망할 나라였고, 일본이 근대화를 시켜줬다는 식이에요. 전형적인 우파들의 주장이죠.”
- 이런 역사 전쟁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역사 전쟁을 공론장의 영역으로 끌고 나와서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언론이 거기에 편승했나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구도를 만들기 좋으니까요. 실제로는 지금 양당 체제 안에서 다 있죠.”
- 그럼 뭘 경계해야 할까요.
“이미지화 시켜 얘기하면 허수아비 때리기죠. 상대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놈’ ‘멍청한 놈’을 만들어내 공격을 하는 거죠. 지금 벌어지는 역사 전쟁은 그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주의해야 해요. 자기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영화 보고 ‘그냥 재밌네’ 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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