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는 아직 12척…” 조선수군 재건의 길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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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 때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은 1597년 2월 선조의 무리한 출전 명령을 거부했다가 압송돼 백의종군을 당한다.
이순신이 없는 틈을 이용해 재차 침공한 일본군은 1597년 음력 7월15일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을 괴멸시킨다.
이 책은 이순신이 1597년 음력 8월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된 뒤 조선수군을 재건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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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리 길’ 따라가며 현장 묘사
<남도, 명량의 기억을 걷다> 발간 남도,>
1592년 임진왜란 때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은 1597년 2월 선조의 무리한 출전 명령을 거부했다가 압송돼 백의종군을 당한다. 이순신이 없는 틈을 이용해 재차 침공한 일본군은 1597년 음력 7월15일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을 괴멸시킨다. 이순신은 뒤늦게 복직했지만 남아 있는 전선은 12척뿐이었다.
정유재란 발발 직후 이순신이 조선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남도 곳곳을 찾은 44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책이 나왔다. 이돈삼 전라남도 대변인실 사무관이 29일 펴낸 ‘남도 명량의 기억을 걷다’(살림터)이다.
이 책은 이순신이 1597년 음력 8월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된 뒤 조선수군을 재건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조선수군 재건로’는 경남 진주에서 하동을 거쳐 전남 구례∼곡성∼순천∼보성∼장흥∼강진∼완도∼해남∼진도 등 500여㎞에 이른다. 이순신은 군관 9명, 병사 6명과 함께 구례와 곡성에서 병사를 모으고 순천에서 무기를 확보했다. 보성에서 군량미를 다량 확보했던 이순신은 조정이 수군 철폐를 명하자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다’는 장계를 쓰며 맞섰다. 장흥에서는 조선함대 12척을 회수해 수군의 면모를 갖췄다. 이후 이순신은 같은 해 음력 9월16일 명량해전에서 일본 해군을 무찌르며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사무관은 이순신이 걸었던 육지와 바닷길을 따라 긴박했던 상황을 전달한다. 수군 재건의 첫걸음을 뗀 구례 섬진강 석주관, 군량미를 얻었던 보성군 벌교읍 고내마을 조양창 터, 명량대첩을 구상한 진도군 벽파진 터, 울돌목 등 사진 220여장을 싣고 ‘난중일기’를 인용해 생생하게 현장을 묘사했다. 책 말미에는 ‘조선수군 재건로 주요 현장 찾아가는 길’을 실어 독자들의 현장 답사도 돕는다.
이 사무관은 “이순신은 바다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았고, 그 바다를 누비며 백성을 지키고 나라도 살렸다”며 “지금 우리가 바다의 중요성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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