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성과에 축포 터뜨리는 K방산, 재계 오너들 ‘신형 엔진’ 됐다
LIG 구본상, 한화 김동관, 풍산 류진 등 총수들 행보에도 탄력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최근 재계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임직원 복지 이벤트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LIG그룹의 방산 계열사 LIG넥스원이 4월5일 서울 잠실에 있는 놀이공원 롯데월드를 통째로 빌려 '패밀리 데이' 행사를 열기로 한 것이다.
2011년부터 매년 패밀리 데이를 개최해온 LIG넥스원이 놀이공원 대관에 나선 건 올해가 처음이다. 롯데월드가 일반 손님의 입장을 제한하고 시설 전체를 대관하는 경우도 1989년 개관 이후 처음이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LIG넥스원은 임직원과 가족 약 1만 명이 참여할 이 이벤트를 위해 롯데월드에 15억원가량의 대관료를 지불한 것으로 파악된다.
역대급 실적 자축하려 롯데월드 '통 대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에 이목이 쏠린 가운데 '대체 돈을 얼마나 잘 벌길래'라는 질문도 자연스레 뒤따른다. 불황기에 나홀로 호황을 누리는 것을 넘어 보란 듯이 축포까지 터뜨리고 있어서다.
LIG넥스원은 정밀유도무기, 감시정찰, 항공전자·전자전, 지휘통제·통신 등 다양한 첨단 무기체계를 개발·양산한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4.0% 늘어난 2조3086억원으로 창사 이래 처음 2조원을 넘겼다. 영업이익은 4.1% 증가한 1864억원이었다. LIG넥스원 측은 "최대 실적의 주역인 임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패밀리 데이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특별한 패밀리 데이 구상이 실현된 배경엔 오너인 구본상 LIG그룹 회장의 의지가 있다. 구본상 회장에게 이번 패밀리 데이는 단순한 사내 행사 그 이상이다. 그는 지난 2월 설 명절 특별사면으로 복권(復權)됐다. 앞서 LIG건설이 부도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2012년 징역 4년형을 받고 구속 수감됐다가 2016년 만기 출소한 바 있다. 구 회장의 복권과 관련, 정부 관계자는 "국가 전략 분야 첨단기술 개발과 수출 증진 등으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구 회장은 LIG넥스원의 실적 고공행진을 동력 삼아 본격적으로 재기할 채비에 나섰다. 패밀리 데이는 사실상의 출정식인 셈이다. 자신감을 충분히 가져도 좋을 만큼 LIG넥스원 실적은 상승 곡선에 제대로 올라탔다. 이는 정부가 구 회장 복권 이유로 언급한 것처럼 국가 전략 분야인 방산업의 수출 호조와 궤를 같이한다. 구 회장뿐 아니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풍산그룹 등 국내 주요 방산기업 오너들도 수출 확대를 통해 '쾌속 질주' 중이다. 3월14~20일 공개된 이들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전수 분석한 결과 글로벌 시장을 등에 업은 장기 호황 징후가 두루 포착됐다.
글로벌 지정학 위기에 '장기 호황' 국면
LIG넥스원의 수출 매출 비중은 2021년 4.5%로 미미하다가 2022년 들어 18.3%로 뛰었고, 2023년에도 15.5%로 10%대를 유지했다. 주력인 내수 매출이 완만히 상승하는 데 더해 수출이란 강력한 '신(新)무기'가 생기니 역대 최고 실적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LIG넥스원은 대(對)탄도탄 요격 체계 '천궁-Ⅱ'를 수출하는 계약을 2022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와, 2023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와 맺는 쾌거를 이뤘다. 각각의 계약 규모는 35억 달러(약 4조7000억원), 32억 달러(약 4조3000억원)에 달했다.
