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헤드업 정치

박신홍 2024. 3. 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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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지금 나의 마음은 4월의 꿀벌 같아요.”

신데렐라는 오페라에서도 단골 소재로 꼽힌다. ‘타이스의 명상곡’으로 널리 알려진 마스네의 ‘상드리용(Cendrillon)’과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 로시니의 ‘라 체네렌톨라(La Cenerentola)’가 대표적이다. 프랑스어·이탈리아어로 신데렐라를 뜻하는 이들 오페라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곡 중 하나는 왕자로 변장한 시종이 부르는 흥겨운 노래다. 왕자와 옷을 바꿔 입고 거리로 나선 그는 신붓감을 고르는 행복한 심정을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며 달콤한 꽃봉오리를 찾는 4월의 꿀벌에 비유하고 있다.

「 골프와 정치는 고개 드는 순간 필패
겸손 잃지 않아야 유혹 참을 수 있어

한국인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오페라 중 하나인 푸치니의 ‘라보엠’에서 가난한 여주인공 미미는 추운 겨울밤 하나 남은 촛불이 꺼지자 이웃 로돌포에게 불을 얻으러 간 자리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옥탑방 건너 저 조그만 방에서 저는 늘 홀로 외로이 지내요. 하지만 봄이 오면 햇살이 가장 처음 비치는 곳이 바로 제 방이죠. 4월의 햇살은 첫 키스처럼 항상 제게 먼저 다가온답니다.” 유명한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가 끝난 뒤 두 주인공은 비록 가난하지만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이처럼 4월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희망과 설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선 ‘잔인한 달’이란 이미지가 굳어진 지 오래다. 무엇보다 T S 엘리엇의 영향이 크다. 그의 대표작 ‘황무지’의 맨 첫 줄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사적으로도 4·3사건, 4·19혁명에 세월호 참사까지 4월에 질곡의 역사가 반복되곤 했다. 이에 더해 최근엔 황사와 미세먼지의 습격도 4월에 집중되면서 엘리엇의 비유처럼 적어도 한국에선 4월이 그 어느 달보다 잔인했던 게 현실이었다.

정치적으로도 4월은 격변의 달이었다. 여야 정치권의 운명이 걸린 총선이 실시된다는 점에서다. 공직선거법 제34조는 국회의원 선거일을 임기 만료일(5월 29일) 전 5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로 규정하고 있다. 올해 22대 총선이 다음달 10일 치러지는 것도 이에 근거한다. 이번 총선도 이제 열하루 남은 셈이다. 어렴풋이나마 판세가 드러나고 있다 해도 결과는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무색할 만큼 불과 10일 사이에도 천지개벽할 만한 사건이 속출했던 게 한국 총선의 역사였다. 방심하는 순간 뒤처진다, 얼마든지 단번에 역전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이번에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다.

막판 관전 포인트로 여러 이슈가 거론되지만 역대 총선의 승패를 가른 숨겨진, 하지만 결정적 변수 중 하나는 “누가 ‘헤드업 정치’의 유혹을 끝까지 참아낼 수 있느냐. 누가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않느냐”였음을 여야 모두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닐 터다. 자고로 골프와 정치는 고개를 드는 순간 영락없이 OB가 나는 게 진리다. 아무리 폼이 좋고 힘이 세더라도 공을 치는 ‘바로’ 그 순간 공을 보지 않고 미리 고개를 들어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더욱이 선거 종반전엔 다시 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멀리건은 언감생심. 벌타는 만회할 시간조차 없이 치명적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존 헤네시 전 스탠퍼드대 총장은 『Leading Matters』에서 리더가 갖춰야 할 10가지 덕목 중 첫째로 겸손함을 꼽았다. 지도자는 고개를 숙일 때마다 한 단계 더 성장한다면서다. 과연 오는 4월은 어느 당에 달콤한 달, 또 어느 당에 잔인한 달이 될 것인가. 중요한 건 가식이 아닌, 진정 마음속 겸손함을 유지할 때 헤드업의 유혹을 참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유권자들은 이슈 자체가 아니라 이슈를 다루는 태도를 보고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 마지막까지 고개를 쳐들지 않는 겸손한 태도. 이게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 가장 큰 힘이다.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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