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건전재정, 감세, 민생예산…병립 가능할까

2024. 3. 3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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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 쏟아진 감세와 대규모 개발 정책


지출 구조조정 정부 예산 의지와는 상치


실현 가능성 살펴 정책 우선순위 정해야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짜기에 돌입한다. 지난 2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5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에 따라 부처별 요구안을 만들고, 이를 취합·조정한 정부 안을 오는 8월 말까지 짜야 한다.

예산안 편성이 원래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년도 예산안은 그야말로 난제가 될 전망이다. 건전 재정과 민생 예산, 감세라는 세 가지 화두의 동거를 최적화할 방안을 찾아야 해서다. 총선을 앞두고 쏟아진 각종 감세와 선심성 공약 등을 내년 예산안 지침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가 관심이다.

내년도 예산안 지침에서 방점이 찍힌 건 ‘지출 구조조정’이다. 내년도 정부 예산에서 재량지출을 10% 이상 감축해 건전재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법령에 의해 이미 지출 규모가 결정된 의무지출(올해 본예산 기준 53%)을 뺀 나머지 지출을 줄여 절약분을 중점 투자 분야에 투입하겠다는 방침이다.

건전 재정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지켜온 기조다. 문재인 정부 당시 확장 재정을 펼치며 5년간 나랏빚은 400조원가량 급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50%대로 높아졌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주요 내용’에 따르면 내년도 국가채무는 1273조원을 넘어선다. 그런 만큼 미래 세대를 위해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는 건 옳다. 허투루 쓰거나 부지불식간에 새는 예산의 낭비를 막고 정부 지출의 효율을 꾀하겠다는 것도 맞는 방향이다.

그런데 건전 재정 기조에 복병이 등장했다. 총선을 앞두고 24차례나 열린 민생토론회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 현장에서 제기된 민생 과제에 대한 해법을 담아 (예산안을) 편성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계산이 복잡해진 것이다.

‘관권 선거 운동’ 논란까지 빚었던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추가, 철도 지하화, 국가장학금 지급 대상 확대를 비롯해 가덕신공항 건설과 부산 북항 재개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영암과 광주를 잇는 한국형 아우토반 건설 등 지역 맞춤형 정책을 쏟아냈다. 하나같이 수십조~수백조원의 비용이 드는 사업으로, 소요 예산만 수백조원으로 추산된다. 장기 계획인 만큼 내년 예산에 모두 반영되지는 않겠지만, ‘민생 과제’로 포장한 포퓰리즘 예산의 등장만으로 지출 구조조정을 통한 건전 재정 기조는 무색해질 수 있다.

표심을 겨냥한 잇단 감세 정책으로 세수 기반도 약해진 상태다. 비과세나 세액 감면 등으로 세금을 면제하거나 깎아주는 국세감면액은 올해 77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민간 연구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국세 감면율(16.3%)은 국가재정법이 권고하는 법정한도(14%)를 넘어섰다. 내년에는 이 비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정부는 내년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은 이미 완화(10억원→50억원)했다.

감세로 들어올 돈(세수)은 줄어만 가는데 돈을 써야 할 곳(민생 예산)은 많기만 하다. 건전 재정을 유지하려 지출 구조조정을 꾀하다 보면 중요하지만 놓치는 곳이 생길 수 있다. 올해 연구·개발(R&D) 예산 대폭 삭감으로 빚어진 과학계의 혼란이 다른 분야에서 반복될 수 있다. 감세와 민생 예산, 건전 재정의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은 의욕이나 운용의 묘로는 해결하기 힘든 연금술에 가까운 영역이다. 당위가 아닌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는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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