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보면 가슴 답답” 보수층 입 닫았다

김태준 기자 2024. 3. 30. 03: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응하는 보수, 왜 줄었나
3월 29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 삼덕공원에서 열린 '국민의힘으로 안양살리기' 집중유세에서 유권자들이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의 연설을 경청하고 잇다./ 이덕훈 기자

최근 여론조사에서 자신이 보수라고 응답하는 이는 줄고, 진보라고 답하는 이들의 비율은 점차 커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보수층이 줄어들었을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보다는 보수 유권자들이 최근 대통령과 여권 상황에 실망하면서 여론조사 응답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른바 ‘보수 과소 표집’ 현상이라는 것이다.

경기 고양시의 프리랜서 김모(50)씨는 “요즘 상황을 보면 가슴이 갑갑해져서 쉴 때도 시사 뉴스보다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며 “여론조사나 투표에 열심히 응해봤자 대세는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투표할지 말지도 고민”이라고 했다. 직장인 남모(여·26)씨는 “민주당은 진보를 표방할 뿐 진보적 가치를 따르지 않고, 자본주의에 반하는 듯한 행보 때문에 여당을 지지한다”면서도 “여당 자체로 호감이라면 여론조사에도 기꺼이 참여할 텐데 그렇지 않다 보니 지지 의사를 표현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대전 유성구서 지지 호소 - 김부겸(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29일 조승래(왼쪽) 대전 유성구갑 후보 지역구인 유성시장에서 허태정 대전시당 상임선대위원장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실제로 최근 본지가 여론조사에서 ‘지난 대선에서 누구를 찍었냐’고 물어봤더니 ‘윤석열 대통령을 찍었다’는 응답 비율이, 실제 2022년 대선 득표율보다 10%포인트 안팎 낮게 나왔다. 보수적 유권자들이 입을 닫거나 여론조사를 피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본지·TV조선·케이스탯리서치의 3월 9~10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마포을에서는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찍었다고 응답한 이들은 36% 였는데, 마포구에서 실제 윤 대통령 대선 득표율은 49%였다. 반면 이재명 후보를 찍었다고 응답한 이들은 46%로, 이재명 대표의 실제 대선 득표율 47%와 별 차이가 없었다. 인천 계양을이나 경기 성남시 분당구 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됐다.

그래픽=양인성

여론조사 관계자는 “윤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여론조사에서 숨는 현상은 확실하게 관찰된다”며 “여론조사 기관이 의도를 가지고 작업한 게 아니라 진보 정당이 유리한 국면일 때는 여론조사에 진보층 지지자가 많이 참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갤럽의 2월 27~29일 조사(전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조사)에서는 응답자 비율이 보수 34.8%, 진보 26.4%였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39%였다. 이후 여권 지지율이 하락했는데 3월 26~28일 조사에서는 보수 31.0%, 진보 29.9%을 기록했다. 2월 말 보수·진보 격차가 8.4%포인트에서 3월 말 1.1%포인트까지 좁혀진 것이다.

보수층 응답이 낮은 건 여권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종섭 주호주 대사·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 문제가 불거진 이후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경북 포항에 사는 서모(남·61)씨는 “뉴스도 보기 싫고, 여론조사 전화가 와도 ‘어차피 뻔한 결과일 텐데 받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생각에 관심을 끄는 편”이라며 “이번처럼 투표장 나가기 싫은 선거는 처음”이라고 했다. 대구 동구 주민 박모(남·78)씨는 “뉴스를 보면 여당이 위기라는 소식만 들리니 여론조사나 정치 자체를 외면하는 분위기”라며 “대구에서도 여당이 안전하지 않다는 등 선거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많이 퍼졌다”고 했다. 자영업자 양모(남·41)씨는 “일부러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아 ‘남은 선거운동 기간 긴장 좀 하라’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보수 과소 표집은 이른바 ‘샤이 보수’와는 다르다. 샤이 보수는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투표할 때 그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지금 여론조사를 회피하는 보수층은 정치에 실망해 아예 투표장에 나가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2020년 총선 때도 (당시 미래통합당이) 샤이 보수 타령 하다가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는 모두 안다”고 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여론조사에 보수 또는 진보가 더 많이 표집되는 것 자체가 여론의 반영이다”라며 “샤이 보수를 강조하는 건 여당에도 좋지 않다”고 했다.

☞과소 표집·과대 표집

여론조사 참여자 중에 특정 성향(보수 또는 진보)을 가진 이들이 실제보다 많거나 적게 잡히는 현상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특정 성향이 많이 잡히는 건 조사 왜곡이라기보다는 조사 당시 각 정당의 상황과 관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령 보수 정당의 흐름이 좋을 때는 보수 성향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응답해 샘플에 많이 잡힌다는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