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파와 마늘

기자 2024. 3. 3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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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어느 날 엄마의 고백을 스치듯이 들었다. 너희 키울 때는 장 보면서 파를 못 샀다고. 살림을 직접 하지 않던 시기라서 무슨 뜻인지 몰랐다. 30대가 되고 끼니를 내 손으로 해 먹게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할 때 장바구니에서 파를 가장 먼저 빼내게 된다는 사실을.

손에 물을 묻혀본 적 없는 정치인들은 알까. 파가 무슨 의미인지. 라면이나 떡볶이에도 당연하게 들어가 있는 흔하고 값싼 재료지만, 제한된 예산으로 장을 볼 때는 집기를 망설이게 된다. 파나 마늘 같은 향신채가 없어도 음식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파채를 올리지 않은 계란찜이나 다진 마늘을 생략한 두부조림. 남들에게 대접할 만한 요리는 아니라도 나 한 끼 때우기에는 충분하다.

엄마는 몇년 전 충청도로 귀촌해 지낸다. 이제는 우리에게 파와 마늘을 못 먹인 사정을 이해한다는 말에 엄마는 다음날 마늘 한 박스를 부쳤다. 알이 작은 토종 마늘이었다. 뭘 이렇게 많이 보냈냐 하니 “여기선 넘쳐 문제”라 했다.

어느 해에는 엄마가 ‘곧 갈아엎을’ 고추 하우스에 날 데려갔다. 이장님이 “남은 건 알아서 따 가져가라”고 했다며. 수확을 끝낸 밭이라기에 별 기대 없었는데 도시 촌놈 눈에는 아직도 사방에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따온 고추를 손질해 얼려두고 반년은 족히 먹었다.

엄마를 통해 시골 살림에 대해 조금 배웠다. 땅에서 나는 풀은 웬만해선 다 먹어도 된다. 아파트에서 키우는 화초와 달리 노지 농작물은 쑥쑥 자라 굉장한 양이 수확되곤 한다. 그래서 집에 가만히 있어도 이웃들이 냉이며 양파를 한 무더기씩 두고 간다. 도시로 올려보내는 A품이 아니라 B품을 사 먹으면 훨씬 싸고 맛있다.

농사꾼의 시름에 대해서도 귀동냥할 수 있었다. 농산물 가격은 농협에서 결정될 때까지 파는 사람도 알 수 없다는 것. 도시에서는 채소값이 금값이라는데 농민들이 더 벌고 있지는 않다는 것. 농업유 가격이 몇년간 크게 올라 하우스 농사를 포기하는 집이 생겨난다는 것. 도시 난방비가 ‘폭탄’이라는 이야기는 뉴스에 나오는데 더한 시골 사정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 것.

총선을 앞두고 “좌파도 우파도 아닌 대파가 문제”라 한다. 대통령이 방문한 마트에서 대파 가격을 875원으로 내려 붙였고, 대통령은 이를 보고 “합리적 가격”이라고 한 말이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선 “한 단이 아니라 한 뿌리를 뜻한 것이다” “지난 정권 때 채소값이 최고였다” 따위 말들이 영양가 없이 떠돈다.

엄마는 더 이상 시장에서 장을 보지 않는다. 그래도 채소 걱정은 없는 듯하다. 마늘 한 박스를 몽땅 다져 냉동실에 얼려둔 나는 ‘마늘수저’가 되었지만, 마트 야채 코너 앞에서는 여전히 된장국에 파를 꼭 넣어야 할지 망설인다.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어디서는 야채가 썩어난다고 하고 또 어디서는 한 끼 제대로 차려 먹기도 힘들다.

그러니 그 누구도 풍요롭다 할 수 없다. 도시의 식탁은 점점 비싸지는데, 시골은 여전히 가난하다. 도대체 돈은 어디로 가는가? 대통령은, 그리고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은 이 미스터리에 답을 할 수 있는가?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작가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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