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경수로 제안, 김일성의 커브볼"

박대의 기자(pashapark@mk.co.kr) 2024. 3. 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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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촉발된 '제1차 북핵위기' 당시 펼쳐졌던 북한과 미국 간 치열한 수싸움이 29일 비밀해제된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됐다.

한 달여 뒤인 7월 14~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2차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은 "현재 가동 중인 모든 흑연 방식 원자로를 경수로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미국이 협조한다면 모든 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의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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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북핵위기 외교문서 공개
94년 제네바 합의 비화 드러나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촉발된 '제1차 북핵위기' 당시 펼쳐졌던 북한과 미국 간 치열한 수싸움이 29일 비밀해제된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됐다.

이날 외교부는 북핵문제 발생 초기 상황 등이 포함된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 2306권, 37만여 쪽을 일반에 공개했다. 공개된 문서에는 북한을 NPT 체제에 묶어두기 위한 미국과 벼랑 끝 전술을 통해 원자력 발전시설을 얻어내려는 북측의 외교 대결이 생생하게 담겼다.

북한은 영변의 미신고 핵시설 2곳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압력과 한미연합 팀스피릿 훈련에 반발해 1993년 3월 12일 NPT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은 그해 3월 26일 열린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 북·미 간 고위급 접촉에 대해 '당분간 고려하지 않겠다'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 측이 권유한 대북 고위급 접촉을 수용하며 북·미 간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북·미는 그해 6월 2일 미국 뉴욕에서 첫 고위급 회담을 열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그러나 닷새 뒤 북측 요청으로 열린 실무 접촉을 통해 협상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한 달여 뒤인 7월 14~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2차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은 "현재 가동 중인 모든 흑연 방식 원자로를 경수로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미국이 협조한다면 모든 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의를 내놓았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미국이 북측의 이 같은 제안에 대해 "야구 시합으로 비유한다면 초구로 들어온 커브볼처럼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으나, 핵 비확산을 향한 진척으로 볼 수 있으므로 나쁘지 않다"고 평가한 내용도 담겼다. 외교문서에는 북측의 경수로 제안이 '김일성의 구상'이라고 설명하는 미국의 입장이 서술됐다.

결국 경수로 지원 문제는 이듬해인 1994년 성사된 3차 회담에서 역사적인 '제네바 합의'의 핵심이 됐다.

그러나 미국이 제네바 합의 이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북한이 이에 반발하면서 양국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결국 2002년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핵탄두 개발 사실을 시인하면서 제네바 합의는 효력을 잃었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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