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침묵하지 않았다' 하고 싶었다" 미 국무부 직원, 공개 사임 이유는

김예리 기자 2024. 3. 3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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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언론인 살해 최대, NGO 요청에도 도울 수 없어"
언론 기고·인터뷰로 미국의 이스라엘 살상지원 공개 비판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미국 국무부의 중동 인권 담당 직원이 미국의 이스라엘 가자 학살 지원에 대해 언론에 공개 항의하면서 사임했다. 그는 CNN과 워싱턴포스트 등 매체 기고와 인터뷰를 통해 '정부가 자국 법을 위반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극단적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의 중동 담당자 애넬 쉴라인은 지난 27일 이스라엘의 잔학 행위를 지원하는 행정부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며 공개 사임했다. 쉴라인은 28일 CNN 기고에서 “지난 1년 간 나는 중동의 인권 증진을 위한 사무소에서 일했다”며 “그러나 가자지구에서 국제사법재판소가 '대량학살'이라고 밝힌 행위를 직접 방조하는 정부의 대표로 이 일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런 잔학행위를 방조하는 행정부에 복무할 수 없어 나는 국무부 직책에서 사임하기로 결정했다”고 썼다.

미국 국무부 관리가 미국의 이스라엘 가자 학살 지원에 항의하며 공개 사임한 것은 지난해 10월 조시 폴 외국 무기거래 담당 과장이 사임한 뒤 이번이 두 번째다.

쉴라인은 CNN 칼럼에서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이 가자지구에서 구금, 살해당했을 때 미국이 도울 수 있는지 비정부단체들이 물어올 때, 나는 정부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지 않는 데 실망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 5개월 동안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언론인 90명이 살해당했다고 강조했다. 30일 현재 기준 95명이다. 이는 언론인보호위원회(CPJ)가 1992년 데이터를 수집한 이래 단일 분쟁에서 일어난 최대 피해 규모다.

▲언론인보호위원회(CPJ) 홈페이지 갈무리

그는 CNN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앵커와 인터뷰에선 “원래는 조용히 사임하려 했다”며 “그러나 동료들이 목소리를 내달라고, 자신들을 대표해 말해달라고 요청했다”고 공개 사임 이유를 밝혔다. 그는 WP와 인터뷰에선 “내부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직원 포럼을 통해 우려를 제기하려고 했지만, 결국 미국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계속 보내는 한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인권을 옹호하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고 했다.

쉴라인은 정부가 자국 법들을 위반하며 이스라엘을 극단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와 동료들은 이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수천 건의 정밀 유도 탄약, 폭탄, 소형 무기 등 치명적인 군사 지원을 하고 심지어 의회를 우회해 수천 건을 추가 승인하는 것을 공포 속에서 지켜봤다”며 “미국 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행정부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리히법(Leahy Law)은 인권 침해 혐의를 받는 외국 국가에 무기 판매나 지원을 금한다. 미 해외지원법(620I조)은 미국의 인도적 지원을 차단하는 정부에 군사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27일 애넬 쉴라인의 공개 사임을 알리는 워싱턴포스트 보도 갈무리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 1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살상이 국제법상 전쟁범죄인 집단학살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스라엘 행위가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매튜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8일 “(이스라엘의) 인도주의법 위반이 있었는지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고 결론을 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5일 처음으로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한 가운데, 미국은 이사국 중 유일하게 기권한 뒤 결의안에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는 국제법과 같은 구속력을 지닌다. 쉴라인은 “이 정부는 이스라엘의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극단적인 지원을 이어가는 것이 정치적으로 가장 합리적이라는 정치적 계산을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워싱턴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이스라엘 가자 학살 지원에 항의하며 분신한 미 공군 병사 아론 부쉬넬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떠오른다고 했다. 부쉬넬은 게시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노예제 시대에 살아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자문하길 좋아한다. 아니면 짐 크로우 남부 시대, 아니면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시대라면?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대량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답은 '당신은 그것(그때 당신이 하고 있을 일)을 하고 있다. 바로 지금”이라고 썼다.

쉴라인은 미국 독립언론 데모크라시나우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힌 이유를 두고 눈시울을 붉히면서 “나는 어린 딸이 있다. 나중에 딸이 저에게 '이 때 엄마는 뭘 하고 있었어? 국무부에 있었잖아'라고 묻는 것을 생각했다”며 “나는 딸에게 그때 침묵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최고위층이 변화할 준비가 되지 않으면 말단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MSNBC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하차 통보를 받은 뒤 독립언론을 설립한 무슬림 언론인 메흐디 하산은 지난 14일 미국이 이스라엘의 살상 지원을 두고 “한편으로는 폭탄을 떨어뜨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호품을 떨어뜨리고, (미국이) 양쪽 모두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결국 구호품마저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낳는다는 생각은 기괴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구호품 접근을 봉쇄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이를 제재하지 않은 채 에어드롭(구호품 공중투하)를 하고, 가자 주민들이 이들에 깔려 죽거나 모여서 구호품을 기다리다 이스라엘군 총격에 사망하는 상황을 가리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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