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장르로 '급부상' 젊은인력 '탈출 러시'… 日 아니메 '명암' [S 스토리]

강구열 2024. 3. 3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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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그대들은… ’ 장편상
유아사·신카이 등 후배 감독들 존재감
日 시장규모 25조원… 20년 새 2.67배로
2033년 콘텐츠 해외시장 175조원 목표
20대 애니메이터 年수입 2600만원 불과
대부분 고물가 도쿄 거주로 ‘빈털털이’
8년 이내 68%가 생활고로 업계서 떠나
수익도 제작사 보다 유통사가 더 가져가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83)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빛이다.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토토로’ 등 다수의 명작으로 세계인들을 사로잡은 그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아카데미상 장편애니메이션상을 거머쥐며 독보적 존재감을 과시했다. 미야자키 감독으로 대표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세계 시장에서 막대한 위상을 갖고 있다.
미국 아카데미상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한 장면.
하지만 빛이 강해진 만큼 그림자가 짙어짐을 일본은 고민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산업 근간을 훼손시킬 수 있는 징후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저임금에 시달리다 업계를 떠나는 젊은 인력, 애니메이션 산업은 성장하는데 이익은 좀체 늘지 않는 제작사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아카데미 수상의 이면에 드리운 과제다.

◆‘아니메’ 세계 주류 장르가 되다

“세계시장에서 주류 장르가 되었다”는 일본의 자신감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거둔 성과를 통해 허세가 아님이 증명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북미 오프닝(2023년 12월8∼10일) 성적은 1280만달러(약 169억원)였다. 해외 50개국에서 개봉해 1억6000만달러(2119억원)를 벌었다고 한다. 북미 지역 개봉관은 2205곳. 미야자키 감독에게 2003년 첫 아카데미상을 안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26곳에서 상영을 시작해 수상 후 약 700곳으로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노거장의 뒤를 잇는 후배들의 존재감도 크다. 유아사 마사아키(湯淺政明·58) 감독이 2017년작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로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신카이 마코토(新海誠·51) 감독의 2022년작 ‘스즈메의 문단속’은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빼어난 흥행을 기록했다.
일본 국내 영화시장에서도 애니메이션 우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일본 흥행 수입 상위 4개가 애니메이션이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158억엔(1387억원)으로 1위였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140억엔), ‘명탐정 코난:흑철의 어영’(138억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88억엔)가 뒤를 이었다.
◆12조원 규모 해외시장이 성장 견인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일본 콘텐츠의 2033년 해외시장 규모 20조엔(약 175조원).’

지난해 4월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게이단렌이 제시한 목표다. 2023년 일본 자동차 수출액(17조엔)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해외시장에서 얻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성과가 그만큼 큰 데서 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 스즈메의 문단속 홈페이지
일본동영상협회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상영, 방송, 캐릭터 상품 판매 등을 포함한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2022년 2조9277억엔(25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쓴 2020년을 제외하면 2010년 이후 성장 기조가 꺾이지 않았다. 시장 규모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2년(1조968억엔)과 비교하면 2.67배로 커졌다.
해외시장이 성장세를 견인했다. 2013년 2823억엔(2조4700억원)에서 2018년 1조92억엔(8조8500억원)을 기록, 처음으로 1조엔을 넘어섰고, 2022년엔 1조4592억엔(12조7900억원)으로 집계됐다.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일본 콘텐츠 성장세는 세계 콘텐츠 시장의 그것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정보서비스 기업 일본총련은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4∼2021년 음향영상·관련서비스의 세계시장은 1.3배 커졌지만 일본은 3배 이상이었다”며 “성장 속도가 빨라 상당한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이어 “(넷플릭스, 아마존, 디즈니+ 등) 콘텐츠 플랫폼과 중국 정부의 단속에 따른 정규 콘텐츠 구입 증가가 성장의 배경이 되고 있다”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해외시장 규모가 5조엔(43조원)을 넘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는 만큼 리딩(leading) 산업으로 키워가는 데 보다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임금에 업계 떠나는 젊은 인력

일본 애니메이션의 질주는 계속될까. 기세등등한 지금만 놓고 보면 불가능할 게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산업 전체를 떠받치고, 미래의 성장을 이끌어야 할 토대에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핵심은 젊은 인력이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는 젊은 인력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저임금이다. 2022년 애니메이터 평균 연간 수입은 455만엔(4000만원)으로 전 산업 평균인 489만엔(4300만원)과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20대 애니메이터들은 300만엔(2600만원)을 넘지 않아 같은 연령대의 다른 산업종사자들보다 많게는 120만엔(1000만원)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애니메이터 60% 정도가 물가가 비싼 도쿄도에 거주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집세, 전기·수도 등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한 달에 쓸 수 있는 돈이 2만엔(17만원)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한국을 비롯한 해외 시작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은 젊은 인력의 이탈로 이어진다. 일본총련 조사에 따르면 4년 내 애니메이션 업계를 떠나는 비율이 25%, 8년 이내가 68%에 달한다. 어떻게든 애니메이션 업계에 있고 싶지만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체 애니메이션 산업은 성장하는데 개별 제작사의 수익은 늘지 않는 기형적 구조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해외시장에서 얻은 애니메이션 관련 수익의 90% 이상은 투자에 참여한 방송사, 출판사, 광고대행사 등 유통업체가 가져가고, 제작사 수익은 전체의 6% 정도에 불과했다. 일본 국내시장 사정도 비슷해 전체 수익의 65%를 유통업체가, 16% 정도를 제작사가 갖는다.

이는 제작사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라 자금력이 풍부한 기업의 투자로 운영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저작권을 가지기 힘든 구조 때문이다. 일본총련은 “출자액에 관계없이 제작사가 저작권의 약 30%를 확보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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