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헤드업 정치
신데렐라는 오페라에서도 단골 소재로 꼽힌다. ‘타이스의 명상곡’으로 널리 알려진 마스네의 ‘상드리용(Cendrillon)’과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 로시니의 ‘라 체네렌톨라(La Cenerentola)’가 대표적이다. 프랑스어·이탈리아어로 신데렐라를 뜻하는 이들 오페라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곡 중 하나는 왕자로 변장한 시종이 부르는 흥겨운 노래다. 왕자와 옷을 바꿔 입고 거리로 나선 그는 신붓감을 고르는 행복한 심정을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며 달콤한 꽃봉오리를 찾는 4월의 꿀벌에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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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와 정치는 고개 드는 순간 필패
겸손 잃지 않아야 유혹 참을 수 있어
」
한국인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오페라 중 하나인 푸치니의 ‘라보엠’에서 가난한 여주인공 미미는 추운 겨울밤 하나 남은 촛불이 꺼지자 이웃 로돌포에게 불을 얻으러 간 자리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옥탑방 건너 저 조그만 방에서 저는 늘 홀로 외로이 지내요. 하지만 봄이 오면 햇살이 가장 처음 비치는 곳이 바로 제 방이죠. 4월의 햇살은 첫 키스처럼 항상 제게 먼저 다가온답니다.” 유명한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가 끝난 뒤 두 주인공은 비록 가난하지만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이처럼 4월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희망과 설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선 ‘잔인한 달’이란 이미지가 굳어진 지 오래다. 무엇보다 T S 엘리엇의 영향이 크다. 그의 대표작 ‘황무지’의 맨 첫 줄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사적으로도 4·3사건, 4·19혁명에 세월호 참사까지 4월에 질곡의 역사가 반복되곤 했다. 이에 더해 최근엔 황사와 미세먼지의 습격도 4월에 집중되면서 엘리엇의 비유처럼 적어도 한국에선 4월이 그 어느 달보다 잔인했던 게 현실이었다.
정치적으로도 4월은 격변의 달이었다. 여야 정치권의 운명이 걸린 총선이 실시된다는 점에서다. 공직선거법 제34조는 국회의원 선거일을 임기 만료일(5월 29일) 전 5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로 규정하고 있다. 올해 22대 총선이 다음달 10일 치러지는 것도 이에 근거한다. 이번 총선도 이제 열하루 남은 셈이다. 어렴풋이나마 판세가 드러나고 있다 해도 결과는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무색할 만큼 불과 10일 사이에도 천지개벽할 만한 사건이 속출했던 게 한국 총선의 역사였다. 방심하는 순간 뒤처진다, 얼마든지 단번에 역전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이번에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다.
막판 관전 포인트로 여러 이슈가 거론되지만 역대 총선의 승패를 가른 숨겨진, 하지만 결정적 변수 중 하나는 “누가 ‘헤드업 정치’의 유혹을 끝까지 참아낼 수 있느냐. 누가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않느냐”였음을 여야 모두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닐 터다. 자고로 골프와 정치는 고개를 드는 순간 영락없이 OB가 나는 게 진리다. 아무리 폼이 좋고 힘이 세더라도 공을 치는 ‘바로’ 그 순간 공을 보지 않고 미리 고개를 들어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더욱이 선거 종반전엔 다시 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멀리건은 언감생심. 벌타는 만회할 시간조차 없이 치명적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존 헤네시 전 스탠퍼드대 총장은 『Leading Matters』에서 리더가 갖춰야 할 10가지 덕목 중 첫째로 겸손함을 꼽았다. 지도자는 고개를 숙일 때마다 한 단계 더 성장한다면서다. 과연 오는 4월은 어느 당에 달콤한 달, 또 어느 당에 잔인한 달이 될 것인가. 중요한 건 가식이 아닌, 진정 마음속 겸손함을 유지할 때 헤드업의 유혹을 참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유권자들은 이슈 자체가 아니라 이슈를 다루는 태도를 보고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 마지막까지 고개를 쳐들지 않는 겸손한 태도. 이게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 가장 큰 힘이다.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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