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윤 대통령의 선택

박정훈 논설실장 2024. 3. 30.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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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패배라는
예상된 위기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정해진 결말을 맞는다면
대통령도 힘들고
피해 입을 국민은
더 불행해질 것
총선 주요 격전지인 한강벨트,낙동강벨트의 여야 지지율

4·10 총선 판세는 야당 쪽으로 기우는 흐름이 뚜렷하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여당 참패, 야당 압승’을 예고하고 있다. 역대 선거를 보면 투표 열흘 전쯤의 판세가 뒤바뀐 경우는 드물었다. 이변이 없는 한 지금 추세가 선거일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은 ‘153석+α’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180석을 얻었던 4년 전 총선 기록을 넘어서고 야권 전체론 ‘200석+α’가 가능하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야당 후보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내로남불 재산 증식 논란이 불거지고 있지만 이것이 전체 판세에 얼마나 영향 미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은 180석을 갖고 21대 국회 내내 입법 폭주를 서슴지 않았다. 그와 유사한, 아니 지난 4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질 여소야대가 현실로 닥쳐왔다는 얘기다.

새 의회 권력의 주인공이 될 사람은 이재명과 조국이다. 두 사람 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찬 강성 좌파다. 이들이 주도할 야당 압승의 국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더 강성화된 거대 야권이 정부 정책을 제동 걸고, 각종 포퓰리즘 법안들을 대거 밀어붙일 것이다.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비롯한 윤 정부의 국정 과제는 입법 장벽에 가로막혀 무엇 하나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상태에서 레임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법 정의가 더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한국적 사법 현실에서 판사들이 정치 지형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백현동·위증 재판이 더 늘어지고, 조국 사건의 대법원 선고가 늦어질지 모른다.

이미 야당은 다음 국회에서 무얼 할 것인지 ‘투쟁 리스트’를 작성해 놓았다. 첫 번째가 김건희 여사 특검이다. 거부권이 행사된 주가조작 사건에다 양평고속도로·디올백 이슈까지 얹어 종합판 특검법을 추진하겠다 한다. 이태원·채상병 쌍특검도 꺼내 들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야권은 선거 승리의 동력을 몰아 대대적 공세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촛불 정국’을 조성해 정권의 숨통을 조이려 할 것이다.

조국은 윤 정권을 ‘데드 덕(죽은 오리)’으로 만드는 게 자신의 정치적 목표라 했다. “3년도 길다”며 윤 대통령을 중도 퇴진시키는 게 당을 만든 이유라 했다. 만약 야권이 200석 이상 확보한다면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다. 민주당은 벌써부터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있다. 탄핵 요건에 해당되지 않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게 뻔하다는 지적에 조국은 ‘개헌’까지 들고 나왔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하면서 부칙에 현직 대통령 임기 단축 조항을 넣자는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을 어느 한 사람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그러나 그 중심에 윤 대통령 문제가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정권 심판론’이 ‘정권 안정론’을 압도하고 있다. 야당이 공천 갈등과 분당(分黨), 부동산 논란 등을 빚으며 그토록 자살골을 넣어도 판세는 요지부동이다. 한때 정권 심판론이 수그러드나 싶었지만 이종섭·황상무 이슈가 터지며 또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이 잠시 잊었던 ‘대통령 리스크’를 다시 떠올린 것이다.

부산에 출마한 한 여당 후보는 “시민들이 대통령에게 화가 나있다”고 전했다. 이번 총선을 ‘정권에 회초리 드는’ 선거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윤 대통령의 용장(勇將)형 리더십엔 양면성이 있다. 흔들리던 국가 정체성을 바로잡고 국정 진로를 정상화하는데 성과를 냈지만, 타협 없는 정면 돌파 스타일이 독선·불통으로 비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피의자 신분인 전직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해 출국시키고, 참모의 ‘회칼’ 망언에 즉각 대응하지 않은 것 등이 중도층의 화를 돋우었다. 윤 대통령으로선 억울한 점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많은 국민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 예상된 위기 앞에서 윤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선거 참패의 예정된 결과를 맞이하는 것이다. 정치는 시끄럽고 국정은 곳곳에서 차질을 빚을 것이다. 미래를 좌우할 중차대한 국가 과제들은 표류할 것이다. 남은 3년 간 윤 대통령도 힘들겠지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국민이 더 불행하다.

다른 한편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선택이 있을 수 있다. 유권자가 회초리 드는 이유인 일방통행식 국정 스타일을 바꾸고 국민 앞에 고개 숙이는 것이다. 늦긴 했지만 이종섭 대사 경질은 대통령의 변화를 알리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의업(醫業) 사태의 불부터 꺼야 한다. ‘2000명 증원’ 숫자를 고집하지 말고 대승적으로 나서 대화의 물꼬를 튼다면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 효과가 클 것이다. 윤 대통령의 진심이 전달된다면 국민의 화도 누그러지고 꺼내 들었던 회초리도 내려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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