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는109년 유성호텔
정계 인사들이 즐겨 찾던 휴양지이자 신혼여행 성지로 인기
시설 노후화·관광트랜드 변화 황폐화…지역 호텔 줄줄이 폐업
호텔 자산 담보로 수백억 대출 후 폐업…12월 매각 계약체결
온천이 개발되면서 대전은 온천관광지로 전국적 유명세를 탔다. 정계 인사들의 휴양지로, 신혼 여행 명소로, 국민들의 휴식공간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유성호텔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다 유성온천 관광특구로 지정을 받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유흥시설의 난립, 시설 노후화, 관광산업 침체, 코로나 등의 풍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지난달 31일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유성호텔의 흥망성쇠를 돌아본다.
유성온천의 유래를 담은 전설은 백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 말엽 7대 독자가 전쟁 상처로 고생하던 중 어머니가 백설이 뒤덮인 들판에 날개를 다친 학 한 마리가 웅덩이 물로 날개를 적셔 치료하는 것을 보고 아들의 상처를 그 물에 담가 말끔히 치료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태조 이성계 일행이 피로를 풀기 위해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세종실록에는 태종 이방원이 방문했다는 기록도 있다.
유성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 초부터다. 1907년 유성에 정착한 일본인 스즈키 마쓰요시가 봉명동 유성천 남측 개발을 시작하며 상업화되기 시작했다. 공주 갑부 김갑순이 1918년 충청지역 최초로 근대식 유성온천호텔(현 유성호텔 온천수공원 자리)을 개관, 온천과 호텔을 운영했다. 1923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는 유성온천 일부를 인수, 1925년 계룡스파텔의 전신인 봉명관을 건립했다. 봉명관은 조선총독부 영빈관으로 사용되며, 유성온천을 대표하는 온천으로 급부상한다.
유성온천장을 세운 김갑순은 인근의 봉명관과 경쟁하기 위해 옛 유성호텔 구관 자리에 건물을 증축했다. 1927년 김갑순이 유성온천에 오락장을 신축하며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했는데, 당시 지역 유지들에게 자동차 왕복권이 동봉된 초청장을 보내는 등 유성온천의 번영을 대내외에 과시하기도 했다.
해방 후, 1958년 유성온천호텔 맞은편 리베라 호텔의 전신인 만년장이 개장되고, 1959년에는 봉명관이 있던 자리에 국군육군휴양소(현 계룡스파텔)이 조성됐다.
1966년 유성호텔은 유성온천지구 최초로 관광호텔로 신축 개관하며 현대적인 온천관광단지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당시 보기 드물게 5층 건물에 6인승 엘리베이터와 현대식 사우나 시설을 갖췄다. 연간 1000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할 만큼 명성을 떨쳤다. 1970년대 신혼여행 명소로 인기를 끌었으며, 신축 이전과 증축 등을 거쳐 1992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과거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해방 후 미국에서 돌아와 머물기도 했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자주 이용하는 등 정계 인사들이 즐겨 찾던 휴양지였다.
1986년 86아시안게임 대전 선수촌 본부호텔, 1988년 88올림픽 대전 선수촌 본부호텔, 1993년 대전 엑스포 본부호텔, 2002년 2002월드컵 미디어 본부호텔, 2005년 동아시아 국제축구대회 본부호텔 등으로 쓰였다. 1992년에는 특2급 호텔로 승격될 만큼 번영을 누렸다.
1994년 8월엔 유성온천 관광특구로 지정되며 당시 밤 12시까지만 영업할 수 있던 유흥 업소의 영업시간 제한이 해제, 특수를 누리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유성온천지구는 유흥시설의 난립, 시설 노후화, 관광산업 침체로 인한 트렌드 변화 등으로 불황을 피하지 못하고, 지역 향토 호텔들이 줄줄이 문을 닫게 됐다.
지난 2017년에는 호텔리베라 유성이, 2018년에는 아드리아호텔 등이 문을 닫았다.
109년의 역사를 지닌 유성호텔도 이 풍파를 이겨내지 못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감소한 매출과 시설 노후화 등의 여파다.
유성관광개발은 지난 2022년 10월 31일 호텔 자산을 담보로 신한자산신탁에서 수백 억 원을 빌렸으며, 유성호텔은 담보신탁 형태로 넘어가 폐업 수순을 밟았다. 이후 지난 2022년 12월 매각 계약을 체결하고, 직원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렸다.
유성호텔은 지난달 31일 영업을 종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유성호텔이 떠난 자리에는 2028년 하반기까지 호텔 1개 동, 주상복합 2개 동 등 대규모의 신축 관광호텔이 들어설 전망이다.
유성구 관계자는 "새로 호텔을 짓기 전 주택사업계획 승인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관광숙박업과 전체적인 것에 대한 결과는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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