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의 개혁[김유찬의 실용재정](37)

2024. 3. 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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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 관련 업계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혁신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놀랍다. 진보적 성격이 더 뚜렷한 정당의 출현을 사람들이 내심 기다리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로 보인다. 그런데 조국혁신당의 강령이 흥미롭다. 당 강령은 8개의 행동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검찰독재에 대한 것이고, 세 번째는 기획재정부의 개혁을 말하고 있다.

조세와 재정정책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를 수행하는 기관의 개혁을 더 앞세우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 관료 출신들과 기재부 관료 출신들의 연합정부 성격을 갖고 있다. 핵심 요직을 두 부처 출신의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다. 대통령은 검찰 출신이고, 총리는 기재부 출신이다. 조국혁신당이 이 두 세력 집단의 개혁을 당 강령에 넣은 것은 중요한 시대적·사회적 의미가 있다. 옳은 문제의식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기재부를 해체하고 예산처를 설립한다고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실질적인 변화가 생길 개연성은 오히려 낮다. 조직이 바뀌어도 공무원이 권한과 집단이익을 유지할 방법은 다양하다. 과거 재무부 금융정책실을 금융위원회로 독립시켰지만, 관료집단이 금융기관에 행사하는 영향력에 균열이 생겼다고 보기는 힘들다.

문제의 본질은 뭘까. 재정 운영의 거버넌스, 즉 예산편성 과정에서 책임과 권능이 잘 배분돼야 한다는 점이다. 예산 내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국회와 정부, 정부 내에서 대통령과 기재부 그리고 기재부와 타 부처 간 권한의 배분 문제다.

예산 관료들은 직업적인 관료로서 업무 경험이 누적돼 있고 모든 예산 관련 정보를 관장한다. 자리 자체가 최고의 예산전문가가 될 수 있는 코스다. 예산 관료들은 정치인들의 예산에 관한 결정에 실제로 제동을 거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다. 청와대와의 관계에서도 기재부는 자신들의 의견을 상당 부분 반영시킨다. 예산 관료의 전문성이 크게 작용하겠지만 근본적인 힘은 정보의 비대칭성에 있다. 저출산 예산이 300조원이라고 하지만, 어떤 기준에서 300조원이 산출됐는지 누구도 자세히 들여다볼 수가 없다. 얼마나 자의성이 개입된 숫자인지 판단할 자료가 없다. 예산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 조직개편보다 예산편성과정 고민해야

예산 관료들의 자의적 행태에 대한 우려에도 근거가 있다. 기재부 관료들은 총리실이나 각종 정부위원회, 혹은 타 부처에서도 고위급 자리를 차지하고 은퇴 후 지자체장으로 선출되거나 공공기관의 수장 및 임원 자리를 독차지한다. 그 힘의 원천에는 예산실이 있다.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예산이 풍부하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기재부 출신들은 오라는 곳이 많다.

부처 조직을 바꾸고 소속을 변경해도 그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퇴임 후 보상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근본적으로 행태가 바뀌지 않는다. 조국혁신당의 강령대로 기재부를 해체하고 예산처를 설립해도 결과에 영향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조직개편부터 내세울 것이 아니라 예산편성 과정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여기에 맞춰 조직개편을 고민해야 한다.

예산에 대한 최종결정권은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헌법기관이 가져야 한다. 기재부는 각 부처가 제안한 예산요구액과 총액자료, 세수통계나 부채자료, 예산안의 경제적 효과 등에 대한 분석자료를 제공한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주재하고 각 부처 장관들이 참석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치 행위로서 정부 예산안을 결정하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이다. 대통령실에서 결정된 정부안 내용은 국회에서 통과돼야 하기에 대통령실과 국회 타협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국회와 기재부의 타협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재부는 관료조직일 뿐 선출된 권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주권자가 선출한 사람인 만큼 주권자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예산편성에서 주권자인 국민의 의지가 중요한 것은 예산 배분의 큰 방향성을 결정할 때 경제학이나 다른 어떤 학문도 지침을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은 성장을 위해 산업지원이나 연구개발 투자를 하는 것이 나은지, 복지를 위해 보건과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 나은지에 대해 학문적으로 엄밀한 판단이 불가능해 취향과 개성이 다른 개별 주권자들이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집약된 방향으로 예산의 큰 방향을 결정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지금까지 합의된 가장 중요한 규칙 중의 하나다.

재정 운영의 거버넌스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 중 가장 현실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총액배분 자율예산편성제도다. 이 제도는 노무현 정부에서 시도된 재정개혁 과제 중 하나인데 예산총액과 이 총액의 부처 간 배분에 관한 결정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결정되면 부처에게 배분된 예산에 대해서는 그 한도 내 개별부처가 사업예산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톱다운(Top-Down) 예산제도라고도 불리는 동 제도는 현재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총액배분 자율예산편성제도 정착부터

총액배분 자율예산편성제도가 잘 정착되는 경우 기재부는 개별 부처가 예산 한도 내에서 사업예산을 조정하는 것에 관여하지 못하게 돼 그들이 그간 부당하게 행사하던 힘의 원천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재부와 개별 부처 간의 불균형적인 관계가 해결될 뿐 아니라 국회와 기재부의 관계도 정상화된다.

동 제도가 잘 작동하려면 개별 부처들이 배분된 예산 한도액을 잘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개별 부처들은 배분된 예산 한도액을 지키지 않고 우회하는 때도 있었다. 결국 전체 제도가 작동되지 못하게 되고 기재부 예산실이 총액의 조정 수준을 넘어 개별 부처의 사업예산까지 손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총액배분 자율예산편성제도가 현실에서 잘 정착되는 것을 보면서 예산실의 조직개편을 착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 제도에 상응하는 예산실 조직개편은 현재 예산실의 총괄예산심의관실만 기재부에 남겨두는 것이다.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준비하는 기능은 필요하다. 예산총액과 총액의 부처별 배분과 관련해서는 기재부에 남는 이 부서가 전담기관으로 정부 전체를 도우며 대변하는 일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 예산실의 다른 4개의 예산분야별 심의관실(경제예산·사회예산·일반행정예산·국방예산)은 과 단위로 쪼개 개별 부처로 옮겨 부처에서 사업예산의 자율적 조정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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