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대향로, 구멍 대충 뚫었다…아차 실수? 국보의 흠결[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반가사유상의 따로 붙인 동판
-국보경의 손으로 그린 동심원
-금관의 수리 흔적 ‘방치’
‘백제판 천존고(天尊庫)?’ 최근 국립부여박물관이 백제 국보관 설립을 위한 착공식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좀 객쩍은 비유이겠지만 신라 신문왕(681~692)이 만파식적(피리)과 거문고를 보관했다는 ‘보물창고’를 떠올렸다.
<삼국유사> ‘기이·만파식적’조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 비가 내리고, 비가 오다가 개이고, 바람이 멎고 파도가 잔잔해졌다”면서 “이것을 월성(도성)의 천존고에 보관했다”고 전했다.
‘신라 천존고와, 이제 세우겠다는 백제 국보관이 무슨 상관이냐, 웬 무리수냐’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백제 국보관을 만들고 수백년, 수천년이 지나면 신라 천존고와 같은 전설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새로 조성될 국보관(1543평·지상 3층, 지하 1층)에 입주할 ‘국보 유물’은 무엇이 될까.
“‘백제 금동대향로’,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등 사비 백제 시대(538~660)의 대표 문화유산이 되겠죠.”(신영호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그러나 그중 ‘원톱’은 뭐니뭐니 해도 금동대향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롭게 들어설 국보관을 아예 ‘백제 금동대향로’ 위주로 구성해보면 어떠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만파식적’ 중심의 천존고처럼….
■중국산이 아닌 이유
금동대향로는 1993년 12월12일 부여 능산리절터 공방의 목제 수조에서 극적으로 발견되었다.
볼수록 대단한 향로다. 뚜껑 꼭지에는 여의주를 턱 밑에 괸 봉황(추정)이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뚜껑 윗부분에는 5명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뚜껑은 첩첩 산중의 자연세계를 표현했다. 다양한 사람과 온갖 진금기수(珍禽奇獸)가 새겨져 있다. 받침대는 용이 우주의 삼라만상을 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해서 향로에는 사람 19명, 짐승 67마리 등 총 86개의 얼굴이 보인다. 향로를 친견한 연구자들의 첫마디는 ‘중국산 향로’라는 것이었다. 백제산이라면 이렇게 정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금동대향로=중국 향로’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우선 금동대향로 처럼 크고(61.8㎝), 무겁고(11.8㎏), 정교한 향로는 같은 시대(6~7세기)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또 금동대향로에는 전형적인 백제 요소가 표현되어 있다.
금동대향로 뚜껑에 표현된 삼산형(三山形)의 산은 부여 외리 출토 ‘무늬전돌 세트’(보물) 중 ‘산수인물무늬 전돌’과 비슷하다. 분위기 또한 유사하다. 향로의 꼭대기에 표현된 ‘봉황’도 ‘봉황무늬 전돌’의 표현과 흡사하다. 금동대향로의 대좌(용받침) 문양 역시 ‘반룡무늬 전돌’의 평면구도와 일치한다. 그래서 금동대향로와 무늬전돌을 제작한 백제 장인이 동일인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온다.
■삐뚤빼뚤한 구멍의 정체
그러나 금동대향로가 발굴된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연구자들이 ‘쉬쉬~’하고 넘어간 부분이 있다.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굳이 부각시킬 필요도 없는…. 그것은 금동대향로의 사이에 존재하는 ‘선명한 흠결’, 즉 향로 몸체 사이사이에 뚫어놓은 향연 구멍이다. 즉 향로 구멍은 모두 12곳이다.
맨 위 봉황의 좌우 가슴에 2곳, 뚜껑 윗부분에 10곳 등이다. 뚜껑 윗부분 구멍의 10곳은 윗줄에 5곳, 아랫줄에 5곳 뚫려있다.
이 구멍들이 좀 이상하다. 일정하게 뚫린 게 아니라 크기가 들쭉날쭉하다. 또 어떤 것들은 일정한 원형의 형태로, 또 어떤 것들은 부정형으로 뚫려 있다. 기존의 구멍을 크게 확장시킨 흔적이 역력다. ‘보이지 않는 곳의 흠결’이다.
아니 ‘백제예술의 정수’라는 금동대향로에 어떻게 이런 투박하고 거친 구멍이 송송 뚫려있단 말인가.
마침 2023년 말 향로 발굴 30주년을 맞아 열린 당시 조사원들의 집담회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다.
