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칼럼] 글로벌 R&D 협력, 급하면 체한다
"글로벌 공동연구 과제를 따기 위해 연구자들이 뛰고 있는데, 결과물의 IP(지식재산권) 확보가 문제입니다. 연구과제 공고 기간 안에 해외 연구자와 IP 관련 협상을 끝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요."
최근 만난 한 R&D 분야 인사의 얘기다. 국내 연구현장이 크게 늘어난 글로벌 협력 R&D 요구를 소화하기 위해 바쁘다. 해외 연구기관에 한국 연구자들의 협력 제의가 이어지고 있다. 자칫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급하게 해외에 손을 내밀어 시작했다가 부작용이라도 생길까 걱정될 정도다.
그동안 우리나라 연구현장이 '우물안 R&D' 지적을 받을 만한 것은 사실이었다. 국제협력은 물론이거니와 국내에서도 연구기관·대학·기업이 '함께 하는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다. 협력연구, 집단연구라 해도 들여다 보면, 칸막이를 치고 각자 연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연구자들의 문제도 있지만 매년 연구 진도를 체크 받고, 성공이냐 실패냐를 평가받다 보니 긴 호흡의 연구가 힘든 환경 영향도 있었다. 결국 R&D 협력도 사람 간의 일인데, 해외 연구자들과 협력하기엔 우리는 사람도 연구주제도 변화가 빠르고 그들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가니 호흡 맞추기가 힘들었다. 해외 협력 거점들조차 수시로 책임자가 바뀌니 상대국에서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원자력, 반도체, 우주 같은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주로 젊은 연구자들을 대거 해외로 보내서 어떻게든 선진 기술을 배워오는 '영끌 국제협력'을 했다. 과학기술 분야는 산업계와 달리 비교적 국제협력에 열려 있으니 이를 활용해 기술을 배웠다. 오늘날 한국의 기술 수준이 이 정도까지 올라온 것도 당시 해외에서 고생한 선배들의 덕이 크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우리도 어엿한 과학기술 '메이저리거'가 됐다. 정부가 지난 2월 한·미·중·일·유럽연합(EU)의 핵심 과학기술을 비교·평가한 '2022년 기술수준평가' 결과 전기차 배터리 같은 이차전지는 한국이 세계 최고이고, 반도체·디스플레이도 선두권으로 나타났다. 첨단바이오, 차세대원자력은 미·EU와는 차이가 있지만 중·일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작년 나온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세계경쟁력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은 과학인프라 경쟁력에서 미국에 이어 2위로 평가됐다. R&D 투자부터 인력, 특허출원 수 등 상당 수의 항목에서 글로벌 5위 안에 들었다. 그런데 특히 취약한 게 IP 보호 정도, 산학협력으로 나타났다. IP 경쟁력과 협력 DNA는 국제협력 R&D를 위한 기초 소양인데 그게 모자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몇달 안에 공동연구를 시작할 해외 파트너를 찾고 있다. 연애 경험도 많지 않은 사람이 국제결혼을 하겠다며 상대도 없는 상태에서 결혼 날짜부터 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든 협상에서는 급한 측이 일단 약자다. 거기에다 지금은 기술이 국력이자 무기인 시대다. 어깨 너머로 눈치껏 기술을 배우는 시대는 지났다. 급해서 일단 시작했다가 나중에 무더기 국제갈등이 벌어지거나, 제대로 IP도 확보 못하면서 연구과제부터 따갔다며 연구자와 관련 기관들이 뭇매를 맞을까 걱정된다.
한 대학교수는 "국제협력 R&D는 특정 기술 개발이 목표라기보다 네트워킹 성격이 강한데, 국가 전략기술을 해외와 공동 연구해서 확보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인사는 "R&D는 해당 과제에서 얻은 IP뿐 아니라 그 전에 쌓은 '백그라운드 IP' 이용권 확보가 중요한데 정교하게 계약을 맺지 않으면 탈이 날 수 있다"고 했다.
과거 영끌 국제협력은 지금은 안 통한다. 미국 국립연구소나 유명 대학들은 공동연구를 해도 IP는 절대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과 협력하려면 'IP 확보'가 아니라 사람 간의 협업, 네트워킹에 더 의미를 둬야 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국내 연구기관에 해외 연구자가 오는 식의 협력도 가능할 것이다. AI, 양자, 우주 같은 전략기술은 정부 대 정부로 풀어서 규모 있는 협력사례를 만드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R&D 국제협력은 속도전 식으로 밀어붙일수록 실패 확률이 높아짐을 알아야 한다. 다양성과 유연성, 정교한 IP 전략, 필요한 경우 정부 차원의 강력한 추진 체계가 필수다. ICT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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