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 문제 안 삼던 여심위…기존 조사와 격차 크자 "공표 말라"
3월19일 '3대 벨트' 조사 보도
전화 방식과 다른 모바일웹조사
여심위, 28일까지 문제 제기 안해
27일부터 지역구 조사 발표
용산·분당 등 與후보가 앞지르자
野 강성 지지자들 신뢰 문제 제기
31일 사실상 조사 공표 중단 요구
여심위 "조사방식 위법 소지 있어"
주요 선거를 앞두고 이뤄지는 여론조사의 적절성에 대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 조사는 신속성을 생명으로 한다. 조사 결과 발표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심위는 한국경제신문이 의뢰해 피앰아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대해 12일간에 걸친 조사 끝에 ‘공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일부 지역구의 조사 결과가 전화면접·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이뤄진 조사들과 다르게 국민의힘에 유리하게 나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항의가 빗발친 게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조사 10일간 문제 안 삼더니
한국경제신문이 피앰아이에 처음 여론조사를 의뢰한 건 지난달 초다. 이번 총선의 접전지인 한강·반도체·낙동강 등 3대 벨트를 대상으로 조사를 의뢰했다. 당초 한경과 피앰아이는 3대 통신사 가입자 2300만 명을 기반으로 조사 대상을 선정해 정밀성을 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심위가 ‘기준이 없다’며 난색을 나타내 전체 가입자에서 인구 비례에 따라 추출한 274만 명의 패널을 대상으로 모바일웹 조사를 했다. 이번 조사 방식에 대해 여심위가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사전 협의를 한 셈이다.
3대 벨트 여론조사 결과는 지난달 19일자 한국경제신문에 보도됐고, 여심위는 20일 피앰아이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였다. 모바일웹 조사 방식이 여심위에도 생소해 검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여심위 관계자들은 두 차례 현장조사와 자료 요청 등을 통해 피앰아이의 조사 방식을 상세하게 검증했다. 조사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연령대 및 성별, 지역별 안배 프로그램과 소프트웨어, 인위적인 조작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로그 기록까지 전반적인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피앰아이가 구축한 패널 274만 명의 거주지 등 개인 정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업체 측은 “동별 거주지 등 개인 정보를 외부에 넘기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상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한경과 피앰아이는 이후 14개 지역구 선거구에 대한 가상대결 여론조사를 지난달 22일부터 실시했다. 조사를 시행한 이후 4개 여론조사가 온라인에 표출된 28일까지 여심위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여심위 사이트에 등록된 결과표와 관련해 간단한 수정 사항을 조사업체에 통보했을 뿐이다.
민주당 지지자 항의 쇄도
이 같은 여심위 기류가 바뀐 건 29일께다. 서울 용산, 중·성동갑, 경기 분당갑 등의 지역구에서 다른 조사와 달리 국민의힘 후보가 앞선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이 여론 조사의 신뢰성을 문제 삼기 시작한 시점이다.
야권 지지자들은 해당 기사를 작성한 한경 기자에게 수십 통의 항의 이메일을 보냈다. “여론조사를 하랬더니 여론조작을 한다” “윤석열 같은 X가 대통령인 나라에 살고 싶냐” “한심한 기레기” 등 인격을 모독하는 내용이 다수 담겼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여론조사 유관 기관에도 항의 전화가 잇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29일 오전 피앰아이를 찾은 여심위 관계자는 ‘우리도 부담되니 남은 조사는 공표하지 말아달라’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한경이 계속 보도를 이어가자 피앰아이 직원들이 퇴근한 오후 6시30분에 “10여 건의 추가 자료를 30일(토요일) 오후 3시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피앰아이 측은 휴일에 방대한 자료를 제출할 수 없음을 이유로 제출 기한을 31일 저녁으로 하루 미뤘다.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심위는 행정동별 구체적인 인적 사항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해당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위법이라고 통보했다.
여심위 “정상적인 절차 밟았다”
여심위 측은 “조사 결과 공표 금지를 통보한 건 아니고 위법 소지가 있을 수 있어 기준을 안내했을 뿐”이라며 “야권 지지자의 반발로 추가 조사에 나선 것도 아니다”고 해명했다. “여론조사 과정이 위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자료를 (여심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등록하지 말라”고 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기관이 위법을 언급한 것은 사실상 공표를 금지한 것과 같은 효과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여심위는 20일부터 시작된 조사가 길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여론조사업체의 비협조를 이유로 들었다. 여심위 관계자는 “20일 현장 실사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했지만 분석에 시간이 걸린다”며 “분석 이후 추가 자료를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충분한 데이터를 얻지 못해 29일 저녁에 급히 자료 제출 요구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했다. 다만 “해당 업체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노경목/설지연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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