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리알 포토’로부터 온 춤

2024. 3. 3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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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우업 bLowup’, 2017년 ⓒ 황규태
가볍게, 발들이 들려있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흰 고무신과 모시 바지, 치마에도 무게가 없다. 풍성한 주름들은 곧 여성을 따라 풀릴 준비를 마친 듯하다. 이미 고무신이 걸음을 뗐다. 보이지 않지만, 남자의 팔은 아마도 그의 다리처럼 허공을 슬며시 들어 올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현장의 부분, 인물들의 일부만이 담겨있을 뿐인데, 정사각의 사진 안에 춤이 가득하다. 한국의 대표 사진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황규태의 ‘블로우업 bLowup’이다.

그는 2000년대에, 1960년대 리얼리즘이 유행하던 시대에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다시 재해석해서 발표했다. 재해석의 방식은 간단했다. ‘확대하다(Blow up)’라는 뜻의 제목 그대로, 그의 유명한 ‘픽셀 Pixel’ 시리즈들이 TV 화면을 찍어서 크게 확대한 것이듯, 과거 흑백사진들의 부분을 잘라서 포토샵으로 확대했다. 이토록 간단한 방식이지만, ‘픽셀’ 시리즈가 스트레이트로 실체를 찍었음에도 우리들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펼쳐 보인 것처럼 새로운 이미지와 해석으로 변주돼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사진은 원래, 1968년 어느 날 서울 뚝섬의 한 너른 마당에 군중들이 모여 춤을 추는 모습을 찍은 ‘리알 포토’(리얼리즘 사진)였다. 당시의 사진 속에는 수많은 군중과 마당, 멀리 산이 둘러쳐진 모습이 원경으로 담겨있는데, 그 중 한 쌍의 하반신만을 자르고 확대한 것이다. 마치 서사가 담긴 소설을 한 줄의 짧은 시로 바꾼 것과 같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지만, 황규태가 처음 했으므로 황규태식이고 그 다음은 아류가 된다. ‘처음’이 갖는 의미가 거기에 있다. 다양한 기법으로 사진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한국 아방가르드 사진의 선구자’로 불리는 황규태다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큰 화면을 확대해서 작게 자르다 보니 사진의 망점이 크고 흐릿하기조차 하다. 그런데 이것이 ‘블로우업’의 특징을 이루니, 사진을 소장하려는 사람들이 그 상태를 되려 기꺼워한다.

요즘 같은 봄날이면 떠올라, 두 발을 들썩이게 하는 사진이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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