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북망산 경제학, 의료 서비스 편차 따라 값 달라져야

2024. 3. 3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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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가 생중계 되고 있다. [뉴스1]
저마다 벼슬하면 농부할 이 뉘 있으며 /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김창업)

조선시대 김창업이라는 선비가 지은 시조다. 혹시 시조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한 가지 설명을 덧붙이면 북망산(北邙山)은 중국 낙양성의 북쪽에 위치한 산인데, 낙양 사람들의 묘지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유래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어서 묻힌 곳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학생 시절 참으로 운치 있고 나름의 철학이 담긴 시조라 생각해서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의술보다 치료비 없어 북망산행 많아

하지만 현재 의사 증원을 두고 갈등이 첨예한 대한민국의 경제학 전공자로서 이 시조를 다시 읽어보면 막중한 책임감과 함께 우울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안동 김씨 권세가의 집안에 태어나 형제들이 모두 높은 벼슬을 했지만 초야에 묻혀서 글과 그림을 즐겼다는 김창업이 살았던 조선 시대는 물론이고, 내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20세기만 해도 사람이 죽어서 북망산에 묻히는 이유는 의사가 병을 고치지 못해서였다.

지위가 높고 돈이 많다고 해서 평범한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사람이 언제 죽는가는 당연히 병을 못 고치는 의사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의학의 발전은 정말 눈부시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내 집안만 봐도 할아버님은 20대에 병으로 돌아가셨고, 그 형제분들도 40세가 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버님과 어머님의 형제분은 모두 건강하게 80대 인생을 누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부모님의 형제분들이 모두 병에 한 번도 안 걸린 것은 전혀 아니다. 20세기라면 손도 대지 못할 중병에 걸렸다가 치료받고 살아난 분들도 몇 분이 계시다. 시대를 잘 타고 난 덕분에 이제 사람들은 100세까지 산다는 것이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니게 됐다. 문제는 의학이 발전해 의원이 병을 아주 잘 고치게 되었고 앞으로 미래에는 더욱 의학이 발달할 것이지만 여전히 인간은 죽어서 북망산에 묻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제 인간이 북망산에 묻히는 책임은 사람들의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한 경제 전문가가 오롯이 질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경제학과 교수인 내가 의대 정원을 놓고 전 국민이 고통을 겪는 현 상황에서 김창업의 시조를 보면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국내 최초로 세브란스에 도입돼 치료를 시작한 중입자가속기는 가격이 3000억원이라고 한다. 수술을 하지도 않고 몸 안의 암세포만 골라서 1분 정도 만에 태워 없애는 꿈의 치료기라고 하니, 미래에는 암으로 죽는 사람은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에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치료비용이다. 이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지만 돈이 없어서 치료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의학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학의 문제라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도 국내 최고 수준의 병원이 있다. 같은 교수이지만 의과대 교수님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65세 정년퇴임 날까지 매일 7시 이전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치열하게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의학이 아니라 경제학을 전공하기를 백 번 잘 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물론 의대 교수님들의 연봉은 나보다 높지만 근무 시간과 스트레스를 고려하면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오히려 의대 교수님을 보고 안쓰러운 기분이 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문제는 모두 잘 알고 있는 저렴한 의료 수가이다. 환자 한 명당 진료와 치료를 하고 받을 수 있는 돈이 국민건강보험에 의해 낮게 규제되고 있기 때문에 병원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마치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듯이 5분마다 한 명의 환자를 보아야 하는 형편이다. 각각의 환자들은 개인적으로 정말 중대한 병 때문에 병원을 찾은 것인데, 5분마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해야 한다니 나라면 아무리 큰돈을 주더라도 거절할 것 같다.

하지만 대한민국 의사들은 이런 일을 척척 잘 해낸다. 현재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도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학생이 유학을 오는데, 이들이 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서는 모두 칭찬 일색이다. 이렇게 빨리 예약이 가능하고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해주면서 의료비는 깜짝 놀랄 수준으로 저렴한 것에 놀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내가 유학했을 때의 일이다.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나는 어느 날 치통이 있어서 재학하던 하버드대 보건소를 방문했다. 그리고 두 가지 측면에서 깜짝 놀랐다.

