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교수·개원의 4월 진료축소…의료공백 속 33개월 아기 사망(종합)
충북서 33개월 아기, 이송 거부당한 끝 사망… 복지부 "상세 내용 조사중"
"교수님들이 병원 떠나면 어떡하냐"…환자 불안감 증폭
(전국종합=연합뉴스) 의료공백 장기화 속에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내달 1일부로 근무 시간을 줄이고 외래와 수술을 조정하겠다"고 의결한 데 이어 개원의들도 '주 40시간 준법 진료'에 나서겠다고 예고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충북 보은에서는 도랑에 빠진 생후 33개월 아기가 상급종합병원 이송을 거부당한 끝에 숨지는 일이 발생해 정부가 원인 등 진상 파악에 나섰다.
환자들은 의대 교수들의 진료 축소 소식 등에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의대교수들 "4월1일자로 진료 축소"…의협 "개원가도 주40시간만 진료"
집단행동에 들어간 전공의들의 복귀 조짐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내달 1일자로 근무 시간 조정·진료 축소를 예고한 의대 교수들에 이어 대한의사협회(의협)가 "개원의들도 주 40시간 근무시간을 지키는 준법 진료를 시작하겠다"고 31일 밝혔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 오후 3시부터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내부 인적 구성과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대한 대응 방향 등을 논의했다.
김성근 신임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차원에서 참여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이전에도 나왔던 얘 기인 만큼 준비하고 계셨던 분들은 (바로)시작하실 수 있을 것"이라며 "많은 회원들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주 40시간 진료에)의견을 모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확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날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등 20개 의대의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모인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가 "다음 달 1일부로 24시간 연속근무 후 익일 주간 업무 '오프'를 원칙으로 하는 데 동의했으며, 이 근무조건에 맞춰서 중증·응급환자 진료를 유지하기 위해 수련병원별로 외래와 수술을 조정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다른 의대 교수단체인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 또한 앞서 지난 25일부터 외래진료, 수술, 입원 진료 근무 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으로 줄였으며, 다음 달 1일부터는 외래 진료를 최소화해 중증 및 응급 환자 치료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의료 공백 심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 행렬도 계속되고 있다. 광주에서는 사직서 접수를 마감한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추후 대응 방안을 결정하는 회의를 열기로 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남대 의대·전남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9일까지 200명 이상의 개별 교수들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대 의대·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도 지난 29일 전체 336명의 교수 중 절반 이상이 낸 사직서를 모아 학교 학장과 병원장에게 제출했다.
충북대병원·의대 교수 200여명 가운데 80여명도 사직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 9곳서 이송 거부된 아기 사망…복지부 "당시 환자 상태·병원 상황 조사"
의료공백 사태 속 병원 아홉 군데서 이송이 거부된 아기가 사망해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한 것인지 등을 파악하기 위한 진상 조사에 나섰다.
31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 30분께 충북 보은군 보은읍에서 생후 33개월 된 A양이 주택 옆 1m 깊이의 도랑에 빠져 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아버지에게 구조된 A양은 심정지 상태로 119구급대에 의해 보은의 모 병원으로 옮겨졌고, 응급치료 끝 같은 날 오후 5시 33분께 맥박이 돌아왔다.
병원은 A양의 상태가 심장이 다시 뛰어 혈액이 도는 자발적순환회복(ROSC)에 이른 것으로 판단해 추가 치료를 위한 상급종합병원 이송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병원 9곳(충북 1곳, 대전 3곳, 세종 1곳, 충남 2곳, 경기도 2곳)에 전원을 요청했으나 병상 부족을 이유로 이송을 거부당했다.
그러는 사이 A양은 오후 7시 1분께 다시 심정지 상태에 빠졌고, 약 40분 뒤 최종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송을 거부한 9곳 이외에 A양을 받을 수 있다고 연락을 준 곳은 오후 7시 29분께 대전의 한 대학병원이 유일했다.
이에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료공백 사태로 전원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라며 "보은에서 40분 거리인 우리 병원으로 옮겨올 경우 오히려 환자의 상태가 더 악화할 가능성 때문에 전원을 받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병원 관계자도 "소아청소년과 중환자실은 평소에도 자리가 많지 않다"며 "상급종합병원에 병상이 없으니,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이 알려지자 보건복지부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인근 병원 도착 이후 환자의 상태, 전원이 가능할 만큼 생체 징후가 안정적이었는지 여부, 당시 전원을 요청받았던 의료기관의 여건 등 상세 내용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의·정 '2천명 철회 여부' 두고 평행선 달려 대화 요원…환자 불안감 고조
정부가 의료계와 대화하겠다고 밝힌 지 1주일이 지났지만, 대화가 시작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에 대해 '유연한 처리'를 모색해달라면서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의사 사이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으나 예상과 달리 의제가 마련되거나 대화할 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았다.
대화를 시작도 못 한 것은 '2천명 증원'이라는 핵심 의제에 대해 양측 입장차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정부가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을 특정 직역과 흥정하듯 뒤집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데 반해 의협 등 의료계는 '2천명 즉각 철회'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비대위 입장은 초지일관 '원점 재논의'"라며 "2천명 증원은 구체적인 과학적 근거가 없다. 감원이 됐든 증원이 됐든 이 근거에 대해 정확하게 논의가 되려면 굉장히 많은 전문가와 임상 의사들이 참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의사들의 협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의료 공백을 우려하는 환자들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지난해 말 강원도 내 한 대학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고 정기적으로 외래를 다니는 환자의 보호자 최모(71) 씨는 "남편이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타기 위해 서너 달에 한 번은 병원에 가야 하는데 교수님들이 병원을 떠나면 어떡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에 사는 80대 A씨도 "병원에서 진료를 못 받을까 봐 환자들이 걱정해야 하는 게 말이 되냐"며 "언제 병원을 이용할지 모르는데,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갑갑하다"고 말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 단체가 모인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전공의와 교수 집단사직으로 인해 40일째 이어져 오고 있는 현재의 사태는 환자들에게 엄청난 위협"이라며 "양측이 전혀 양보하지 않으면 조만간 걷잡을 수 없는 다수의 환자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조금씩 양보해서 현재이 의료공백 사태를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다.
(권준우 김상연 김선호 김준범 김형우 나보배 손대성 양지웅 천정인 권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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