“윤무병 선생(1993년 발굴 지도위원·당시 원광대 교수)은 이런 들쭉날쭉한 구멍의 모양새를 보고 ‘역시 백제산이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여쭤봤죠. 그랬더니….”(신광섭 전 부여박물관장)
윤 교수의 해석은 기발했다. “백제인의 자유분방을 보여주기도 하고, ‘대충~대충’ 의식을 말해주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아니 뭐, 대충 대충 해유~’라는 충청인의 여유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12개 중 8개를 확장했다
거두절미 하고 어떻든간에 궁금증은 풀어야 한다. 절세의 명품인 금동대향로를 만든 백제 장인이 아닌가. 그런 분이 왜 기왕에 뚫어놓은 구멍을 그렇게 들쭉날쭉 넓혔을까.
조사보고서는 “작게 뚫어서 향이 원활하게 타지 않자 구멍을 인위적으로 넓힌 흔적”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실물 향로로 직접 향을 태워볼 수 없었으므로 그 이유를 정확하게 밝혀내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금동대향로 자체가 미완성품이거나, 혹은 ‘심각한 결격 사유(향을 피울 수 없는) 때문에 사찰의 나무물통에 버려진 것’이라는 견해까지 등장했다.
2017년부터 국립부여박물관 보존과학실이 ‘향연 구멍의 비밀’을 규명하기 시작했다.
박물관 측은 CT(컴퓨터단층촬영)와, 3차원으로 스캔한 원본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금동대향로의 정밀 재현품을 만들었다. 이것으로 향연 구멍을 실측한 결과 봉황의 양 가슴에 뚫은 구멍의 지름은 약 3.88㎜와 3.8㎜로 비교적 같았다.
윗줄 향연구멍 5개 중 2개(지름 4.63㎜와 4.65㎜)도 비슷했다. 그러나 다른 구멍 3개의 크기는 부정형(4.67~5.5㎜)이거나 약 8.4㎜, 8.75㎜ 정도로 컸다. 어떻든 3개의 구멍은 크기를 인위적으로 넓힌 것이 분명하다.
아랫줄 구멍(5개)은 어떨까. 4.9~8.94㎜ 정도로 측정되었다. 이 5개의 구멍 역시 원래는 작은 크기로 뚫었지만 제작과정에서 확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향연 구멍 12개 중 4개는 원래 크기였고, 나머지 8개는 확장했음을 알 수 있다.
세부적으로 짚어보자. 꼭대기 봉황의 좌우 가슴팍(2개)과, 윗줄 구멍 중 정면 쪽(2개)은 본래 뚫었던 크기로 그대로 두었다. 그러나 윗줄 구멍 5개 중 3개와 아래줄 구멍 5개 전부는 인위적으로 넓혔다.
■향이 꺼진 이유
왜 넓혔을까. 정밀 재현품을 두고 실시한 분향실험 결과 그 이유가 밝혀졌다.
먼저 아랫줄 구멍을 인위적으로 넓히지 않고 원래 크기대로(작게) 해놓고 분향 실험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연기(향)가 꺼졌다. 향불은 윗줄 구멍의 확장 여부와는 상관없이 꺼졌다. 무엇을 말해주는가. 향로의 아랫 구멍(5개)이 산소를 공급하는 흡입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불이 꺼지는 원리와 같다. 이러한 분향 실험을 토대로 1350여 년 전 향로 제작 당시의 상황을 복원해볼 수 있다.
즉 밀랍으로 정성스레 향로를 빚어 향 구멍 12개를 뚫은 뒤 주조했다. 그런 뒤 분향 실험을 해봤더니 ‘아뿔사!’ 향이 꺼졌다. 그러나 이렇게 정교하게 만든 향로를 어찌 버린다는 말인가. 원활한 산소 공급을 위해 향로 밑부분의 구멍을 ‘사정없이’ 넓힌 뒤 향을 피워보았다. 그랬더니 향이 온전하게 피어올랐다.
■배연공 3개는 왜 넓혔을까
이 대목에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아랫줄 구멍 5개가 공기(산소)를 공급하는 흡기공이라면 봉황 가슴 구멍(2개)과 윗줄 구멍 5개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리고 그 7개 중 왜 3개만 확장해놓았을까.
분향 실험 결과 봉황 가슴 및 윗줄 구멍 7개는 향 연기가 피어오르는(배출되는) 배연공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7개의 배연공에서는 크기와 상관없이 연기가 배출되었다. 다만 구멍의 크기에 따라 연기의 양과 불완전 연소량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백제의 장인은 왜 7개의 배연공 중 3개만 확장시킨 것일까. 아마도 아랫줄 구멍(흡기공) 5개를 확장시키는 김에 혹시 몰라 윗줄 배연공도 넓히려 했던 것일까. 그러나 굳이 배연공까지 확장시킬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중단한 것이 아닐까. 배연공이 커지면 불완전 연소량이 줄어(즉 완전 연소가 되어) 금방 타버릴 수 있으니까….
