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은의 이슈 뒤에는] “제발 환자 등지지 말아주세요”…묵묵히 의료현장 지키는 영웅 '간호사'

신정은 2024. 3. 30. 09:1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공의 병원 이탈에 간호사 업무 과부하
“연차 높은 간호사도 응급상황 항상 불안”
"진료 시기 늦어지는 환자 보면 안타까워"
"전공의 하루빨리 의료현장 복귀하길"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이슈’를 겪으며, 혹은 견뎌내며 살아간다. 감동하고 환호하거나 때론 분노하는 다양한 이슈거리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시각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을까. 곳곳 발생하는 이슈들의 속 사정을 들어보고, 단편적으로 바라봤을 땐 보이지 않던 측면의 시각으로 다시금 조명하고자 한다.
 

3. “제발 환자 등지지 말아주세요”…묵묵히 의료현장 지키는 영웅 ‘간호사’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돌입해 병원을 이탈한 지 어느 덧 한 달도 더 넘어가면서 국민들은 의료 공백을 현실로 맞이했다.

정부는 ‘2000명’ 의대 정원 증원을 고수하면서도 미복귀 전공의를 대상으로 내리기로 했던 면허정지 처분은 잠정 유예했다.

그러나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침묵 중이다.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 제출과 함께 진료를 축소하고 있다.

이처럼 의사 단체들의 집단행동 수위가 높아지면서 정부와의 ‘의정 갈등’이 여전히 봉합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의료 현장 최일선에서 불안과 걱정에 떨고 있는 환자들을 묵묵히 지키는 이들은 바로 간호사들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 이를 지켜보는 간호사들의 마음은 혼란스럽다.

간호사들은 지금도 업무적·심리적 부담을 안은 채 의사가 대거 사라진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대학병원 간호사와 상급종합병원 간호사에게 이번 ‘의료 공백’ 사태를 바라보는 생각을 묻고 의료현장 뒤편에서 이들이 외치는 목소리를 들어봤다.

▲ 지난 18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가 위급한 환자에게 달려가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의사 업무인 드레싱·채혈 등 전공의 이탈 장기화에 지쳐가는 간호사

춘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 A씨는 전공의 부재로 인해 업무에 과부하가 생겼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A씨는 최근 “이건 누가 해?”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으며 일하고 있다. 처방이 나면 간호사가 확인 후 업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시행 요청을 해야 하는데 전공의, 수련의 파업이 지속되자 누가 시행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난감할 뿐이다.

평일엔 업무 대체자들이 여럿 배정되지만, 주말의 경우 평소라면 바로 시행했을 업무가 더디게 실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간호사 B씨가 근무하는 상급종합병원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전공의 이탈 장기화는 환자 감소로 이어져 병상은 줄고, 병동은 통폐합되면서 일부 직원은 무급휴가에 들어가는 등 비상 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의사의 업무인 각종 드레싱, 채혈 등을 암묵적으로 간호사가 감당하다 보니 업무량도 증가한 상황이다.

최근엔 전공의의 부재로 교수들이 평일 야간 및 주말 당직을 교대로 돌아가면서 도맡고 있다.

이에 따라 제증명 서류작성, 영양제, 자가 약 처방 등 응급상황이 아닌 환자들의 요구 사항에 대해선 즉각적인 해결을 해줄 수 없다.

B씨는 “환자들에게 ‘지금 병원 상황이 좋지 않아 급한 게 아니면 처방이 불가할 수 있다’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 지난 2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수술실 인근에서 의료진이 인큐베이터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진료 지원(PA) 간호사 “연차 높은 간호사도 응급상황 대처 항상 불안”

앞서 정부는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차원에서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한시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일부터는 ‘진료 지원(PA) 간호사’ 자격으로 할 수 있는 업무를 명시한 보완 지침을 시행, PA 활용 범위를 확대했다. 불법의 경계를 오가던 PA의 의료행위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와 관련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A씨에 따르면 사실상 PA는 의사 파업 전부터 기존 업무를 비롯해 수련의 역할, 신규 PA 교육까지 맡고 있다.

A씨는 “PA 교육도 급하게 이뤄진 후 독립하기 때문에 미숙한 상태로 업무가 수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며 “현재 PA는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업무 부담에 시달리고 퇴근 시간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초과근무를 하고 있어 피로도 누적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리 연차가 쌓인 간호사라도 환자에게 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며 “응급상황이 생길 경우 긴급한 대처를 할 수 있을지 항상 불안한 마음을 지닌 채 일을 하고 있다”고 염려했다.

이처럼 전공의들의 업무를 간호사가 대신하게 되면 불법 의료 행위와 의료 사고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B씨는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의 모든 관계자들과 내원객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 전공의 업무를 간호사가 떠맡게 되면 정부가 그에 따른 법적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 정부가 진료지원(PA) 간호사 제도 개선 입장을 밝힌 가운데 지난 10일 도내 한 대학병원 응급전용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들이 보호자들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자료사진]

◇ “담낭염 환자, 치료 늦어 폐혈성 쇼크로 중환자실 이동 안타까워”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움직임이 확대되면서 환자들은 치료와 수술이 무기한 연기되는 현실에 부딪히고 있다.

B씨가 전한 현재의 병원 상황은, 전공의 파업 이후 응급실에선 초응급 환자가 아닐 경우 진료를 봐 주지 않을뿐더러 위급하지 않은 수술은 연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는 “작은 종합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가 한 분 계셨는데 그곳에서도 치료가 불가해 큰 병원으로 권유를 받았지만, 결국은 다시 우리 병원으로 와서 외래 진료를 받고 입원했다”며 상황을 전했다.

해당 환자는 당시 담낭염으로 인한 염증이 심한 상태였다. 하지만 치료를 받기까지 시간이 지체되자 입원 후 혈압이 떨어지고, 패혈성 쇼크 증상이 발생해 집중 관찰이 필요한 중환자실로 전동 됐다.

B씨는 “치료 시기가 늦춰지는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례를 목격할 때마다 속상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같은 여파로 현장에 남은 간호사들은 전공의를 향해 ‘조속한 병원 복귀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A씨는 “파업한 의사들에게도 지난달까진 월급이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며 “업무를 짊어진 간호사를 뒤로하고 왜 그들에게 보상이 가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발의 이유도 이해는 가지만 적절하지 않은 행위라는 생각도 든다. 얼른 현장에 복귀해 주길 바랄 뿐”이라며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삼지 말고 그들을 등지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B씨 또한 “하루빨리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고 의사 파업을 종결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병원에 남아있는 환자들과 더불어 병원 재정 악화로 무급휴가에 들어간 직원들을 떠올리면 이른 시일 내에 의정 간의 타결점을 찾아 진료가 정상화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신정은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