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다음 국회는 방통심의위를 개혁해야
애쓰모글루의 <권력과 진보>를 읽다보면 ‘전망 과두체’란 개념을 만난다.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유사한 배경과 세계관, 그리고 열정을 지녔지만, 비슷한 맹점을 공유하는 기술 지도자 집단을 뜻한다. 이 책의 요점이 기술이란 곧 제도요, 따라서 제도적 설계를 뒷받침하는 전망과 경쟁 담론들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니 전망 과두체를 ‘제도의 전망을 공유하는 지도자들’로 확장해서 이해해도 좋겠다.
이 나라 매체제도를 통제하는 과두체의 전망이 어둡고 위태롭다. 민주정에서 과두체가 위험한 이유는 자명하다.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이 타인의 목소리를 배제하면서 파괴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망 자체가 결국 과두체의 이익만 돌보는 이기적인 것이라면 시민은 그런 과두체를 용납해선 안 된다. 애쓰모글루는 그래서 부지런히 대항적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야만 과두체의 맹점을 지적할 수 있고,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경쟁을 도모할 수 있다.
나는 제22대 국회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내용규제 기구는 지금 당파적이고 억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집권세력이 위원회를 장악하고 정파적 이익에 따라 심의제도를 남용하고 있다. 이런 평가만으로도 제도개혁을 위한 충분한 이유가 되겠지만, 내가 우려하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런 식의 운영은 과거 정부에도 마찬가지였고,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진보니 보수니, 여니 야니 할 것 없이 유사한 생각과 열정을 지니고, 비슷한 맹점을 공유한 채, 제도를 남용해서 편향과 억압을 정당화하고 있다. 여야가 함께 전망 과두체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 총선이 끝나면 당파적이고 억압적인 심의제도를 개혁하겠다는 주장 자체가 오히려 위태롭게 들린다. 의회권력이 다수결로 법을 개정하고, 대통령 거부권을 무력화하고, 새로운 법규를 적용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제도를 운영하자는데, 어쩐지 이런 주장이 현행 제도의 매운맛 상위호환 판본처럼 들린다. 심지어 이것도 모자란다는 듯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추가로 도입해서 시민이나 언론의 발언에 대한 처벌을 겹겹으로 강화하자고 주장하니 과연 이렇게 처벌만능주의 사회에서 누가 맘 편하게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싶다.
우리나라 내용규제 과두체가 공유하는 전망으로 이른바 ‘가짜뉴스’를 엄벌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언론도 아닌데 뉴스라고 전달하면서 실은 해로운 내용물을 유통한다면 그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제 편에 불리한 내용물을 보면 일단 선전물로 낙인찍고, 그 내용의 사실성이 애매하면 가짜뉴스로 몰아붙여 심의 또는 중재신청에 돌입하고, 이현령비현령 잣대를 적용해서 다수결로 처벌로 몰아가는 건 자유주의적 민주정의 매체제도라 할 수 없다. 집권당이 지배하는 내용규제 위원회가 다수결로 처벌을 남발하는 한, 아무리 가짜뉴스를 재정의해서 근거가 부실한 허위조작 내용물이라고 좁게 규정하고, 심의규정을 구체화해 보완하고, 또한 무리하고 자의적인 행정처분을 피하기 위한 사법심사를 도입하더라도 억압적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제도개선을 위한 대항 전망이 필요하다.
대안의 초점은 집권당이 압도적 다수를 지명하는 위원회 구성방식 자체를 개선하는 데 맞추어야 한다. 덧붙여 심의신청에 당사자 적격 확인과 피해사실 확인을 위한 절차를 도입하고, 심의결과에 대해 신속한 사법심사를 받을 수 있는 절차를 신설하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제도 개선을 위한 설계안이야 제안들을 꺼내놓고 토론하면서 가다듬으면 된다. 문제는 지금 자행되는 억압적이고 편향적인 내용규제를 개선한다면서 실은 같은 짓을 반복할 것만 같은 그 집요하고 부지런한 전망과 열정이다. 절망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자.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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