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외교문서 공개…북 ‘경수로’ 제안에 미 “긍정”

[비밀해제 외교문서]

북한과 미국이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서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1993년 3월 북한의 일방적인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촉발된 제1차 북핵 위기 전후 협상 기록이 담긴 외교문서가 29일 공개됐다.

외교부는 이날 이런 내용이 담긴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 2306권, 37만여쪽을 일반에 공개했다. 미국은 북핵 위기가 발생한 이후 북한과 고위급 접촉을 하는 것을 당분간 고려하지 않겠다(1993년 3월26일 한-미 외무장관회담)는 입장이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중국의 협조를 얻기 위해 중국이 권유해온 대북 고위급 접촉을 수용하는 쪽을 선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촉발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로버트 갈루치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강석주 당시 북한 외교부 제1부부장이 뉴욕과 제네바에서 만나 고위급 회담을 연 기록 등이 담겨있다. 난항을 이어가던 협상은 6월 7일 북한의 요청으로 케네스 퀴노네스 당시 미국 국무부 북한담당관과 리용호 북한 외교부 국제기구국 부국장이 실무접촉을 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1993년 7월 2차 북미 고위급 회담 합의 후 미국 측 평가가 담긴 외교문서. 외교부 제공

실무접촉에서 북한은 한반도 통일을 위한 미국의 지원, 내정불간섭, 자위 경우를 제외한 무력불행사,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 지지의 4개 항이 포함된 북미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조건으로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선언을 보류하겠다고 통보했다. 나흘 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유보와 미국의 무력 불행사 등을 담은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이어 1993년 7월 14∼19일 제네바에서 열린 2차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은 현재 가동 중인 흑연방식 원자로를 경수로로 전환하는 데 미국이 협조한다면 현재 운용 중인 원자로, 건설 중인 원자로와 핵무기 관련시설을 모두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했다. 갈루치 차관보는 합의 타결 후 주제네바 한국대사에게 설명했다.

당시 미국은 경수로 문제에 대해 “야구 시합으로 비유한다면, 초구로 들어온 커브볼처럼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으나, 북쪽의 제안은 핵 비확산을 향한 진척(development)으로 볼 수 있으므로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본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제네바 현지에 체류하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은 북한의 경수로 방식 전환 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지연전술 책동이 아닌지” 우려를 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1994년 미국과 북한은 핵 동결 등을 대가로 경수로 발전소 건설과 중유를 제공하는 제네바합의에 도달하지만, 이마저도 200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최종 탈퇴하며 파기된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볼 수 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