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증원 당위성 51분 설명 … 대통령실 "숫자에 매몰되지 않겠다"
2035년까지 1만5천명 늘려야
정부 출범후 37차례 증원 논의
점진적 증원, 9번 싸워 모두 져
담화 이후 의료계 반응 차갑자
성태윤 정책실장 "유연 검토"
◆ 尹 대국민 담화 ◆
대통령실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문제에 대해 종전보다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극한 대치를 해온 의료계와 협상 테이블이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KBS에 출연해 "2000명이라는 숫자가 절대적 수치란 입장은 아니다"며 "2000명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의대 증원 규모를 포함해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성 실장은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전향적인 입장에서 의대 증원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오랜 기간 동안 절차를 거쳐 산출한 숫자이기 때문에 이해 관계자들이 반발한다고 갑자기 1500명, 1700명 이렇게 근거 없이 바꿀 순 없다"며 "그래서 (의료계가) 집단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 조정안을 제시해 주면 낮은 자세로 이에 대해 임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2000명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다"며 산정 근거를 조목조목 설명했을 때만 해도 증원 규모 유지에 방점이 찍혔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자 성 실장이 방송에 나와 정부 입장을 설명함으로써 협상 가능성 쪽으로 무게추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로는 이례적으로 긴 시간인 51분간 의료개혁과 관련해 국민에게 입장을 직접 설명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가진 세 차례의 대국민 담화 중 가장 긴 담화문이었다. 2022년 10월 이태원참사 대국민 담화는 2분, 작년 11월 부산엑스포 대국민 담화는 10분가량이었다. 특히 51분 중 절반이 넘는 30분가량을 2000명이라는 숫자가 도출된 배경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추계를 검토했다"며 "어떤 연구 방법론에 의하더라도 2035년에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어 2035년까지 최소한 1만5000명의 의사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와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다양한 협의 기구를 통해 37차례에 걸쳐 의사 증원 방안을 협의해 왔다"며 작년 2월 9일부터 지난 1월 16일까지 회의 날짜와 정부의 요청 내용을 모두 밝히기도 했다.
특히 "1월 15일과 16일에 걸쳐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6개 단체에 공문을 보내 적정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의견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고 의료계를 비판했다.
이와 함께 담화에서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 대응, 건설 현장 '건폭' 개혁, 원전 생태계 복원 등 이익단체들의 반발에도 굴하지 않고 정면 돌파했던 정책을 일일이 거론하기도 했다.
또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식 당시 착용했던 하늘색 넥타이도 맸다. 초심을 되새기며 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의료계에서 통일된 안을 가져오면 논의할 수 있다고 열린 입장을 밝히기는 했으나 담화문 전체 맥락으로는 '이 정도로 폭넓은 검토를 해서 도출된 숫자인 만큼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의료계에선 강력한 반발이 나왔고 여당의 반응과 여론도 좀 더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형성됐다. 이를 윤 대통령이 수용하면서 오후 들어 대통령실의 입장이 좀 더 유화적으로 바뀌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성 실장이 단독으로 유연한 입장을 밝혔다기보다는 대통령실의 분위기 변화를 전달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했다는 해석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의료계와의 극한 대치를 해소하기 위해 유화적 자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의료 개혁에 대한 국민 지지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환자들의 불편과 총선에 미칠 영향 등을 감안할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날 윤 대통령도 파업 중인 전공의들을 향해 간곡한 호소를 내놨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고 또 수많은 국민의 건강을 지켜낼 여러분을 제재하거나 처벌하고 싶겠냐"며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매우 중요한 미래 자산"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제가 의료개혁을 통해 제대로 된 의료시스템을 만들겠다"면서 "의사단체는 하루라도 빨리 정부와 테이블에 앉아 무엇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길인지 논의에 나서야 한다"며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등 사회적 협의체 구성을 촉구했다.
이날 오후에는 2차 의료기관인 대전 유성구의 유성선병원을 직접 방문해 의료진을 격려했다. 지난달 26일 2차 의료기관인 청주 한국병원을 찾은 데 이어 의료진의 건의 사항을 청취하는 '현장 행보'를 보인 셈이다.
이날 한 의료인이 환자가 1차 병원 진료 후 3차 병원으로 바로 갈 수 있어 2차, 3차 병원 간 역할 분담이 기형적이라고 지적하자 윤 대통령은 "지역 2차 병원이 수준 높은 진료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재정을 투자하고, 대학병원들은 의학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우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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