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압박과 신뢰 회복…은행권, '홍콩ELS' 자율배상 나선다

김남이 기자 2024. 3. 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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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배상 홍콩 ELS, 산 넘어 산]①은행 배상한다지만 투자자 수용 여부 '관건'
5대은행, 올해 홍콩 ELS 만기도래 규모/그래픽=이지혜

KB국민은행을 비롯해 '홍콩 ELS(주가연계증권)'를 판매한 주요 은행이 모두 자율배상 추진을 확정했다. 금융당국의 압박과 은행의 신뢰 회복 차원에서 분쟁조정안을 빠르게 수용했다. 이미 하나은행은 일부 투자자에게 자율배상금을 지급했다. 다만 투자자들 사이에서 자율배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지난 29일 이사회를 열고, 홍콩 ELS 손실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기준안 수용하고, 투자자에게 자율배상을 결정했다. 금감원 기준안에 따라 기본 배상 비율을 정하고,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투자자별 최종 배상 비율을 산출할 예정이다.

금감원이 지난 11일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한 지 18일 만에 '홍콩 ELS'를 판매한 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과 SC제일은행, 한국씨티은행 등 주요 은행이 모두 자율배상을 결정했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은행권 판매 '홍콩 ELS'의 규모는 13조2000억원으로 7개 은행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H지수가 현재 수준을 유지하고, 배상 비율을 손실금액의 40%로 산정했을 경우 전체 배상금액은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은행권은 올해 1분기 회계에 배상금의 대부분을 충당부채(영업외손실)로 반영할 계획이다.

분쟁조정안을 수용한 직후인 지난 28일 하나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위원회'를 열어 개별 자율배상안을 심의·의결하고, 일부 투자자와 합의를 거쳐 배상금을 지급했다. 투자자별 개별요소의 객관적 사실확인 거쳐 합리적인 배상비율 도출했다는 게 하나은행의 설명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은행권의 자율배상안 수용이 예상보다 빠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조원이 넘는 판매 규모와 자칫 자율배상이 배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율배상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손실 대표사례의 금융당국 분쟁조정위원회도 진행되기 전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본격적인 제재 절차 돌입 전에 자율배상을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특히 금융당국이 수조원에 달할 수 있는 '징벌적 과징금' 카드를 들고 있다는 점이 선제적 배상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홍콩ELS피해자들이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은행 앞에서 집회를 열고 금융상품 손실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앞서 '자율배상을 하면 과징금 등 제재를 감경해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위반상태의 해소' 등을 고려해 기본 과징금 금액을 줄일 수 있다. 또 금융당국은 자율배상이 배임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냈다.

이와 함께 자율배상에 시간을 끌수록 은행 이미지와 고객 신뢰 관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빠른 배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날 신한은행은 "고객 가치와 신뢰 회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신속한 배상 의지를 표명하는 차원"이라고 했고, KB국민은행은 "신뢰 회복을 최우선으로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손실과 배상 규모가 작은 우리은행이 지난 22일 시중은행 중 가장 먼저 자율배상을 결정한 것도 영향을 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별 배상에 차이가 나면 고객 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며 "다른 은행이 먼저 배상에 나섰다는 점에서 배임 부담도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소비자보호그룹 내에 금융상품지식, 소비자보호 정책 관련 경험이 풍부한 외부 전문가들이 포함된 자율조정협의회를 설치하고 배상에 나설 계획이다. 하나은행이 이미 배상금을 지급한데 이어 다른 은행도 다음달부터 손실이 확정된 고객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배상에 나선다.

은행권이 금융당국의 자율배상을 수용했지만 투자자의 수용 여부는 별개다. 투자자들은 'ELS 피해자 모임' 등을 만들어 100% 배상을 주장하고 있다. 전날에도 KB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서 투자자들은 "사적화해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목소리를 냈다.

아울러 투자자가 자율조정안을 받아들이더라도 배상 비율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예·적금 원금보장상픔 가입을 목적으로 방문한 여부, 별도 고려사항 등 정성적 요소의 해석 여부가 다를 수 있어서다. 은행과 투자자간의 자율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홍콩 ELS 손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향후 H지수 움직임에 따라 손실률이 크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자율배상이 이른 감은 있다"며 "DLF(파생결합상품) 자율배상 때도 대부분 투자자가 자율배상을 받았지만 일부는 결국 소송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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