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제1야당 대표의 ‘균형 외교’
더불어민주당 비례 위성정당의 남성 출마자 중 최상위 순번(2번)을 받은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략통이다. 달변이되 결코 흥분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토킹 포인트를 짜기 때문에 한때 미국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한국 외교관으로 꼽혔다. 외교부 초년 시절엔 러시아 등 동구권 업무를 주로 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3시, 중국이 9시면 우리는 1시 방향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균형감도 중요하지만 우리 외교의 근간(根幹)은 한미 동맹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성남시장 이재명’이 워싱턴을 방문한 건 2016년 이맘때였다. 이른바 ‘무상 시리즈’로 중앙 정치에 이름을 알리며 야권의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그에게 미 조야(朝野)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한 싱크탱크가 토론 자리를 마련했는데 간담회가 끝난 뒤 분위기는 처음과 꽤 달랐다고 한다. 북한이 새해 벽두부터 핵실험을 하며 폭주하던 와중에 이미 오래전 사망 선고를 받은 ‘햇볕 정책’을 두둔했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였다. “옆집에 나쁜 친구가 살고 있는데 때리면 기분은 좋은데 더 포악해진다. 자존심 상하더라도 가족 안정을 위해 평화적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
국내에선 상대방의 티끌만 한 과오도 참지 못하는 이 대표가 국운이 걸린 외교·안보의 난제들을 다루는 시각이 대체로 이렇다. 지난 대선 때 우크라이나 전쟁을 “코미디언 출신 정치 초보 대통령이 러시아를 자극한 것”이라 분석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했다. 이번 총선에서 “(대만 문제 갖고) 왜 중국에 집적거리냐” “그냥 셰셰(謝謝·고맙다는 뜻) 이러면 되지”라고 말한 것도 비슷한 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2년 전 이 대표에게 ‘대통령이 되면 바이든과 시진핑 둘 중 누구를 먼저 만나겠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런 게 가장 위험한 생각이고 외교는 실용주의”라며 언변을 뽐냈다. ‘우문현답’이라 생각했는지 답변 영상을 한동안 유튜브 대문에 걸어 놓기도 했다.
균형자를 자처하며 그럴듯한 말만 하고, 적당히 눈치를 봐가며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게 상책(上策)이다. 하지만 이런 단물만 빨아먹는 체리피킹은 대한민국이 세계의 변방일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신장된 국력에 걸맞은 책임과 역할을 요구받고 있고, 미·중 패권 경쟁으로 국제 정세가 양극화하면서 회색 지대에서 선택적 침묵을 하는 일도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지금 한미가 만나면 중국 얘기뿐이다. 행여나 더 큰 지도자가 된 이 대표가 ‘셰셰 하면 되지’란 단견으로 외교에 임하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미아가 된다. 총선이 끝나면 승패에 관계없이 위 전 대사 손을 잡고 워싱턴에 한번 들르는 건 어떨까. 민주·공화당 출신 따질 것 없이 동맹의 정치인, 전문가들과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8년 전과는 공기가 또 많이 달라졌음을 이 대표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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