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서해랑길을 가다…②아리랑 길(7코스)
[편집자주] 날이 풀리고 산하엔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습니다. 길 따라 강 따라 굽이굽이 얽힌 삶과 역사의 흔적을 헤아리며 걷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뉴스1>이 '서해랑길'을 따라 대한민국 유일의 '민속문화예술 특구'인 진도구간을 걸으며 길에 새겨진 역사, 문화, 풍광, 음식, 마을의 전통 등을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신들메를 고쳐 매고 함께 떠나볼까요.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 아침이슬 같았던 왕조의 숨결이 남아 있는 땅 전남 진도는 당시 세계 최강의 정복자인 몽고군에 맞서 싸웠던 왕조의 한이 깃든 땅이다. 진도 서행랑길 7코스는 아침이슬 같았던 삼별초의 숨결이 서려 있는 용장성에서 출발한다.
고려 배중손 장군이 1270년 왕온(王溫)을 내세워 고려 정통정부의 진도 천도를 선포하고 항몽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 용장성이다.
용장성의 삼별초는 일본에 국서를 보내고 전라도와 경상도 연안의 내륙까지 세력을 떨쳤으나 여몽 연합군에 의해 진도 벽파항에 도착한 지 8개월여 만에 최후를 맞는다.
삼별초의 막이 내린 진도에 잔인한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사라졌다. 젊은 진도사람은 포로가 돼 몽고로 끌려가고, 늙은 진도사람은 죽임을 당했다. 운 좋게 남겨진 사람마저 공도(空島)정책으로 섬을 떠났다.
초여름의 빈 섬에 찔레꽃이 피고, 떠난 사람들이 그 하얀 꽃을 생각하며 울었다. 세월이 흘러 눈물은 마르고 DNA가 된 슬픔은 진도 땅 아리랑 고개를 해학의 메김소리로 넘는다.
용장성(국가지정 사적 제126호)에는 배 장군의 동상과 사당, 고려 항몽 충혼탑, 삼별초 홍보관 등이 조성돼 있다. 홍보관에는 삼별초 항쟁의 의미와 대몽항쟁 현장을 VR 애니메이션 등으로 체험할 수 있다.
홍보관 옆에 다랑이 논 같은 형태의 용장성행궁터가 있다. 개성 만월대를 본떠 조성했다는 궁궐터에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았다. 주춧돌위로 스산한 바람이 불고, 왕조의 기개가 하룻밤 꿈처럼 덧없다.
헤매인 발길이 누리는 덧셈의 행운 바람을 털고 행궁터를 지나 30~40분의 산길을 오르면 아름드리 돌로 쌓은 성터가 펼쳐진다. 용장산성이다. 길이가 13㎞에 달한다는 산성은 이쪽 산봉우리에서 저쪽 산봉우리까지 끝없다.
오른쪽으로 가야 하나, 왼쪽으로 가야 하나. 산길에 가로 놓인 산성에 서해랑길 이정표가 없다. 지나온 길과 가야할 길을 함께 의심하며 한참을 더 가다 결국 뒷길을 앞길 삼아 되돌아섰다.
돌아선 길이 난감하지만 그렇다고 길 잃은 발길의 연산이 뺄셈만은 아니다. 산성 돌담아래 한 송이로 핀 노루귀와 눈 맞추고, 산성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다도해 풍광만으로도 길 잃은 연산은 충분한 덧셈이 된다.
서해랑길은 용장성행궁터에서 산길로 오르지 않고 U턴하듯 '삼별초 호국역사탐방길'을 타고 용장마을을 지나 야트막한 성재고개로 향한다. 낙엽 쌓인 자드락길에 봄풀이 얼굴을 내밀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진달래꽃, 생강나무 꽃이 시샘하여 한창이다. 고갯길엔 한시절을 맞고 있는 꽃과 잎, 나무와 풀들의 비릿한 배냇내로 가득하다.
오일시, 십일시…시장은 마을 이름이 되고 고개를 내려선 길은 도평저수지를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급히 꺾어지며 들판을 가로질러 군내천을 끼고 1㎞쯤 가다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 오일시 마을로 간다.
