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의 귀환인가 [세계의 창]

한겨레 2024. 3. 3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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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9·11 공격 가해자들뿐 아니라 다른 표적들도 겨누면서 세계적 차원의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은 아마 사살한 사람보다 많은 테러리스트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들을 테러 조직이라고 부른다.

푸틴은 또 부시가 알카에다의 계획에 대한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여론의 비판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려고 한 것처럼 테러를 막지 못한 책임으로부터 러시아인들의 관심을 돌리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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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공연장 테러 용의자로 체포된 무하마드소비르 파이조프가 지난 3월24일(현지시각) 휠체어를 탄 채 모스크바 법원에 출두해 눈을 감고 앉아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9·11 공격 가해자들뿐 아니라 다른 표적들도 겨누면서 세계적 차원의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은 아마 사살한 사람보다 많은 테러리스트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미국은 알카에다와 긴밀한 관계가 아니었던 아프가니스탄, 알카에다와 전혀 무관한 이라크를 침공해 많은 민간인을 죽였다.

제대로 정의되지 못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한 미국은 결국 다른 안보 위협으로 초점을 옮겼다. 지금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중국과 대만의 충돌 가능성 등 국가가 하는 전쟁을 더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모스크바 테러가 보여준 것처럼 일부 테러 조직들은 아직도 강력하다. 이슬람국가는 이라크 전쟁의 잔해, 그리고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에 대한 봉기로부터 싹텄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이라크와 시리아에 걸쳐 넓은 지역을 통치했다. ‘이슬람국가’(IS)가 만든 칼리프 국가는 미국·러시아·시리아·이라크의 거듭된 공격에 2019년에 붕괴했다.

하지만 칼리프 국가는 망했어도 이슬람국가는 살아남아 시리아에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도 아직 기반을 갖고 있다. 이슬람국가 연계 그룹들은 아프리카에서도 활동을 이어간다. 이슬람국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경쟁자로도 등장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이슬람국가의 프랜차이즈 조직은 자신들이 모스크바 테러를 저질렀다고 했다. 이슬람국가에 대한 폭격, 아프가니스탄 침공, 러시아 내 무슬림 그룹 탄압이 이슬람국가가 러시아를 공격한 이유다.

테러리스트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카민족회의나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공화군은 그들이 정부를 구성한 뒤에는 테러 조직으로 불리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2006년 가자지구 선거에서 승리해 정부 역할을 해온 하마스를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들을 테러 조직이라고 부른다. 나라가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이나 쿠르드족이 스스로를 지키려고 무력에 의지할 때 외부인들은 그들을 곧잘 테러리스트로 규정한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이런 무장 세력을 ‘자유의 전사들’로 부른다.

이슬람국가는 다른 문제다. 그들은 억압당하는 이들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국제 질서를 파괴해 자유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 종교적 칼리프 체제로 대체하려고 한다. 그들은 국민국가라는 근대적 개념을 인정하지 않고 중세적 통치를 부활시키려고 한다. 미국과 러시아는 많은 문제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슬람국가가 그들에게 안보 위협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블라디미르 푸틴은 9·11 뒤의 조지 부시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려고 하는 것 같다. 푸틴은 증거가 없는데도 모스크바 테러의 책임을 우크라이나와 그 지지국들에 돌리려고 한다. 부시는 9·11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정권 교체라는 목표를 이루는 기회로 썼다. 푸틴은 또 부시가 알카에다의 계획에 대한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여론의 비판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려고 한 것처럼 테러를 막지 못한 책임으로부터 러시아인들의 관심을 돌리고 싶어 한다.

둘은 닮은 점이 또 있다. 법정에 출석한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들 모습에서는 고문 흔적이 역력했다. 들것에 실려 나온 이도 있었다. 고문 장면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 여러 개가 인터넷에 나돌았다. 부시도 9·11을 물고문을 비롯한 ‘강화된 심문 기법’을 적용하는 구실로 삼았다.

이슬람국가는 규모와 영향력이 줄기는 했으나 분명히 국제사회에 강력한 위협으로 남아 있다. 이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국제사회가 분열을 극복하고 공통의 위협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됐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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