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죄로 걸려도 "행복"…미남계에 여비서들 줄줄이 무너졌다

2024. 3. 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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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전선, 정보전쟁] 여성을 유혹한 남성 스파이
동독 로미오 스파이에게 포섭된 서독 본 주재 미 대사관의 가브리엘 크리엠(Gabriele Kliem·사진 위쪽), 서독 연방정보국(BND) 소속 가브리엘 가스트(Gabriele Gast). [게티이미지=연합뉴스], [사진 BBC]
서독 본 주재 미국 대사관 통역관인 가브리엘 크리엠은 퇴근 후 여느 때처럼 라인강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32세의 미혼인 크리엠이 따분함을 달래는 방법이었다. 1977년 7월의 어느 날도 마찬가지였다. 달랐던 것은 산책 중 금발의 훈남이 눈에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지나가는 행락객이겠거니 생각하면서도 ‘내 연인이었으며 참 좋겠다’는 찰나의 상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갈 줄 알았던 그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와 불쑥 말을 건넸다. 라인강에서 바라보이는 산(지벤 게브리게)의 일곱 개 봉우리가 아름답지 않냐는 시답잖은 말 걸기였다. 그러나 싫지 않았다. 그 훈남은 평화문제에 관심이 많고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름은 프랭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7년간 깊은 연인관계로 이어졌다. 프랭크는 동독 슈타지산하 대외정보국(HVA) 소속 스파이였고, 프랭크에 홀린 크리엠은 부탁을 받을 때마다 미 대사관 기밀들을 동독에 넘겼다. 냉전기 동독이 미남 스파이를 투입해 정부기관에 근무하는 서독 여성들을 포섭한 정보작전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다. 이름하여 로미오 작전(Operation Romeo), 세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따온 명칭이다.

전 모사드 국장 “사랑은 정보활동 최대 무기”

로미오 작전은 여성 대신 남성을 투입하는 미남계 전략이다. 정보계의 레전드인 동독 대외정보국의 마르쿠스 볼프 국장이 기획했다. 30세에 대외정보국 수장이 된 볼프는 서독의 고위인사 포섭을 위해 유능한 요원들을 침투시켰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고민하던 볼프는 고위인사를 직접 포섭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비서나 통역 등 여성을 포섭하는 우회적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당시 여성들이 맡고 있던 통역이나 비서는 고급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정보적 가치가 클 것이라 판단했다. 특히 1·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남성들의 전사(戰死)로 여초현상이 심해 여성을 유혹하기도 쉬운 환경이었다. 볼프는 훈남이면서 여성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배려심 많은 요원들을 선발했다. 포섭할 여성이 결정되면 그 여성의 일정 등 개인정보를 상세히 수집했다. 우연한 만남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다.

마르쿠스 요하네스 볼프(Markus Johannes Wolf). 34년간(1952년~1986년) 동독 대외정보국(HVA)을 이끌면서 세계 정보사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미 대사관 통역인 크리엠에 대한 포섭도 그렇게 시작됐다. 서독주재 미 대사관은 동독안보뿐만 아니라 동구권 전체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보 길목이었다. 대외정보국은 크리엠의 단골식당 종업원들을 통해 성격과 연애경험 등 사생활 정보를 수집했다. 그날 라인강변에서 프랭크가 크리엠에게 접근한 것도 이 같은 치밀한 준비를 토대로 이루어졌다. 금방 프랭크와 사랑에 빠진 크리엠은 나토와 바르샤바 동맹의 군사전략을 비교한 극비정보 등 프랭크가 요구한 대로 정보를 넘겨주었다. 크리엠은 사랑의 함정에 빠져 스파이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프랭크에게 묻지 않았다. 그와 헤어지기 싫고 헤어짐이 두려워서였다. 때가 되면 행복하게 같이 살자는 그의 언약만 믿었다. 그러나 기다림에 지친 크리엠은 결국 1984년 프랭크와 헤어졌다. 헤어짐의 아픔은 컸지만 스파이 활동으로부터 해방된 홀가분함도 있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독일통일로 백일하에 드러났다. 통독 후 슈타지 문서관리청에서 크리엠의 스파이 행위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크리엠을 더욱 절망케 한 것은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동독 대외정보국의 반인격적 처사였다. 크리엠이 프랭크에게 보낸 연애편지가 모두 대외정보국의 심리전문가에게 넘겨져 낱낱이 분석되고 있었던 것이다. 크리엠은 “그들이 내 편지를 같이 읽고 웃으며 내용을 분석해 나를 어떻게 조종할지, 나를 어떻게 사랑으로 구속할지, 나를 어떻게 정보수집에 활용할지를 시시덕거리며 논의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모욕감과 수치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죗값을 치른 후 그녀는 미련없이 독일을 떠났다. 네덜란드에 정착한 크리엠은 조그마한 옷가게를 운영하고 유기견을 돌보면서 여생을 보냈다.