우선 치과 치료실이 너무 깨끗했다는 것이다. 의자와 치료 기구가 모두 비닐로 싸여 있었고 마치 우주복 같은 옷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 치료를 해주는 것이다. 내가 예약된 30분을 꽉 채워서 치료를 받고 나자 간호사가 들어와 의자와 치료 기구를 싸고 있던 비닐을 모두 벗겨내고 다음 환자를 위해서 새로운 비닐을 씌웠다. 내가 한국에서 다니던 치과는 그야말로 5분에서 10분 만에 환자를 받아서 치료했고, 앞의 환자에게 썼던 치료 기구를 다시 나를 치료할 때 사용했다. 역시 의료 선진국은 다르다는 사실에 우선 한 번 놀랐다.

그런데 기쁜 마음으로 치료를 마치고 나오던 나는 치료비 청구서를 보고 하늘이 무너질 만큼 놀랐다. 한국의 치과에 비해서 미국 치과의 진료비가 10배 이상 비쌌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이후 나는 치통이 있더라도 참다가 여름 방학에 한국에 들어와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나는 치과 치료의 위생도 중요하고 품질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이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한국의 의료 설비나 위생 수준은 미국에 비해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그것은 뛰어난 인재들이 의대에 진학해서 엄청난 기술과 효율성으로 진료와 치료를 하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상품의 품질은 높고 가격이 저렴하면 사고자 하는 사람은 많아지는 반면, 만들어도 이윤이 별로 남지 않기 때문에 팔려는 사람은 줄어 공급 부족이 발생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원리인데 대한민국 의료 산업에도 이런 경제학은 정확히 적용된다.

현재 큰 문제가 되고 있는 특정 진료 분야의 의사 공급 부족 현상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에 추진하는 의대 정원 증가는 의사 공급을 늘린다는 점에서는 경제학적 해결 방안인 것은 맞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대 정원의 증가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논리도 경제학과 부합하는 점이 있다.

최고 서비스 받으려면 높은 가격 치러야

현재 대한민국의 의학 교육은 소수 정예를 선발해 양성하는 시스템이다. 마치 모든 군인을 특전사 수준으로 양성하는 것과 같다. 개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 입대를 시켜서 특전사 수준의 엘리트 교육을 시키는, 소수 정예의 의사가 전 국민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대한민국의 모든 의사들은 상당히 높은 품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정원을 늘리면 더 이상 모든 구성원을 정예 멤버로 육성할 수 없게 된다. 아마 현재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마음에는 앞으로 엘리트 의사만 육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이로 인해 평범한 의사가 배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당연히 있을 것이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의료계의 우려는 맞기도 하고, 또 틀리기도 하다. 우선 맞는 점은 앞으로는 소수 정예 엘리트 의료인만 육성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특전사 대원도 있지만 평범한 보병 소총수도 나타날 것이다. 우리 국민들도 이런 의료계의 우려는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수 정예로 계속되면 특정 지역이나 특정 분야에서 진료를 아예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의료 서비스의 품질에 편차가 생겨도 이를 감수해야 한다.

반면 의료계의 우려가 틀린 점은 의료 서비스 품질의 편차가 생기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고 우려만 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 아파트에는 고급 외제차를 타는 사람들이 상당히 살고 있지만 나는 20년 된 국산차를 아직도 타고 있다. 물론 나도 외제차를 타고 싶지만 돈이 없으니 기꺼이 감수한다. 옷이나 음식이나 이 세상의 모든 상품에는 품질의 격차가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감수하고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의료 서비스 품질의 격차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가격의 격차이다. 사람의 수명이 늘어나고 비싼 첨단 의료 장비가 도입되면서 모든 사람이 저렴한 가격에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로도 가능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실력이 뛰어난 의사의 진료비가 평범한 의사의 진료비와 같도록 유지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을 아주 기초적인 의료비를 제공하고 그것을 초과하는 고가의 진료와 치료는 개인이 선택적으로 부담하는 상황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미래의 북망산을 책임져야 하는 한 경제학자의 생각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게임이론의 권위자로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당신의 경제 IQ를 높여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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