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민의 문화이면] 오목렌즈가 필요한 세상

2024. 3. 2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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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남의 것만 크게 보이는건
보고싶은 것만 부풀려 보려는
비슷한 사고의 무한반복 때문
인식의 틈 오목하게 줄여보자

우리는 다양한 착시 속에 살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타 출판사 화제작을 언급할 때 이것이 종종 드러난다. 남들 눈에 5000부는 거뜬히 팔린 것처럼 보이는 화제작이 있다고 하자. 만나면 축하해준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 집은 살 만하겠어라면서. 하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쓴다. 상황은 녹록하지 않은데 외부에는 그럴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책은 1000부 정도 팔렸을 뿐이다. 출간 전 3주간 서점에서 독자를 대상으로 펀딩을 진행했고, 그 기간에 펀딩된 양이 마치 하루에 그만큼 팔린 것처럼 출간되자마자 세일즈 포인트로 반영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 눈에는 베스트셀러로 보인 것이다. 되돌아보면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우아! 그 책 너무 잘 팔리던데, 올해 장사는 그쯤 하면 되겠네, 밥 한번 사야지. 그런데 사정을 들어보면 늘 수치가 크게 틀리곤 했다. 이런 일이 출판계에만 있을까? 짐작건대 다른 분야는 더할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착시 현상은 널리 퍼져 있다.

간혹 내 눈이 볼록렌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의 집이 커 보이고, 크지 않으면 예뻐 보이고, 예쁘지 않으면 튼튼해 보이고, 이것도 아니라면 저렴하게 잘 구매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충분히 크지 않거나, 멋지지 않거나, 하자가 있거나, 시세보다 비싼 값을 치른 집에서 산다. 왜 이런 결핍이 일상화되는 것일까.

최근 이 문제를 나름 고심해봤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비슷한 사고의 무한 반복'이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인식할 때는 당시의 기분이나 느낌에 따라 머릿속에서 편집이 일어나며 일종의 회로가 생겨나게 된다. 자신의 관점이 담긴 인식이라 할 것이다. 이후 비슷한 일들이 그 회로에 따라서 비슷한 방식으로 계속 재해석된다. 그 생각은 회를 거듭할수록 군더더기 없이 매끈해져 점점 더 그럴듯해 보인다.

그렇게 쌓이고 쌓이면 볼록해진다. 볼록렌즈를 눈에 장착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사안마다 새롭게 바라보고 인식하고 대처하는 게 습관화돼야 하는데, 이 볼록렌즈를 끼면 주체적 인식능력은 사라지고 내가 편한 방식대로 확증만 쌓아나가게 된다. 그럴수록 세상은 나로부터 더 멀어지고 안개가 낀 것처럼 불투명해지고 급기야 각도가 비껴가게 된다. 접질린 발목처럼 불구의 머리가 되는 것이다. 이 볼록렌즈를 깎아내는 방법은 똑같은 회로 돌리기에서 이탈하는 것밖에 없다. 그건 어떻게 가능한가. 역발상이다. 나보다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그 사람의 삶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마음을 먹을 수 있다. 소통이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책이 안 팔리고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을 반복하기보다, 그나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책을 판매보다 더 가치 우위에 놓고 전향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마중물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마중물이 큰물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여기에 만족하면 물은 금방 증발돼버리고 만다. 마중물은 마중물일 뿐이다. 불안하게 한 모금 머금고, 또 삼켰다가 다시 머금고 하면서 현실을 버텨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큰물이 들어올 때도 있지 않겠는가. 사실 마중물의 삶에 익숙해지면 큰물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마중물이 큰물로 화학 변화를 일으키겠지만 말이다.

역발상도 생각하기의 한 종류일 뿐이다. 그것도 반복하면 회로가 될 뿐이다. 중요한 건 안주하지 않고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간혹 삶의 목표를 바꾸고 행복을 찾았다는 이들의 사연을 접할 때가 있다.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생각의 반복 회로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우선 볼록렌즈를 눈앞에서 치워야 한다. 나무에 기대기보단 산을 올라야 한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은 확실하게 전해줄 것이다. 그렇게 사물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틈을 오목하게 줄여보자. 한 번쯤 멈춰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가늠해봐야 한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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