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없고 대학병원 연봉 3배 …'실손 대박' 정형·정신과 개원 급증
정형외과 비급여 보험료 지급
5년간 5조8000억 넘어 최다
병원마다 진료비 '부르는게 값'
대학병원서 25만원하는 코수술
동네 병원선 2000만원 받기도
환자들 부담적어 과잉진료 묵인
결국 실손보험료 상승 '부메랑'
최근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A씨는 대학병원에 남는 대신 통증의학과 개원을 선택했다. 환자에게 무통주사를 주고 도수치료를 하면 대학병원에서보다 최소 2~3배가량 수입을 더 많이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교수는 최근 비급여 진료 중심의 다른 병원들로부터 이직 제의가 수차례 왔다. 자리를 옮겨 오면 지금 받는 월급의 세 배를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B교수는 "주변의 다른 교수들도 비슷한 연락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손의료보험의 비급여 항목에 대한 관리가 촘촘히 이뤄지지 못하면서 의료계의 '실손 한탕'을 부추기고 있다. 대학병원 교수급 인재들도 비급여 진료 중심의 개원 병원으로 빠져나가는가 하면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 지급액이 크거나 증가세가 가파른 쪽으로 의원 개원이 이뤄지고 있다. 의사 파업과 맞물려 의료 개혁의 한 축으로 실손보험의 보험금 지급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3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표시과목별 의원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내과는 575개 늘어 전체 진료과목 중 가장 증가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정형외과가 413개, 정신건강의학과가 384개 늘어 그 뒤를 이었다. 정형외과와 내과는 최근 5년간 5대 손해보험사(삼성화재·메리츠화재·DB손보·현대해상·KB손보)가 지급한 실손보험 비급여항목 보험금 1·2위를 기록한 진료과목이다. 정형외과는 5년간 5조8233억원의 비급여 보험금 지급이 이뤄졌고, 내과도 1조9268억원의 보험금이 나갔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최근 비급여 보험금 지급액이 3.4배 늘며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정신건강의학과의 정원 대비 레지던트 지원율은 178.9%(경쟁률 1.79대1)에 달했다. 성형외과의 비급여 보험금 지급은 71%나 늘었는데, 레지던트 지원율은 165.8%였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들 진료과목에서 비급여 진료가 주로 이뤄지는 만큼 허위진료나 과잉진료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또 같은 기간 비뇨의학과가 499억원에서 947억원으로 90% 늘었고, 성형외과는 250억원에서 428억원으로 71% 급증했다. 4년간 전체 29개 진료과목의 평균 증가액이 25%에 머무른 점을 감안하면 이들 진료과목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2022년 6월 백내장의 보험금 지급을 까다롭게 하는 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해 보험금 지급이 크게 줄어든 안과도 2019년 이후 3년 새 보험금 지급액 상승률이 61%였다.
특히 이들 과목은 올해 상반기 레지던트 1년 차 모집 결과에서도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모집 정원 142명에 254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가장 높았고, 안과와 성형외과의 정원 대비 지원율은 각각 172.6%, 165.8%로 바로 그 뒤를 이었다. 비뇨의학과 역시 올해 지원율이 121.9%로 지난해 113.5% 대비 크게 뛰며 주목을 받았다.
급여를 보장하는 국민건강보험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료공급자를 심사하고 평가할 수 있는 데 반해 실손보험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건강보험에서 제외되는 비급여 항목은 누구의 간섭 없이 의사들이 가격을 책정하고 적정한 매출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매일경제가 주요 비급여 항목별 최고·최저금액을 분석한 결과, 비밸브재건술(코 안쪽 수술)의 경우 대학병원(상급종합병원)에서는 25만5000~269만6000원에 진료 가격이 형성된 반면 의원급으로 내려가면 최고 금액이 2000만원으로 뛰었다.
실손보험은 전문의들이 대학병원 대신 개원가로 떠나도록 하는 주범으로도 꼽힌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비급여가 많은 진료과목의 개원의와 대학병원 의사의 수입은 최소 2~3배 차이가 나는 데다 절세 등의 문제까지 감안하면 실제 수입 격차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 부담금이 크지 않은 경우, 환자들도 비급여 항목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실손보험 누수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실손보험금 지급이 늘어나면 위험률(보험사가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이 올라가고 이는 실손보험 보험료 인상으로 연결된다. 실손보험 보험료는 2021년에는 평균 10~12%, 2022년 14.2%, 지난해에는 8.9% 오른 바 있다.
보험사 역시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적이다. 병·의원에서 수행한 진료 내역을 확인하고, 행해진 진료가 보상 범위에 속하는지를 체크하는 정도다.
지난해 비급여 보험금 지급이 급감한 안과는 관리의 사각지대가 해소될 경우 보험금 누수가 얼마나 줄어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백내장 과잉진료 등의 여파로 2021년 비급여 보험금 지급이 9514억원까지 늘어났던 안과는 지난해 1000억원대로 보험금 지급이 확 줄었다. 백내장 수술은 입원 적정성 문제가 오랫동안 도마에 올랐는데, 2022년 6월 대법원이 입원 치료가 불필요한 경우 백내장 보험금을 통원 보장 한도에서 지급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여파를 받았다.
김대환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비급여 항목이 너무 광범위하게 많고, 이는 보험뿐만이 아니라 보건의료 체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준호 기자 /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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