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위의 시대, 진보 언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열린편집위원의 눈]

한겨레 2024. 3. 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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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전환운동’ 누리집 갈무리

이준형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총선을 일주일여 앞둔 지금, 사회의 진보를 꿈꾸던 많은 시민들은 착잡한 심경일 테다. ‘누가 더 못했는가’를 두고 지리멸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진보 정당들은 원내 정당 지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거나 거대 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가담하며 진보 정치의 토대마저 흔들고 있다. 되레 ‘검찰개혁’을 핵심 정치적 의제로 내세운 조국혁신당이 윤석열 정권과 선명한 대립각을 세운다는 미명 아래 각종 여론조사에서 약진을 하고 있다. 또 다시 심판과 복수의 담론이 지배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윤석열도, 검찰도 몰아내자는 뜨거운 외침들 속에 궁금해지는 것은 그들을 몰아낸 다음 우리가 마주할 공동체의 모습이다. 그게 무엇이길래 우리는 그들의 ‘퇴진과 탄핵’을 외치는가.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해 박근혜를 몰아내자던 광장의 외침들은 오늘날 안녕들하실까. 2022년에 우리는 이태원에서 다시 국가의 부재를 목격했고, 박근혜 대신 윤석열을, 최순실 대신 김건희 ‘여사’를 만나고 있다. 박근혜를 끌어냈듯 윤석열을 끌어내면 우리는 안녕해질까.

전면적인 체제 전환 없이 우리의 삶이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건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전세계 자살률 1위, 출생률 최하위라는 지표들이 보여주듯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후속 세대 재생산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한국 사회는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을 거치면서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인물은 바뀌었으되 체제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2008년 전세계적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해체될 것처럼 보였던 신자유주의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우리 공동체의 사회적 토대들을 무너뜨려왔다. 여전한 성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 이미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기후위기도 현 상태가 더 이상 존속 불가능하다며 적색 경보를 울리고 있다. 지금껏 우리 삶의 바탕이 되어온 이 체제에 더 이상 희망은 없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이론가였던 그람시는 기존 체제가 사회적인 요구들을 해결 못하는 상황이 누적되어 시효를 다해감에도 새로운 질서가 제시되지 못하는 시기를 ‘인터레그넘’, 곧 ‘궐위’의 시기라고 불렀다. 이 시기에는 여러 정치 세력들이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기 위해 분투를 벌인다. 그러나 이러한 질서는 부정성만으로는 구축되지 않는다. ‘어떤 정치 세력은 안 된다’, ‘누군가를 끌어내자’라는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질서와 체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일지,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이 살아갈 새로운 삶의 양식은 어떤 모습일지를 제시하는 긍정성의 담론이 필요하다.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공동체의 청사진을 제시해온 것은 진보·좌파가 아니라 극우 세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3월27일 한겨레에 실린 박노자 교수의 칼럼은 유럽 여러 국가들에서 전통적인 좌파와 진보 세력들을 압도하고 있는 극우 정당들의 약진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기존에 진보와 좌파의 지지층이었던 노동·하위 계급, 특히 저임금·비정규 노동계급이 반이민 정책과 국민국가의 주권 강화를 강조하는 극우 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며 백인 노동자 계급을 동원해냈던 트럼프의 약진도 이와 겹치는 사례다. 그러나 박노자 교수는 반이민과 주권 강화라는 서구 극우 정당들의 특징이 오늘날 한국의 ‘엘리트적 극우’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에 한국적 극우는 실패를 노정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윤석열식 엘리트 극우의 실패가 곧 진보의 승리를, 진보적 사회의 건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구 극우 정당들의 성공은 그 내용의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공동체에 설득력있는 청사진을 제시했기에 가능했다. 부정하고 반대하는 전략으로 몇 번의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 세력은 어떤 구체적인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는가. 윤석열을, 검찰을 끌어내고 이재명을, 조국을 세우더라도 그 다음 윤석열, 그 다음 이명박, 박근혜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대체할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전환에 관한 내용이다.

이 지점에서 진보 언론이 할 역할이 있다. 언론은 발생한 사회적 사건들을 대중들에게 전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상상들을 구성해내고 ‘의제설정’을 하는 역할도 맡는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언론의 진정한 힘은 후자에서 나온다. 특히 궐위의 시기에 언론은 이러한 힘을 제대로 발휘해야 할 책무를 갖는다. 공동체를 새롭게 창조하기 위한 구체적인 상상들을 지면에 모아 토론과 논쟁을 촉발해야 한다.

이번 총선 국면에서 한겨레는 ‘기후 유권자’, ‘기후 총선’을 주요 의제로 설정한 듯하다. 여야의 지리멸렬한 정쟁을 넘어 적극적인 의제설정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총선이라는 국면을 잘 연결지었다는 점에서 반가웠다. 그러나 이 기획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체제를 전환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시민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문명과 기술의 안락함을 얼마나 어떻게 내려놓고 새 체제에 적응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상상을 가능케하는 기획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지난 3월25일에는 7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꾸린 ‘체제전환운동’의 정치대회가 열렸다. 그 직후 한겨레는 ‘조국 열풍’에 대한 분석 기사를 내놓았으나 그 행사와 관련된 보도에는 인색했다. 현 체제를 벗어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진보 언론에 더 필요한 때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열린편집위원 7명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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