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위축에 실적 ‘찬바람’, 유통가 구조조정 ‘칼바람’
중 이커머스 저가공세 위기감 키워
희망퇴직·인력 재배치 등 고육책
이마트, 계열사 대표 전격 경질도
신사업 등 ‘생존 전략’ 안간힘에도
어두운 전망에 ‘감원’ 이어질 우려
유통가에 부는 구조조정 칼바람이 매섭다. 실적 부진을 명분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업무 전환으로 인력을 재배치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고물가·고금리 속에서 소비심리가 위축된 데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초저가’를 무기로 국내 시장을 뒤흔들고 있어 ‘묘수’를 내지 않으면 인력 감축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정두영 신세계건설 대표이사를 전격 경질하는 등 회장 승진 후 첫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앞서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경영전략실을 개편하면서 실적과 성과 중심 인사평가제도를 구축했다.
신세계건설은 분양 실적 부진 등으로 지난해 말 부채비율이 900%가 넘었고, 이는 모기업 이마트의 사상 첫 연간 영업손실(469억원)까지 불렀다. 결국 신세계건설의 부실이 그룹 유동성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정 회장이 대표 경질 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쿠팡과 중국 알리익스프레스 등의 공세가 거세지자 이마트는 1993년 설립 이래 전사적으로 첫 희망퇴직 접수에 들어갔다. 이마트 관계자는 “4월12일까지 희망퇴직을 받는데 아직 규모는 파악하지 않고 있다”면서 “업무 전반에 간소화 프로세스를 구축해 인력 운영과 배치를 최적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11번가는 최근 두 차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인력 재배치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해 말 1차 희망퇴직 신청자가 10명이 채 안 되자 지난달 말 2차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외주업체에 주던 물류센터 업무를 내부 인력 50여명으로 대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11번가 측은 “비용 절감과 인력 효율화를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본격적인 구조조정 신호탄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주주인 SK스퀘어는 지난해 11번가 매각을 추진했지만 불발됐고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1번가는 지난해 영업손실이 1258억원으로 전년(1515억원) 대비 적자를 17% 줄이는 데 그쳤고, 2020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자금난을 겪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경기 흐름의 바로미터인 소비가 줄어 수익이 악화하면 인력 감축을 통한 비용 절감을 우선 고려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유통업계 전망이 여전히 어둡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유통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온·오프라인 시장이 요동친 데다, 최근에는 중국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의 한국 시장 공략이 거세지고 있다.
GS리테일은 매년 희망퇴직을 받기로 하는 등 인력 조정에 나서고 있다. GS리테일 측은 실적 부진에 따른 조치가 아닌,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복리후생제도라고 설명했다. 앞서 GS리테일은 2021년 GS홈쇼핑과 합병하면서 20년차 직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받은 바 있다.
롯데그룹 구성원들도 내심 긴장하는 분위기다. 롯데백화점은 2021년, 롯데면세점은 2022년 12월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롯데마트는 2021년 상·하반기에 이어 지난해 말 세 번째 희망퇴직에 들어갔다. 또 롯데하이마트는 2020년에 이어 2022년 한 차례 더 희망퇴직을 단행했고 롯데홈쇼핑 역시 지난해 9월 희망퇴직을 받았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현재 인력 조정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선제적으로 위기에 대응하고자 지난해 계열사별 희망퇴직을 모두 마쳤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위기를 희망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으로 넘을 게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소비 트렌드를 읽고 신사업을 발굴해 생존 전략을 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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