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DNA'로 글로벌 효성 일군 조석래, '섬유 반도체' 스판덱스로 세계 제패

2024. 3. 29.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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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스판덱스 공장 준공식에서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사진=효성그룹



재계 31위 효성그룹 2대 회장을 지낸 조석래 명예회장이 29일 숙환으로 영면했다. 향년 89세(1935년생).

조 명예회장은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조 명예회장은 최근 건강이 악화해 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193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서, 198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한국경제 발전의 역사를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기고를 나와 일본 와세다대,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준비하다 1966년 2월 부친인 고(故) 조홍제 회장으로부터 귀국하라는 부름을 받고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사진=효성그룹



 

 신혼여행지에서도 기술 연수…'기술의 효성' 일군 주역

그는 재계를 대표하는 '기술 중시' 경영인이다. 화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인 그는 경제 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력에 있다는 생각으로 기업을 경영했다.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신소재·신합섬·석유화학·중전기 등 산업 각 방면에서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탄소섬유, 폴리케톤 등 신기술 개발을 선도해 기술경영을 실천했다. 

조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 합성섬유로 성공한 뒤 합성수지인 폴리프로필렌에 도전했던 1980년대에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면 정부의 허가도 받아야 하고 기술적 기반도 약해 뛰어들기 쉽지 않았다. 경쟁사들도 늘어나고 있는 시기여서 회사 내부에서는 "이 사업을 하고 싶지만 안하는게 좋겠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조 명예회장은 '안되는 이유 100가지' 보다 '되는 이유 한 가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정도의 어려움은 도전정신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폴리프로필렌의 원료인 나프타는 선발업체들이 선점한 상황이었고, 일본에서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수소문 끝에 미국의 한 회사에서 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해 프로필렌을 만드는 탈수소공법을 적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직 개발 중인 신공법인데다 이를 상업화할 기술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용단을 내렸고, 결과적으로 탈수소공법을 적용한 폴리프로필렌 사업은 큰 성공을 거뒀다. 

조 명예회장은 결혼식 후 신혼여행지를 이탈리아 포를리로 선택한 일화가 유명하다. 당시 이곳에서는 동양나이론의 기술자들이 나일론 생산기술을 익히기 위해 연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재달 전 동양나이론 부회장은 조 명예회장에 대해 "기술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대단히 강했으며, 영위하고 있는 사업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고 회고했다.

2004년 05월 25일 노무현 대통령과 경제활력회복을 위한 대기업대표와의 대화에 앞서 정몽구 현대 차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오른쪽부터) 등이 간담회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효성그룹



 

 집념과 뚝심으로 '세계 1등' 제품 키워내

'섬유의 반도체'로 불리는 효성의 스판덱스는 조 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과 뚝심 경영의 결과물이다. 기술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공급망 확대, 품질 개선,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고객 중심의 마케팅을 펼친 결과 효성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했다.

독자기술 개발로 미국 듀폰의 ‘라이크라’를 제치고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스판덱스 브랜드 ‘크레오라’, 세계 최고의 품질과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구축으로 세계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타이어코드, 비유럽 기업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유럽시장 진출에 성공한 송배전설비, 금융자동화기기, 시트벨트·에어백 원사 등 다양한 제품들로 세계시장을 선도해왔다. 

조 명예회장은 창조적 마인드와 추진력을 갖춘 경영인이었다. 친환경 친화적이면서 고강력 섬유소재로 플라스틱을 대체할 ‘꿈의 미래소재’인 ‘폴리케톤’, 강철보다 10배나 강력하면서 무게는 4분의 1에 불과해 산업파급효과가 큰 ‘탄소섬유’, 원천기술 확보로 LCD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LCD용 편광판보호필름인 ‘TAC필름’ 등 새로운 첨단산업과 혁신제품 개발로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에도 기여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세계 최초 신소재 '폴리케톤'의 개발 상용화를 통해 한국이 소재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글로벌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조 명예회장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해 한국을 명실상부한 수출강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조 명예회장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효성은 매출의 약 80%를 해외시장에서 거둬들일 만큼 수출지향적인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고, 한국뿐 아니라 미국, 중국, 베트남 등 전세계에 걸쳐 50여개 제조 및 판매법인과 30여개의 무역법인·사무소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1988년 8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경제협력을 논의하는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모습. 사진=효성그룹



 

 한미FTA 숨은 공신, 민간외교관으로 맹활약 '국제경제통'

“더많은 나라와 FTA를 체결해 국내시장을 개방하고 기업의 대외진출을 촉진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구조와 체질을 튼튼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고 투자를 저해하는 각종 규제는 과감히 철폐되거나 시정돼야 한다.” (2008년 1월 1일 전경련 신년사 중)

조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국제경제통'으로 손꼽힌다.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을 했던 만큼 일본어와 영어실력이 뛰어나다. 유창한 어학 실력과 풍부한 글로벌 인적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교역상대국 경제인들과 활발한 협력 활동을 전개했다.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미재계회의, 한일경제협회,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한중재계회의 등 30년 이상 다양한 국제경제교류단체를 맡아 많은 성과를 올렸다.

특히 그는 한미FTA의 숨은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부터 조 명예회장이 한미재계회의를 통해 최초로 한미FTA 필요성을 공식 제기했고, 체결 이후에도 미국의회를 방문해 인준을 설득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그리고 2008년 ‘한미 비자면제 프로그램’ 시행을 주도해 양국 간 교류활성화에도 기여했다. 

2005년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초청만찬 당시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모습. 사진=효성그룹



2007~2011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맡아 재계 구심점으로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 경제계 국제교류 활성화에 이바지했다. 

재계 대표적인 민간경제외교관이었던 조 명예회장은 그 공로를 인정 받아 2009년 일본 욱일대수장, 1980년 덴마크 훈장을 수훈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2013년 미국 일리노이공대 명예공학박사, 2005년 일본 와세다대학 명예공학박사를 수여받아 국내외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의 위상을 정립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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