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여당의 읍소
22대 총선일이 임박하면서 국민의힘이 “잘못했지만 한 번만 봐달라”며 조아리는 ‘읍소 작전’에 돌입했다. 총선 민심이 정권심판 쪽으로 기울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유권자의 동정심을 유발해 표를 얻겠다는 전략으로 돌아선 것이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28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염치없는 줄 알면서도 이렇게 고개 숙여서 국민께 호소드린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딱 한 번만 더 저희를 믿어달라”고 애걸했다. 다음날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여당으로서 국민께 부족했던 점이 많이 있다”고 했다. 용서해달라곤 하지만 뭐가 잘못됐는지, 어떻게 달라지겠단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보수정당은 선거 때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싶으면 읍소 전략을 썼고, 이는 대체로 먹혔다. 한나라당이 ‘차떼기당’ 오명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역풍으로 당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효과를 봤다. 세월호 참사 직후 2014년 치러진 6·4 지방선거 당시 분노한 민심에 직면한 새누리당은 큰절과 침묵으로 ‘유구무언’ 전략을 펼쳤다. 결과는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중 8곳에서 승리를 거둔 새누리당의 선방으로 마무리됐다. 이번에도 국민의힘이 ‘읍소 전략’을 선택한 것은 상황이 그만큼 급박해졌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읍소 정치는 막말과 짝을 이룬다. 자신을 낮추며 혁신을 약속한 뒤, 거친 언사로 상대당 승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식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 30일 경기 부천시 지원 유세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준혁, 양문석 후보 등을 겨냥해 “(이들의) 쓰레기 같은 말들을 정말 불편하지만 한번 들어봐달라”며 설전에 불을 붙였다. 이틀 전 서울 신촌 유세에서는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라며 선을 넘었다. ‘정권심판론’을 외치는 이 대표도 “(정부가) 의붓아버지 같다”는 등 자극 발언으로 맞받고 있다.
선거일이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악어의 눈물’인지, 변화를 위한 진짜 읍소인지는 유권자가 판단할 것이다. 여당은 ‘미워도 다시 한번’만 외칠 게 아니라 구체적인 반성문부터 써야 한다. 미래의 약속을 보여줄 수 없다면 최소한 사죄할 일이라도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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