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깊어진 분단, 한국 총선’

강구열 2024. 3. 3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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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언론, 이웃나라 선거에 관심
극단화된 정치 실태 보도 씁쓸
갈라진 틈 메우고 통합 노력 대신
승리에만 목숨 건 정치권 눈살

“총선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야당이 이기면 한·일관계가 또 어려워질까요?”

일본인 친구가 얼마 전 같이 식사를 하다 던진 질문이다. 서울에서 한동안 생활하기도 했던 그는 일본에 돌아온 뒤에도 인터넷에서 한국 관련 기사를 찾아볼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다. 요즘의 화두는 한국 총선인 모양이었다. 기자라면 자신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겠거니 싶었나 보다. 나름의 대답을 하긴 했지만 ‘그걸 누군들 알겠어요’라는 게 솔직한 생각이었다. 정치 역동성이라면 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꿀릴 게 없는 한국 아닌가.
강구열 도쿄 특파원
돌이켜 보면 그에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의 선거, 좀 더 포괄적으로 한국의 정치는 어떨까.

큰 관심이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닌 듯싶지만 선거일이 임박하면서 일본 언론에서 총선 관련 보도가 잦아지는 분위기다. 그중 일본 최대 신문사인 요미우리신문의 3회 시리즈 기사 ‘깊어진 분단(分斷) 한국총선거’가 눈길을 끈다. 제목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듯 요미우리는 이번 총선에서 극단화된 한국 정치를 짚었다.

지난 29일 첫 기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서울 유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전남 순천 유세를 스케치하고 현장 상황을 전하는 유튜버들의 모습을 전하며 이렇게 진단했다.

“보수와 좌파에서 내용의 편향이 있다. 유튜브가 사회 분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 정당 간 대립은 첨예화되어 ‘증오의 정치’라 불린다.”

이런 상황이 “가짜뉴스의 확산을 쉽게 하는 환경을 낳고 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30일 두 번째 기사에서는 대통령실과 민주당 등 야당의 대립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잇달아 개최한 ‘민생토론회’를 “국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시도”라는 대통령실 설명과 “공약을 남발하고, 총선거에서 여당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야당의 비판을 소개했다. 요미우리는 이번 총선을 “윤석열 정권의 안정에 중대 고비”라고 진단하며 야당이 윤 대통령 탄핵을 시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산케이신문의 지난 26일 ‘한국 총선에서 젊은층 존재감 상실’이란 제목의 기사도 흥미롭다. 산케이는 “세대교체를 각인시킨 2022년 대선 전후 상황에서 확 바뀌어 지명도 높은 청년 후보들이 일제히 고전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류호정 전 의원,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등을 언급했다. 산케이는 “역대 선거 승패를 좌우해 온 20∼30대 후보자, 유권자가 존재감을 잃었다”며 “보혁 대립이 격화돼 네거티브 캠페인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사회 통합을 호소하는 젊은 후보자들은 지지를 잃고, 청년을 위한 정책 토론도 활발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런 평가가 새로운 게 아니고, 우리 스스로 알고 있는 문제임에도 남들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는 걸 확인하는 건 역시 입맛이 쓰다.

정치세력 간 충돌이 극적으로 표현되는 선거에서 각 사회가 가진 대립, 갈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건 이상할 게 없다. 나의 승리가 곧 선이자 발전이며 상대의 승리는 악이자 후퇴라는 외침 속에 역대 모든 선거는 건곤일척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선거는 그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두고 벌어지는 가장 치열한 토론장이다. 세계 최악의 출산율, ‘금사과’로 대표되는 물가고, 어려워지기만 하는 청년 취업 등 한국사회가 직면한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각 당, 각 후보가 마련한 정책 속에 그런 게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첨예한 양극화 속에 관심의 대상이 아닌 듯 보인다. 정당, 후보자는 상대를 악마화하는 데 골몰하고 있고 유권자들의 그것에 휘둘리는 듯 보인다. 남은 건 내 편 아니면 네 편의 갈라치기다. 일본 언론이 ‘깊어진 분단’이라고 표현한 그것이다.

남들이 봐도 한국사회의 분열은 선명한데 갈라진 틈을 메우고 통합을 이끌어야 할 정치권은 그딴 건 상관없이 오직 승리, 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듯 보인다. 그런 시늉조차 없는 게 지금의 한국 정치라고 규정하면 과한가.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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