■향로 속 대류현상의 원리
그럼 되도록 오래 피워야 할 향불의 의미를 잃을 수 있다. 정리하자면 배연공의 ‘3(확장)+4(원 크기)’에는 향불의 연소 ‘황금비율’을 찾고자 한 백제 장인의 분투가 녹아있다고 할 수 있다. 공기를 공급하는 흡기공의 확장은 말할 것도 없고….
국립부여박물관의 분석결과 금동대향로 내부의 대류 현상도 읽을 수 있었다.
즉 향이 연소되면서 연기가 올라가 봉황(구멍 2개)과 윗줄 배연공(5개)으로 배출된다. 배출되지 않는 나머지 연기는 아래로 내려온다. 이때 아랫줄 흡기공에서 바깥 공기가 유입된다. 들어온 공기와 함께 연기가 향로 내부에서 순환한다. 열을 받은 공기가 다시 위로 솟으며 내부 순환을 계속한다.(황현성 국립박물관단지 통합운영지원센터 자료보존실장)
■78호 반가사유상의 흠결
이렇게 과학적인 분석 결과를 인용하며 금동대향로의 묘미를 찾아봤다. 그러나 거두절미하고 금동대향로의 명성 치고는 향로 속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흠결’이 좀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뭐 어떤가. 오히려 윤무병 교수의 언급대로 ‘자유분방함’과 ‘여유’, ‘유연함’이 녹아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뿐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보 중 ‘흠결의 멋’을 느낄 수 있는 문화유산이 한 둘이 아니다. 국보 반가사유상(옛 78호)을 꼽아보자.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78호 반가사유상 분석 결과 1500년 가까이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흠결을 찾아냈다. 감마선 촬영 결과 78호의 등 부위에 반타원형 동판을 따로 붙인 흔적을 확인한 것이다. 주조할 때 생긴 구멍을 동판으로 붙여 수리한 것이었다.
78호는 점토와 밀랍을 빚어 머리와 몸체, 그리고 왼발의 연화좌(불상이 앉는 자리)를 따로 만들어 붙인 뒤 청동쇳물을 부어 주조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렇게 ‘몸체 따로’, ‘머리 따로’, ‘왼발 연화좌’ 따로 만들어 붙였기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고, 그 사이 청동 쇳물이 흘러들어가니 거스러미(까칠까칠한 부분)가 생겼다. 또 다른 결함도 보였다.
■날씬미의 후유증
몸체와 머리, 왼발 연화좌 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쇳물이 흘러가지 않은 현상이 목격되었다. 이런 흠결의 이유도 있었다.
78호 반가사유상의 두께가 너무 얇았기 때문이었다. 분석결과 78호의 몸체 두께는 평균 4㎜에 불과했다. 또다른 반가사유상(옛 국보83호·평균 10㎜)의 40% 두께에 불과했다. 그러니 어찌되었겠는가. 밀납의 두께가 얇으니 청동 쇳물이 제대로 흘러 들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몸체와 떨어질수록 쇳물의 흐름 또한 원활하지 못했을 것이다
78호의 장인은 왜 이렇게 제작 과정의 어려움을 자초했을까. 적은 쇳물로 큰 불상을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그 당시 그렇게 날씬한 불상을 선호했기 때문일까. 그러한 흠결이 제작 1500년만인 이제야, 그것도 첨단과학의 힘에 의해 들통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78호 반가사유상의 반전매력일 수 있다. 78호 장인이 육안은 물론 X선 등으로도 구별할 수 없는 절정의 완성도를 과시하며 정밀 수리해냈다는 뜻이 아닌가.
■손으로 대충 그린 국보경 동심원
기원전 3~2세기(청동기·초기철기)의 대표 유물인 ‘고운무늬 청동거울’은 어떤가.
흔히 ‘국보경’으로 통하는 이 청동거울에는 반복된 동심원과, 그 동심원 안에 새겨진 무늬, 그리고 직선을 이리저리 규칙적으로 새긴 삼각문양 등이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확대경을 들이대고 세어본 선만 1만3000개가 넘는다. 선의 간격은 0.3~0.34㎜, 원의 간격은 0.33~0.55㎜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게 정교하고 완벽한 ‘국보경’에서도 몇가지 흠결이 발견된다.
우선 거울 주조 때 거푸집의 주물사에 수분이 너무 많았거나 점토분이 적어서 일어나는 결함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이와함께 눈길을 사로잡는 ‘착안점’이 따로 있으니, 그것은 동심원의 한 가운데를 장인의 손으로 대충 그린 흔적이다.
0.3㎜의 초정밀 문양까지 정교하게 그려낸 2300년전 장인이 왜 마무리 동심원은 대충 손으로 그렸을까.