가는 길 왼쪽 멀찍이 정유재란순절묘역이 보인다. 재란 때 숨진 진도사람들의 묘역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선 수리와 보호를 위해 명량대첩 직후 당사도를 거쳐 고군산열도 등 서해로 진을 옮기자 진도 땅은 왜군의 보복 대상이 된다. 묘역엔 이때 숨진 주민과 병사들의 232기 무덤이 남아 있다. 정유재란순절묘역은 서해랑길이 경유하지 않는다.
서해랑길로 되돌아 온 발길은 곧이어 오일시 장터에 닿는다. 진도에는 시(市)가 두 군데 있다. 이 곳 고군면 오일시와 임회면 십일시다. 시장이름이 마을이름이 된 지명이다. 오일시는 우시장까지 열릴 만큼 큰 시장이었으나 지금은 여느 전통시장과 다를 바 없이 쇠락,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장터 앞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 한 그릇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나선 길은 오일시길을 따라 고성초등학교 뒤편으로 이어져 '장흥임씨세장비'를 돌아 산길로 들어선다.
줄곧 콘크리트 포장도로에 쇠진한 발길이, 꺾어져 가늠되지 않는 산길을 앞에 두고 숲길을 상상했다. 하지만 삶의 길이 그러하듯 산길 또한 다르지 않다. 바람과 달리 길은 평지를 끝내고 가파른 오르막 포장도로로 새롭게 시작한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가파른 산길은 축제산 쉼터를 지나 첨찰산 이정표 앞에서 비포장길로 바뀌지만 갈 지(之)자의 된비알은 여전하다.
'진도 기상대 1.3㎞'라는 이정표의 표식과 달리 치올려 본 첨찰산 정상의 기상대 하얀 돔이 까마득하다. '이 길도 곧 끝나리라'는 자기최면으로 다시 떼는 발길은 수시로 멈추고, 그럴 때마다 두 눈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첨찰산 고갯마루에 서면 '시점에서 9.8㎞, 종점까지 2.4㎞'라는 이정표가 반긴다. 왼쪽으로 진도기상대가 보이고, 오른쪽 200m쯤에 첨찰산 정상의 봉수대가 있다. 해발 485m의 진도 최고봉인 첨찰산 정상에 서면 진도대교와 망금산 진도타워가 울독목과 함께 아스라하다.
고갯마루에서 목적지 운림산방까지는 진도아리랑비를 향해 동백나무 울울창창한 숲길을 따라 내려간다.
햇살은 동백나무 숲에 걸려 산길에 내려오지 못하고, 동백꽃만 가지 끝에서 내려와 낙엽 쌓인 숲길에 붉게 핀다. 그늘져 서늘하고 완만하여 여유롭다. 지금껏 걸어온 험난한 여정에 대한 보상이다. 보상은 오르내림에 대한 산길의 정의다.
동백숯을 만들던 숯 가마터가 검은 웅덩이처럼 연이어 모습을 드러내고 길 옆 봉수골에서는 바위를 타고 소리 내 흐르던 물이 소를 만들어 쉬어 간다.
발길이 아리랑비에 닿을 때쯤 일기예보의 약속대로 봄비가 내려 한낮의 호젓한 숲길에 어둑살이 끼지만 숲을 지키는 동백나무 잎은 윤슬로 빛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났네' 진도아리랑비는 구간종점인 운림산방 바로 위에 있다.
'서방님 오까매이 깨벗고 잤더니 문풍지 바람에 설사병이 났~네'. 에구머니나. 아리랑 메김소리의 적나라한 통속이 산길의 피로를 날린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아리 아리랑' 운림산방으로 간다.
여행 팁 - 해남 땅끝에서 인천 강화를 잇는 109개 코스의 '서해랑길'가운데 진도구간은 6코스부터 12코스가 지난다. 진도 두 번째 구간인 7코스는 용장성에서 출발해 용장마을- 도평저수지- 오일시마을- 고성초등학교- 축제산 쉼터- 첨철산 진도기상대 입구- 진도아리랑비- 운림산방에 이르는 12.2㎞의 길이다. 체력에 따라 5시간에서 6시간 정도 소요된다. 가파른 산길과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많아 난이도 상급이다. 용장성에서 1시간30분쯤 걸려 닿는 오일시 마을에 음식점을 비롯한 상가가 발달돼 있다. 종점인 운림산방 근처에도 식당과 찻집이 즐비하다. 운림산방 앞 쌍계사 주차장에 무료 주차 가능하다.
kanjo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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