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밸류업, 가치창조와 가치착출 구분부터

2024. 3. 3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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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국제적으로 '저평가'됐다는 주식시장을 끌어올리기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밸류업의 실상은 기업의 가치창조(value creation)와 가치착출(value extraction)을 구분하는 데서 출발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주식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가치창조를 도와주기도 하고, 기업이 번 돈을 가져가는 가치착출 기능도 한다.

밸류업이라는 구호에만 매몰되지 말고 더 넓은 시각에서 지속적 가치창조와 가치착출이 이루어지는 정책 틀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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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배당 적을 뿐 아니라
쌓아놓은 현찰 비율도 낮은 편
현찰 자산 왜 적은지 먼저 보고
정부 경제정책 전반 손질해야

정부는 국제적으로 '저평가'됐다는 주식시장을 끌어올리기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는 소식에 주가가 뛰었고, 로드맵을 발표하니 '실망 매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 같은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필자는 기업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과제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밸류업의 실상은 기업의 가치창조(value creation)와 가치착출(value extraction)을 구분하는 데서 출발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가치창조는 기업이 투자 활동을 통해 값싸고 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해 이익을 창출하면서 이루어진다. 가치착출은 가치창조를 통해 쌓은 이익을 배당 등의 형태로 주주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가치창조를 도와주기도 하고, 기업이 번 돈을 가져가는 가치착출 기능도 한다. 그러나 가치착출이 가치창조보다 양적으로 더 크고 정치적 목소리도 높다.

2022년의 경우 신주를 발행해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공급받은 자금은 22조원이고 배당·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식시장으로 유출한 돈은 48조원이었다. 26조원이 기업에서 순유출된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00년부터 2022년까지 순유출액은 160조원에 달한다. 순유출에 속도도 붙었다. 연평균 순유출액이 2000~2009년에는 3조원이었는데, 2010~2019년에는 16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2000~2022년에는 26조원으로 더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의 불만이 높은 것은 많은 시장 참가자, 학자, 정책 당국이 '주주가치 극대화론'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가치착출이 잘되면 가치창조도 잘 이루어진다는 '마차를 말 앞에 갖다놓는' 견해다. 하지만 진짜 밸류업은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해야, 즉 지속적으로 가치창조를 해야 가능하다. 가치창조 없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만 늘리면 단기차익을 챙기고 '먹튀'하는 투기판만 키워준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한국 기업은 단순히 배당을 적게 할 뿐만 아니라 쌓아놓은 현찰 비율도 낮다. 2012년 250대 상장사의 총자산 대비 현금성자산 비율은 9.2%로 미국(12.3%) 일본(16.3%) 대만(20.6%)은 물론 중국(19.0%)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도 이 비율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배당률이 낮은 것을 탓하기 전에 왜 현금 자산이 적은 가치창조 구조인지, 어떻게 하면 현찰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할 것인지 등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가치창조로부터 사안에 접근하는 정치적 목소리는 한 줌에 불과하다. 현재 국내 주식시장의 50%가량은 국내외 기관투자자, 20%가량은 개인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만 총유권자 4000만여 명 가운데 3분의 1인 14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연금 가입자를 고려하면 전 국민이 가치착출에 절대적 관심을 두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반면 기업 보유 주식은 25%가량이다. 그나마 기업은 투표권이 없다.

현재 밸류업 프로그램이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부가 다수의 정치적 요구에 부응해야 하면서도 가치창조라는 객관적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 경제 발전이라는 대명제를 생각하면 정부가 가치창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더 강하게 해야 한다.

가치창조를 받쳐주는 정책은 단순히 주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정책 전반을 손질해야 하는 것이다. 밸류업이라는 구호에만 매몰되지 말고 더 넓은 시각에서 지속적 가치창조와 가치착출이 이루어지는 정책 틀을 만들어야 한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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