그럴수밖에 없었다. 컴퍼스로 동심원을 그려보라. 한 가운데 동심원은 표시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가운데엔 컴퍼스를 그릴 때 생기는 자국(원점)이 존재했을 것이다. 아마도 청동기 장인은 그 자국을 주물사로 메우고 그 위에 화룡점정 하듯 마지막 동심원을 손으로 그려넣었을 것이다.
이 손그림을 국보경의 흠결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극초정밀의 예술을 보여주면서 일말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2300년 전 장인의 센스로 여길 수 있다.
■실수 방치한 신라금관
신라 예술의 정수인 금관은 어떤가. 그처럼 화려한 외모의 문화유산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약하기 이를 데 없다. 관의 세움장식은 아주 얇은 금판을 길쭉하게 오려 만들었다. 특히 관테에도 2개의 금못으로만 고정하고 있다. 그러니 “실제로 금관을 조금만 움직여도 세움장식이 꺾여 내려앉을 정도”(이한상 대전대 교수)라 한다. 그중 가장 먼저(1921) 출토된 국보 ‘금관총 금관’에서 ‘흠결’이 도드라진다.
즉 이 금관의 관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구멍이 상하 두 줄로 촘촘히 뚫려있다.
이 두줄 구멍은 무엇인가. 원래는 달개나 곡옥 등을 매달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금관 제작자는 마음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단순실수인지는 몰라도 미리 만든 2줄 구멍은 방치해두고 새롭게 3줄 구멍을 뚫어 곡옥과 달개를 달았다. 황남대총(북분) 금관(국보)에도 흠결이 보인다. 관테에 무늬를 잘못 새겨서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만들었다. 금령총 금관(보물)에도 잘못된 문양을 넣었다가 ‘아차!’ 싶었는지 다시 망치 같은 것으로 두드려 새긴 자국이 역력하다.
■또다른 매력, 파격미
다시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 집담회 현장으로 가보자.
당시 발굴의 실무를 맡았던 김종만 충청문화재연구원장(당시 연구원)가 중국 학자의 언급을 들려준다.
“중국 베이징(北京大) 교수가 그러더라구요. ‘중국 박산로는 저렇게(구멍을 확장시켜서) 쓰지 않는다. 구멍이 잘못되었으면 버리고 다시 만든다’고요. ‘따라서 금동대향로는 백제것일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시쳇말로 ‘멕이는’ 말로 들린다. 중국인들은 완벽을 추구하지, 그렇게 ‘대충’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는….
그러나 그것을 ‘여유있고, 실용적이며 융통성있다’는 식의 칭찬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 백제인 뿐인가. 신라의 장인도 다른 이도 아닌 임금(혹은 왕족)의 금관을 제작하면서 잘못된 금판을 재활용하는 ‘용기’를 발휘했다. 만약 금관이 임금(혹은 왕족)이 실제로 썼던 실용관이었다면 어떨까. 실수의 흔적을 모를 리 없는 임금(혹은 왕족)도 “괜찮다”고 허락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한결같이 관용과 여유가 한껏 배어있는 대한민국 국보의 면면이다. 아 참, 이 기회에 부각하는 금동대향로의 매력 하나. 그것은 파격이다. “용의 이빨이 선명하죠. 자세히 보면 이빨로 지구를 받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둥근 지구를 물고 승천하는 용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합니다.”(신나현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사)
아니 1300년전 백제인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기라도 했다는 건가.
또 하나, 금동대향로의 받침대를 보라. 용의 다리 하나를 꼬아서 힘차게 들어올렸다. 중국 향로, 어디에도 없는 스타일이다. 얼마나 자유분방하고 재치있는 표현인가.(이 기사를 위해 국립부여박물관의 신영호 학예연구실장·신나현 학예연구사, 황현성 국립박물관단지 통합운영지원센터 자료보존실장, 신광섭 전 국립부여박물관장, 김종만 충청문화재연구원장, 이한상 대전대 교수, 이한용 전곡 선사박물관장이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참고자료>
국립부여박물관, <향을 사르다>(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기념 특별전 도록), 2023
김선영·황현성, ‘분향실험을 통한 백제금동대향로 내부 대류특성 연구’, <보존과학지>35, 2019
국립부여박물관, <능사>(유적조사보고서 제8책), 2000
이한상, <황금의 나라 신라>, 김영사, 2004
민병찬, ‘금동반가사유상의 제작방법 연구-국보 78·83호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미술자료> 89, 국립중앙박물관, 2016
박학수, ‘국보 141호 다뉴세문경 거푸집의 조각 도구와 방법’,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추계학술대회, 2019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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