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면 자국 떠난다” 반도체 기업들 위협에 두손두발 든 각국 정부

최지희 기자 2024. 3. 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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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L 이전 막으려 네덜란드 정부 25억유로 투자
“본사 지역 인프라 대폭 개선, 세제 혜택 추진”
대만도 역대 최고 세제 혜택으로 TSMC ‘안방 투자’ 유도
갈길 먼 韓도 “보조급 지급 신중히 검토”
네덜란드 펠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 전경./ASML 제공

세계 각국의 반도체 주요 공급망 유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네덜란드 정부가 자국 장비기업 ASML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ASML은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업체로, 세계 주요국의 반도체 장비 유치전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28일(현지시각) ASML 본사가 있는 펠트호번 인근 에인트호번 지역의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25억유로(약 3조64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ASML에 따르면, 전 세계 회사 직원 4만2000여명 중 절반 이상이 에인트호번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ASML 본사 이탈을 막고자 에인트호번의 주택, 전력망, 교통, 기술 교육 등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이른바 ‘베토벤’ 작전의 세부 계획을 내놨다. 작전명은 ASML이 네덜란드계 독일인 음악가 베토벤의 예술성에 비견할 만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기업의 경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세제 혜택도 추진 중이다. 네덜란드 내각은 성명에서 “ASML에 대한 지원을 통해 회사가 투자를 지속하고 법상, 회계상 실제 본사를 네덜란드에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이런 특단의 조치는 최근 ASML이 공개적으로 현지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본사를 옮길 수 있다고 언급한 데 따른 것이다. 이달 초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네덜란드 정부가 고숙련 이주노동자에 대한 세금 감면을 없애 회사가 핵심 직원을 채용하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에서 일하는 ASML 직원 2만3000명 중 40%는 타국에서 왔다. 베닝크 CEO는 “혁신에 필수적인 직원들을 네덜란드에서 채용할 수 없다면 우리는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정부가 ‘기술 허브’로 성장한 에인트호번의 인프라 개선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ASML은 네덜란드 정부의 조처를 환영한다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날 ASML 측은 “사업에 유리한 조건이 지원된다면 회사는 네덜란드에서 사업을 확장해 나가길 선호한다”면서도 “회사가 내릴 결정은 (네덜란드에) 계속 머무를지가 아닌 어디에서 사업을 확장할지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발표된 계획이 의회의 지지를 받으면 사업 확장과 관련한 최종 결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와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대만 신주에 있는 TSMC 연구개발센터./로이터

세계 파운드리 1위 TSMC 본사가 있는 대만도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세제 혜택을 도입하고 지난달부터 공제 신청을 받고 있다. TSMC는 일본과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등에 업고 해외에 잇따라 공장을 짓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문을 연 TSMC의 제1공장에 투자금의 절반에 가까운 4760억엔(약 4조2300억원)을 지원했고, 새로 짓는 구마모토 제2공장엔 7320억엔(약 6조4300억원)을 보조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엔 TSMC를 비롯한 칩 제조업체에 대해 법인세 최대 20%를 공제해 주는 세제 혜택을 추가로 내놨다. 미국 정부는 애리조나에 건설 중인 TSMC 공장에 보조금 50억달러(약 6조7200억원) 이상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에 대만 정부는 TSMC를 비롯한 자국 핵심 기업의 ‘안방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연구개발(R&D) 비용 25% 공제, 최대한도 없는 첨단공정 신규 장비 취득비 5% 공제 등의 세제 혜택을 발표했다. 기준은 R&D 투자액 60억대만달러(약 2500억원) 이상, R&D 강도 6%, 고급 공정용 장비 투자액 100억대만달러(약 4200억원) 이상으로, TSMC와 세계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4위 미디어텍, D램 제조업체 난야 테크놀로지 등 대만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들은 모두 이를 충족한다. TSMC의 경우 연간 약 300억대만달러(약 1조2600억원)의 세금 절감 효과를 누릴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도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업계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선 설비 투자액의 15%(대기업 기준)를 세액공제 해주는데, 이마저도 올해 끝나 법 조항이 연장되지 않으면 공제율은 3%로 줄어든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특히 보조금 정책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초기 투자에 대규모 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보조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 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등은 지난달 26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투자 보조금 신설을 공식적으로 건의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27일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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