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한국 축구 대표팀, 서울시향 츠베덴과 같은 감독 필요" [김기자의 문화이야기]
츠베덴과 각별한 인연…함께 사회 공헌 재단 활동 '열심'
축구와 오케스트라의 공통점 찾고 우정 쌓아가
"새 감독을 선임해야 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감독 자리에 한 팀을 잘 만들 줄 아는 지휘자인 얍 판 츠베덴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2002년 한국 국가대표팀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거스 히딩크(78) 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오늘(1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홍보대사로 위촉된 자리에서 현재 공석인 축구 대표팀 감독 자리를 언급하면서 뼈있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음악계의 거장 중의 한 명이자 동향인 네덜란드 출신인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과 같은 리더십이 차기 축구 대표팀 감독에게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츠베덴은 음악감독을 맡은 홍콩필을 세계적인 수준의 악단으로 키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히딩크 전 감독은 "츠베덴 음악감독은 완벽한 팀을 구성하고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전문가"라고 말하고는 "할 의향이 없느냐"고 익살스러운 질문을 던지며 츠베덴을 치켜 세웠습니다. 이에 츠베덴 음악감독은 "서울시향을 맡고 있어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안타깝지만 어려울 것 같다"고 화답했습니다.
다만, 최근 카타르 아시안컵에서의 한국 축구와 관련한 구체적인 조언에는 답을 피했습니다. 히딩크 전 감독은 "한국 축구에 대해 진지하게 답변해 드리고 싶지만, 오늘은 축구에 대해 이야기를 할 자리는 아니다"라며 "오는 7일 츠데벤이 펼칠 서울시향의 '경기(연주회)'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위촉식과 동시에 이어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히딩크 전 감독과 츠베덴 음악감독이 들려준 두 사람의 우정 이야기를 풀어 봅니다.
네덜란드 출신인 히딩크 전 감독과 츠베덴 음악감독의 인연은 히딩크 전 감독이 수년 전 TV에서 츠베덴의 공연 모습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먼저 츠베덴에게 연락을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히딩크는 "얍(츠베덴)이 운동복을 입고 세밀하게 연주자들의 연주를 가다듬는 모습을 보았다"며 "모든 연주자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고 팀이 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축구 감독과 지휘자가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 먼저 연락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를 떠올린 츠베덴은 "히딩크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전설적인 인물이고 연락을 줬을 때 참 좋았다"고 말했고 "우리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히딩크와 츠베덴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을 지원하는 '파파게노 재단'에서 함께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츠베덴이 부인과 함께 1997년에 설립한 파파게노 재단은 네덜란드에서 전문 음악 치료사를 연결해 재택 음악치료를 제공하고 이들의 가족을 지원합니다. 파파게노 하우스에서는 자폐 조기 진단·치료·음악 치료의 효과를 분석하는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히딩크는 선수 시절 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특수학교에서 장애아들을 지도했습니다. 2007년부터는 '거스 히딩크 재단'을 설립해 장애인·다문화가정·취약계층 어린이들이 축구를 통해 희망과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드림필드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츠베덴은 앞서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지난해 4월 먼저 무보수 지휘를 자청해 '서울시향이 드리는 아주 특별한 콘서트'를 열고 재능 있는 발달장애 바이올리니스트인 공민배 군과 협연하기도 했습니다.
히딩크 전 감독과 츠베덴 음악감독은 리더십 스타일이 상당히 비슷합니다. 둘은 선수가 됐든 연주자가 됐든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최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를 위해 두 사람은 개선할 점을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을 맡았을 때 젊은 선수들이 자신이 골 득점을 할 기회가 있음에도 선배에게 그 기회를 넘겨주기 위해 주저하거나 기다리는 경우가 있었다"며 "좋은 마음이지만 축구 경기를 할 때는 상당히 비생산적인 일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왜 본인이 득점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선배인 선수에게 영광을 돌렸다고 말했는데 사회에서 연장자를 존중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지만 축구를 할 때는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해서 직접 이야기해 바꾸고자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츠베덴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직설 화법(돌리지 않고 말하는 방법)'으로 개선해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하는데 그 태도가 가끔은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한다"며 "얼마나 유연해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서울시향과 일할 때도 저는 열려 있고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고 말했고 "서울시향은 구성원들이 직업 윤리가 잘 정립되어 있고 융통성 있게 반응하고 집중도 잘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오랜 우정을 맺은 히딩크에 대해 츠베덴은 "히딩크는 선수 훈련을 혹독하게 시키지만, 막상 경기장에서 선수들은 매우 행복한 표정으로 뛴다"며 "저 역시 즐거운 연주가 중요하다 생각하고 그러려면 꾸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상대방이 즐기게 하면서 스스로도 즐기는 그에게서 늘 배운다고 말했습니다.
축구와 오케스트라가 닮은 점에 대해서는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팀으로 연주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각자가 자기 악기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며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고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연주를 향상할 수 있다는 점이 축구와 유사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히딩크와 츠베덴이 모두 남프랑스로 향해 별장에서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고 음악을 듣고는 한다는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히딩크는 뛰어난 요리사이고 서로의 별장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때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둘은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지만 좋아하는 팝음악의 스타일도 겹칩니다. 특별한 주제 없이 많은 대화를 하기도 하고 정적도 즐긴다는 두 사람. 공통점을 찾던 츠베덴은 "스포츠와 예술은 사람들을 함께 하나로 만드는 공통점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네덜란드 출신인 두 사람이 오래 맺어온 우정은 서울에서 더 깊어지게 됐습니다. 츠베덴과의 인연으로 무보수 명예직인 서울시향의 첫 번째 홍보대사로 위촉된 히딩크 전 감독은 이날 기쁜 마음으로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했다고 밝혔습니다.
히딩크 전 감독은 츠베덴 음악감독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28년 12월 31일까지 서울시향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서울시향의 해외 순회 공연에 동행하면서 서울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설 계획입니다.
서울시향이 서울시의 ‘약자와의 동행’ 사업으로 추진하는 ‘행복한 음악회, 함께!’, ‘아주 특별한 콘서트’와 연계한 프로젝트 홍보 등에도 참여할 예정입니다. 히딩크 전 감독은 “음악과 교육을 연결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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