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중심 거버넌스 만들어야 밸류업 [세상읽기]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윤석열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세금으로만 풀려 한다. 이미 지난해 말 주식양도세 대상 대주주 기준을 완화했고, 연초에는 내년 발효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약속했다. 2월 말 거래소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에 대해 주주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3월에는 주주환원 확대 기업에 대한 법인세 경감과 배당소득 저율 분리과세를 약속했다. 가장 최근에는 대통령이 연초에 밝힌 상속세 완화 의지를 대통령 스스로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이들 감세 조치로 밸류업이 될지는 의문이다. 주식양도세나 금융투자소득세와 같은 자본이득세의 폐지는 주식에 대한 매입 수요를 늘려 주가를 올릴 수도 있지만, 차익 실현 매물을 늘려 주가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주주환원 확대 기업에 대한 법인세 경감과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박근혜 정부 때 기업소득환류세제와 배당증대세제라는 이름으로 이미 우리가 경험했지만, 그 효과가 미미했다. 상속세는 그 세율을 파격적으로 낮추면 일부 기업에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부의 불평등과 싸워야 하는 정부가 맨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밸류업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재계의 거센 반대가 있더라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인 현재의 총수 또는 경영자 중심의 거버넌스 구조를 고쳐 주주 중심의 거버넌스 구조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가지 영역에서 거버넌스 개혁 조치들이 종합적으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첫번째 영역은 이사 선임과 이사 보수 책정에서 일반주주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문제 거래를 좌초시킬 수 있는 거부권을 일반주주들에게 부여하는 내용을 포괄한다. 예컨대, 이사 선임에 있어서 일반주주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대주주 의결권 제한이 실질적인 효력을 갖는 분리선출 감사위원의 수를 현재의 1명에서 감사위원 전원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또 이사와 일반주주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고, 총수 일가에 대한 보수가 과도하게 책정되지 않도록 임원 보수 정책을 이사회가 아닌 주주총회 승인 안건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특수관계인 간 내부거래도 이사회가 아닌 주주총회 승인 안건으로 전환하고, 일반주주의 과반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한다. 계열사 간 합병이나 분할 안건은 이미 주주총회 승인 사항이지만 총수의 이익과 일반주주의 이익이 충돌할 수 있는 거래인 만큼 총수와 그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기존 지배주주가 과도하게 높은 프리미엄으로 지배권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일반주주들이 보유한 지분 전량을 같은 프리미엄을 받고 새로운 지배주주에게 매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번째 영역의 거버넌스 개혁은 문제 거래를 사전에 차단하지 못해 일반주주의 이익이 침해된 경우, 사후적으로 이사들이 주주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개혁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이사의 책임을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추궁하는 대표소송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공익소송인 만큼 단독주주권으로 만들거나 금액 기준으로 소 제기에 필요한 주식 보유 요건을 대폭 낮춰야 하고, 증거편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거나 충실 의무 위반 사건의 경우 입증 책임을 전환해 이사가 거래의 공정성을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가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에 대해서도 충성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부당한 비율로 계열사가 서로 합병하더라도 손해를 본 주주는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현행 상법과 대법원 판례는 회사에 대한 책임만 인정하고 있고, 회사 자체는 합병 비율이 부당하더라도 직접적인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세번째 영역의 거버넌스 개혁은 앞서 설명한 개혁으로 일반주주들에게 부여된 권한을 기관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개혁이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거버넌스 구조를 개편해 대통령과 재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이것이 어렵다면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펀드에 투자자로 참여하도록 해 행동주의 펀드의 규모와 수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거버넌스 개혁은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 국가 경제의 효율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과제이다. 5월에 구성될 22대 국회에서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거버넌스 개혁에 힘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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