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수 진실화해위 국장이 ‘변장’하는 이유 [현장에서]

고경태 기자 2024. 4. 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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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이 변장을 하고 나왔다." 지난 26일 오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제75차 전체위원회가 열린 대회의실.

조사1국의 한 조사관은 "황인수 국장이 전체위원회 등 외부에 공개되는 자리에서만 얼굴을 가린다"며 "조사관들 사이에서는 '변장했다'는 표현을 쓴다"고 했다.

"황인수 국장 사진 내보내지 말아주세요." 지난해 10월17일 오후 제64차 전체위원회 광경을 촬영하고 나오던 한겨레 사진기자는 진실화해위 대외협력담당관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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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6일 열린 진실화해위 72차 전체위원회에서 황인수 조사1국장이 보고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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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이 변장을 하고 나왔다.”

지난 26일 오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제75차 전체위원회가 열린 대회의실. 김광동 위원장이 개회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몇 차례 위원들의 발언이 이어진 뒤 황인수 조사1국장이 보고석에 앉았다. 한국전쟁기 집단희생 사건을 다루는 제1소위원회 의결 결과를 보고하는 순서였다. 그는 두꺼운 뿔테 안경과 마스크를 쓴 차림이었다. 조사1국의 한 조사관은 “황인수 국장이 전체위원회 등 외부에 공개되는 자리에서만 얼굴을 가린다”며 “조사관들 사이에서는 ‘변장했다’는 표현을 쓴다”고 했다.

마스크 착용은 개인의 자유다. 감염병 유행 시대에 위생을 지키는 수단이기도 하다. 특별한 자리에서만 안경을 쓴다면 패션의 일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마스크와 안경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황인수 국장 사진 내보내지 말아주세요.”

지난해 10월17일 오후 제64차 전체위원회 광경을 촬영하고 나오던 한겨레 사진기자는 진실화해위 대외협력담당관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 사진기자를 보고 황 국장이 “얼굴 사진을 내보내면 곤란하다”고 대외협력담당관실을 통해 요청한 거였다.

그다음 회차인 10월31일(65차)부터 황 국장은 두꺼운 안경과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꽁꽁 가린 채 전체위에 등장하고 있다. 10월13일 김광동 위원장, 이옥남·이상훈 상임위원 등과 함께 나온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장에도 ‘변장’을 하고 나왔다. 평소에 그는 맨 얼굴로 다닌다고 한다.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지난해 10월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선서하고 있다. 뒤 왼쪽부터 이상훈 상임위원, 정영훈 조사2국장, 김헌준 기획운영관, 황인수 조사1국장, 이옥남 상임위원. 평소에 맨얼굴로 다니는 황인수 국장은 안경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그는 국가정보원 출신이다. 대공 수사 3급 간부를 지냈다. 국정원의 전신인 방첩대(CIC)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 가해 집단 중 하나여서, 국정원 출신이 조사 주체가 되는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그의 채용 때부터 불거졌다. 역대 진실화해위에 국정원을 비롯 행정안전부·국방부·검찰·경찰 출신 공무원들이 파견을 나온 적은 있으나, 이들이 고위직 공무원으로 임명된 적은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채용됐다. “한국전쟁기 부역 혐의 희생자 중 실제 부역자가 있는지 세심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김광동 위원장의 의중이 실린 인사였다.

그는 ‘사진 비공개’ 요청 이유로 국정원 활동 이력을 들었다. 황 국장은 대외협력담당관실에 “국정원 수사관 시절 신분을 숨기고 한 활동 때문에 얼굴과 이름이 알려지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조사관들에게는 같은 이유로 “(나를 도와준) 정보원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신분이 노출되는 고위공무원단에 스스로 지원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아직도 ‘간첩 잡던 국정원 대공수사관’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국가 폭력 피해의 진실을 밝혀내 과거와 화해’를 도모하는 진실화해위를 이끌어간다는 데 있다.

그는 올해 1월2일 조사관들에게 신년 편지를 보냈다. “현재도 매년 1월8일 북한 김정은이한테 생일 축하편지 쓰는 대한민국 국민이 수만 명입니다. (중략) 십수년간 이런 사람을 막아보고자 노력했지만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중략) 못 이루었던 결실을 여기서나마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0월17일 열린 진실화해위 64차 전체위원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맨 오른쪽에 황인수 조사1국장의 모습이 보인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조사관들에게 ‘집단희생 진실규명을 신청한 유가족들이 돈을 뜯어내려고 거짓말을 한다’는 식의 발언도 일삼았다. “북한이 가해자라는 것을 알고 보고서를 쓰라”고 하면서 유가족들을 의심하고 다그치듯 조사하라는 식의 교육도 해왔다고 한다.

공개석상에 나설 때 안경과 마스크로 ‘변장’하는 황인수 조사1국장은 진실화해위에서도 여전히 국정원 수사관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듯 하다. 외부에 공개되는 다음 전체위원회는 4월16일 오후 1시30분 열린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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