냉전 당시 뛰어난 정보력으로 세계적 명성을 날린 동독대외정보국(Hauptverwaltung A : HVA)의 베를린 리히텐베르크 본부 건물. 해외공작총국이라고도 부른다. [사진 위키피디아]
서독 아헨 공대 여학생이었던 가브리엘 가스트도 로미오 작전의 덫에 걸렸다. 1968년 3월 그녀는 박사논문 주제인 ‘동독 여성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현장연구 차 동독 켐니츠를 방문했다. 방문 며칠 후 작은 맥주 바에서 칼 슈미트라는 남성을 만나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다. 그해 7월 동독을 다시 방문한 가스트는 슈미트와 재회해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슈미트는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대외정보국은 그녀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1년 정도 관찰 후 대외정보국은 슈미트가 어떤 요구를 해도 거부하지 못할 정도로 가스트가 깊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부터 슈미트는 자신의 신분을 과감히 공개하고 가스트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스트에게 서독 연방정보국(BND) 입사를 권했다. 입사 후에는 BND내부 동향과 미 레이건 행정부의 유럽 안보정책 등 기밀정보를 요구했다. 가스트는 모두 응했다. 그러던 중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운명의 시간 앞에 선 가스트는 독일통일 나흘 전인 1990년 9월 29일 슈미트를 만나기 위해 오스트리아 국경으로 향했다. 그러나 국경 검문소에서 가스트를 기다린 사람은 슈미트가 아니라 서독 경찰이었다. 동독 대외정보국이 가스트의 스파이 증거자료를 파기하기로 약속했으나, 방첩 책임자인 칼 그로스만이 자신의 신변보장을 위해 가스트의 정체를 서독 당국에 밝힌 것이다. 가스트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한낱 도구로 이용된 것을 깨달았다.

소련, ‘제4 국가학교’서 스파이 전문 육성

정보전쟁
미인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수한 사례가 있다. 동독의 로미오 작전은 역발상의 미남계로 정보전을 성공시킨 모델로 평가된다. 냉전 40년 동안 로미오 작전에 포섭된 서독 여성은 체포된 인원만 40명에 이르렀다. 포섭된 여성들의 소속 기관에는 총리실, 행정부, 정치권은 물론 정보기관, 국제기구 등 공공기관 대부분이 포함됐다. 이들로부터 수집한 정보의 양과 질도 엄청났다. 볼프 국장이 “여비서나 통역 한 명이 수집한 정보의 양과 질은 외교관 10명과 맞먹는 수준이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가성비 높은 정보전이었다. 로미오 스파이들의 ‘사랑의 기술’도 뛰어났다. 간첩죄로 체포된 여성 대부분이 스파이와 사랑에 빠진 그 순간만큼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었다고 진술할 정도였다.

당연히 윤리적 비판도 뒤따랐다. 독일통일 후 이 작전을 기획한 볼프에 대해 독일 여론은 연약한 여성의 사랑을 악용한 잔인한 학대 행위를 자행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볼프는 “정보기관은 윤리나 가치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목적과 동기가 국가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그 수단과 방법은 어느 정도 정당화되는 것이 정보라는 것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인문학적 관점에서의 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순수한 감성이지만, 정보의 관점에서 보는 사랑은 눈을 멀게 하는 치명적 마력 때문에 사람을 포섭하기 위한 휴민트 정보전의 무기로 바뀐다. 이스라엘의 아미트 전 모사드 국장은 “사랑은 정보활동의 가장 큰 무기”라고 말했다. 현대 정보전에서 사랑을 매개로 한 정보활동은 보편적 현상이다. 심지어 소련은 모스크바 근교에 ‘제4 국가학교’를 설립해 미인계·미남계 스파이를 전문적으로 육성해 오고 있다. 고도로 훈련된 직관과 유혹의 기술을 통해 상대를 조종하는 고난도의 심리정보전 요원을 양성하는 곳이다. 냉전 시기 제프리 해리슨 영국 대사나 모리스 드진 프랑스 대사 등이 소련의 작전에 걸려들었다. 이를 통칭해 섹스피오나지(sexpionage)라고 한다. 성(sex)과 정보(espionage)의 합성어다.

윤리적 금기를 넘어서서 인간의 심리를 목적에 맞게 이용하는 것은 정보 세계의 냉엄한 현실이다. 2008년의 원정화 사건 등 우리에게도 유사한 사건이 더러 있었다. 지금도 그런 시도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개인의 사생활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성규 고려대 연구교수.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 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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