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센터장’ 컨설팅 따랐더니… 수억대 빚더미 올랐다
연간 약 40만 명의 도시인이 귀농·귀촌에 뛰어들면서 이들의 이주를 노려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귀촌 인구 가운데 30대 이하가 45.5%(2022년 기준)에 이르면서, 사회 경험이 적은 청년들의 미숙한 행정 경험을 노린 사기 행각이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청년들이 귀촌 상담을 받으러 지역 시청을 방문한 뒤 시청 공무원이 소개한 지역 귀농귀촌센터장의 안내에 따라 땅과 집을 계약했다가 빚더미에 앉게 된 2016년 전북 남원시 ‘지구인자연농장’(이하 지구인) 귀촌 청년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출받아 토지에 집을 네 채 지으라는 ‘센터장’
<한겨레21>은 자신들이 겪은 사기 피해를 유튜브로 알린 ‘지구인’ 이은희, 김유진, 이원석씨를 2024년 3월6일 화상 인터뷰했다. 세 청년은 수도권에서 각각 요리사(이원석), 패션업 종사자(김유진), 교사(이은희) 등으로 일하다 2016년 ‘농어촌 인성학교’ 건립을 꿈꾸며 뭉쳤다. 인성학교는 학생들에게 농어촌 체험과 인성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시설이다. 김유진씨는 “원래 곡성(전남)을 생각했는데, 가는 길에 남원이 눈에 들어 왔다. 꽃이 예뻐서 이 지역 귀촌을 알아보게 됐다”고 했다.
남원시청을 방문한 청년들은 시청 담당자의 소개로 귀농귀촌센터장 김아무개씨를 만났다. “김씨가 ‘인성학교를 차려줄 수 있다’고 해서 기뻤어요. 그가 사라는 토지를 샀고, 집을 네 채 지어야 한다고 해서 그러기로 했어요. 모든 비용은 그가 권하는 대로 귀농창업대출을 받았습니다.” 김유진씨가 말했다.
김유진씨를 비롯한 청년들은 애초 집을 여러 채 지을 필요도 없었고 대출도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김씨가 집 네 채 짓기와 대출을 강하게 권했다. 청년들은 그를 공무원으로 생각해 권유를 따랐다. 집 지을 토지 매입에만 약 1억9천만원(다른 청년 1명 포함한 4명 소요 비용)이 들었다. 김유진씨는 “김씨는 우리가 사는 토지는 대지이고 분할된 필지라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대지가 아닌 답(논)이었고 분할되지 않은 한 필지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청년들이 산 땅은 김씨와 관련 있는 땅인데다 주변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받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김유진씨는 “이 땅은 원래 김씨 아내 소유였다가 2014년 김씨와 가까운 지인 ㄱ씨에게 6천만원에 팔렸다”며 “ㄱ씨는 이 땅을 사고 불과 2년 만에 1억9천만원을 받고 우리에게 팔았다. 게다가 김씨는 지역 유지였을 뿐 공무원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해당 토지에 집을 짓는 작업 역시 ㄱ씨의 건설사가 나서서 했고, 청년들은 대출 등을 포함해 별도의 건축 비용도 2억3천만원 치러야 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과정을 거쳐놓고도 정작 김씨가 약속했던 인성학교는 세울 수 없었다. 이미 남원에는 인성학교가 있었던 탓이다. 인성학교는 권역별로 하나만 지을 수 있다.
시 지원 사업 받으려 “전입 전에 주소지 이전하라”
어쩔 수 없이 남원에 입주한 청년들은 다른 사업을 이어가기도, 산 집과 땅을 되팔기도 힘든 처지가 됐다. 결국 남원에서의 삶은 빚만 잔뜩 남기게 됐다. 이원석씨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10억원(‘지구인’ 합친 금액. 집 건축, 땅 매입, 사업비 등 포함) 남짓 대출했다. 이자 비용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김유진씨는 “김씨가 ‘소규모삶터’라는 시 지원 사업을 받기 위해 우리를 이용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규모삶터 지원 사업은 귀농인에게 지방자치단체가 5천만원 이내의 기반공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다섯 가구가 모여야 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이곳에 귀농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이주를 취소하면서, 김씨가 김유진씨 등 청년들을 속여서 이 사업에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2017년 전라북도청 감사관실은 남원시 소규모삶터 지원 사업에 대한 감사에서 “당초 사업을 신청한 4명 전부가 입주를 포기했는데도, 입주자 변경을 위한 모집공고 등의 적절한 조치도 없이 김유진씨 등 4명(청년들)을 입주하게 하는 등 위 사업을 소홀히 추진했다”며 담당자 훈계 조처를 주문했다. 하지만 정작 김씨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청년들은 2017년 김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그를 불기소 처분했다. 사기의 고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이주 인구 증가에만 신경 썼을 뿐 이주한 청년들이 어떤 상황에 휘말렸는지 무관심했고 심지어 사기 행각을 방조하기까지 한 남원시의 책임이 크다. 2016년도 남원시 행정사무감사 자료를 보면, 이해에만 김유진씨 등 청년 3명을 포함해 귀농인 창업지원을 받은 14명이 같은 주소지로 전입신고가 돼 있다. 김유진씨는 “김씨는 귀농·귀촌 사업 대출 신청서를 넣기 위해 남원 주소가 있어야 한다면서, 전입해 오기 전에 주소지 이전을 권했다”며 “이렇게 수십 명이 같은 주소로 전입했다”고 말했다.
남원시는 ‘지구인’ 사건 관련 설명문을 내어 “농지가 더 필요하니 주변을 잘 아는 분을 안내해달라고 해 안내했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놨다. 전북도의 감사 사실을 두고는 “소규모삶터 사업 지침을 강화해 기획부동산 등 투기성 사업을 적극 견제해나가고 있다”고만 밝혔다. 김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으나, 답변하지 않았다.
애견브리딩·묘목 수익… 조심 또 조심
이 청년들이 겪은 사기 사건은 귀농·귀촌인이 적지 않게 겪는 일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8년 귀농·귀촌 사기 피해 사례를 모아 홍보물을 배포했다. 이 자료는 피해 유형을 다섯 가지로 소개한다. 첫째가 싼값에 토지나 집을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다가 투자금을 가로채는 ‘기획부동산형’이다. ‘지구인’이 겪은 일과 유사하다. 둘째는 예비 귀농인에게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자며 투자를 권하는 ‘영농조합법인형’이다. 묘목(묘목상), 종모견(애견브리딩), 곤충(곤충산업) 등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며 금전 피해를 입히는 유형도 있다.
귀농 8년, 세 청년에게는 빚과 활용하기 어려운 땅, 난방이 잘되지 않는 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은희씨는 “처음 귀촌을 알아볼 때는 희망에 차 있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세 청년은 인터뷰가 끝난 뒤 <한겨레21>을 통해 예비 귀농·귀촌 청년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보내왔다. “연고 없이 귀농·귀촌을 한다는 것은 전혀 모르는 타국에 이민 가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만큼이나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중략) 많이 조심하시고 또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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