LIG넥스원의 지난해 말 기준 수주 잔액은 19조5934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매출액(2조3086억원)의 8배가 넘는다. 수주 잔액은 생산과 공급이 보장된 물량이다. 방산기업의 향후 매출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통한다. 장남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LIG넥스원에 대해 "20조원에 이르는 수주 잔액으로 중장기적 실적이 개선되고 긴 호흡의 대규모 수출 기회가 가시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방산업계 1위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방산 부문 매출은 4조1338억원, 영업이익은 5727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02%, 172% 급증했다. 역시 수출이 일등 공신이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와 고성능 유도미사일 체계 '천무', 모듈화 장약(MCS) 등을 수출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방산 부문의 수출 매출 비중은 지난해 27% 정도였다. 올해는 45%가량, 중장기적으론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은 사업보고서에서 중장기 수출 여건에 관해 "각국 군비 지출이 7년 연속 상승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으로 인한 안보환경 변화와 국가별 국방예산 확대에 따라 방산시장 규모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지난해 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군비청과 3조4758억원 규모의 K9 자주포 152문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총 3조1649억원 규모 미래형 궤도 보병전투장갑차량(IFV) '레드백' 129대 호주 수출에 성공했다. 올해 들어서도 낭보가 들려오고 있다. 루마니아 정부는 얼마 전 2조5000억원 규모의 자주포 도입 사업에 독일 KMW의 PzH 2000, 터키 MKEK의 T-155 프르트나와 함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를 입찰 적격 후보로 선정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전략 부문 대표이사로 몸담고 있다. 방산 계열사가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면서 그룹 경영권 승계 1순위인 김동관 부회장의 향후 행보에 더욱 탄력이 붙게 됐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현대차 계열사 현대로템의 방산업 호조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현대로템은 K2 전차, K1A1 전차, K1구난전차 등 최첨단 전차와 관련 제품을 제조하고 유지·보수한다. 지난해 현대로템 디펜스솔루션(방산) 부문 매출은 1조5781억원으로 1년 전(1조592억원)보다 49.0% 신장했다. 이에 힘입어 현대로템은 매출 3조5874억원, 영업이익 2100억원이라는 좋은 실적으로 지난해를 마감했다. 현대로템이 5%대 영업이익률을 낸 것은 10년 만이다. 2017~19년 3년 연속으로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현대로템은 2022년 폴란드와 1000대 규모의 K2 전차 수출 기본계약을 맺었다. 1차 계약분 180대에 이어 현재 820대에 대한 잔여 계약을 추진 중이다. 폴란드에 K2 전차가 인도되는 2025년까지 현대로템의 실적 상승세는 거침없이 지속될 전망이다. 루마니아와 리투아니아 등 유럽에서의 추가 수주 가능성도 중장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총수로 있는 풍산그룹은 신동(伸銅) 7 대 방산 3 정도(지난해 기준) 비중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풍산의 전체 매출은 3조1006억원으로, 신동 부문 매출이 10.4% 줄어든 영향으로 전년보다 4.8% 감소했다. 반면 방산 부문 매출은 9.9% 늘어나며 전체 매출 감소 폭을 좁혔다. 방산 부문에서는 수출 매출이 4980억원으로 내수 매출 4916억원을 앞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155mm 포탄 부족이 극심한 상황에서 풍산의 방산 공장은 현재 최대 가동률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는 풍산의 목표인 방산 부문 연 매출 1조원 돌파가 무난할 것으로 재계는 예상한다.
평균 연봉은 '1.1억'인 KAI가 1위
류진 회장은 지난해 방산기업 오너 중 가장 많은 50억6500만원의 연봉을 풍산으로부터 받았다. 전년(47억4300만원)보다 3억2200만원 증가한 액수다. 김동관 한화 부회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30억5800만원을 받아 2위였고, LIG넥스원에서 15억2400만원을 수령한 구본상 LIG 회장이 뒤를 이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현대로템으로부터 보수를 받지 않는다. 주요 방산기업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1억1000만원), LIG넥스원(9700만원), 풍산 방산 부문(9048만원), 현대로템 디펜스솔루션 부문(8850만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방산 부문(8350만원) 순으로 높았다. 방산업 호황 국면에서 앞으로 관련 기업들의 실적 못지않게 임직원 급여나 복지 수준도 개선될 여지가 많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분단국가로 자주국방이 당면 과제인 우리나라 현실 속에서 방산기업들은 높은 기술력과 적극적인 인프라 투자, 판로 개척 등으로 착실히 실력을 키워왔다. 최근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가 확대되면서 엄청난 기회를 맞게 된 것"이라며 "수출액이 20조원에 육박하고 세계 상위 10위 방산 수출국에 들어가는 등 국가의 신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만큼 정부와 기업, 국회 등이 함께 방산업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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