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량 증가로 갈수록 커진 선박...다리 붕괴 재발 가능성 키워

정미하 기자 2024. 3. 2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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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 메릴랜드주(州) 볼티모어 퍼탭스코강을 가로지르는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에 26일(현지 시각) 새벽 화물 컨테이너선(船) ‘달리’가 충돌한 뒤 교각과 다리 본체가 무너진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최근 들어 컨테이너 선박의 크기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처리가 더 복잡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붕괴한 다리와 충돌한 선박은 현대중공업이 2015년에 건조한 싱가포르 국적 선박이다. 980피트(약 300m) 길이에 폭은 48m, 총 10만 톤 규모로, 컨테이너 약 9700개를 실어 나를 수 있다. 미 당국 브리핑 등을 종합하면 선박은 출항한 지 약 한 시간만인 26일 새벽 1시 26분, 8.5노트(시속 약 15㎞)로 항해하다 다리 부근에서 정전이 발생해 모든 불이 꺼지고 동력을 잃었다. 이후 다리의 상판 아래를 통과하려던 선박은 서서히 교각 쪽을 향하다 결국 교각을 들이받았다. 결국 선박 일부가 교각에 충돌했고, 20초 만에 다리 상판이 내려앉았다. 선박 역시 부서진 다리의 잔해에 눌려 그 자리에 멈춰 선 상태로 다리 인근에 있는 볼티모어 항은 폐쇄됐다.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州) 볼티모어 퍼탭스코강을 가로지르는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에 26일(현지 시각) 새벽 화물 컨테이너선(船) ‘달리’가 충돌한 뒤 교각과 다리 본체가 무너진 사고가 발생했다. / 로이터

3년 전에는 수에즈 운하에서 비슷한 사고가 벌어졌다. 컨테이너 선박 ‘에버 기븐’(Ever Given)이 2021년 3월 23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하던 중 수에즈 운하 남측 입구에서 선수와 선미가 대각선으로 위치한 상태로 좌초해 수에즈 운하 전체를 막았다. 에버 기븐은 길이가 1300피트(396m)가 넘고 최대 용량이 22만 톤으로 최대 2만 개의 컨테이너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초대형 선박이었다. 미 해군까지 자문단을 파견해 구조 작업에 나선 끝에 3월 29일에야 예인선단이 좌초됐던 에어 기븐호를 2인치(5cm) 이동시키는 데 성공, 선박이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당시 사고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 대기하고 있던 선박만 367척에 달했고, 수에즈 운하를 통해 매일 최대 100억 달러(약 13조4860억 원) 상당의 화물을 실어 나르던 이집트 정부는 선박이 좌초한 기간에 수백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볼티모어 다리를 무너뜨린 이번 사고와 3년 전 수에즈 운하에서 발생한 사고는 컨테이너 대형화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보여준다.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 “3년 간격으로 발생한 두 사건은 5000마일(8046㎞) 떨어진 전혀 다른 상황에서 발생했지만, 둘 다 현대 세계 무역의 중추가 된 거대한 선박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존스홉킨스대 토목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인 벤자민 W. 샤프너는 WP에 “어떤 다리도 달리만큼 큰 선박에 부딪히면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미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가 건설됐을 때 컨테이너 선박의 평균 크기는 지금의 절반 미만이었거나, 훨씬 작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선박과 충돌해 무너진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는 1977년에 개통됐다. 당시 건설 비용은 약 1억4100만달러(약 1894억원)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억1600만달러(약 4261억5760만 원) 상당이다. 당시 기준으로 최신식 엔지니어링을 적용했으나, 현대식 컨테이너 선박을 따라잡기에는 무리였다는 분석이다.

◇ 컨테이너 선박, 세계 무역 가속에 50년 동안 1500% 커져

컨테이너 선박 크기는 지난 20년 동안 갑자기 증가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컨테이너 선박 크기는 지난 50년 동안 1500% 커졌다”고 전했다. 이는 1980년대 세계 무역이 가속하면서 해운 산업과 선박 규모가 성장한 영향이다. 여기에 해운 회사는 전 세계에서 전자 제품·의류·장난감·기타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점점 더 큰 선박을 만들었다. 새로운 해운 기술, 규모의 경제 논리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더 큰 선박은 컨테이너당 건조 및 운영 비용이 더 저렴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운송포럼에 따르면 2011~2021년 동안 컨테이너 선박의 평균 용량은 28% 증가했다. 1990년대에도 컨테이너 선박 용량은 36% 증가한 바 있다.

컨테이너 선박 ‘에버 기븐’(Ever Gived)이 2021년 3월 23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하던 중 수에즈 운하 남측 입구에서 선수와 선미가 대각선 상태로 좌초해 수에즈 운하 전체를 막았을 때 당시 모습. / 구글 지도 갈무리

하지만 선박이 커질수록 정박할 수 있는 항구에 제한이 생긴다. 이에 항구와 운하는 커진 선박 크기에 대응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투입한다. 파나마 운하는 2016년 50억 달러(약 6조7430억 원) 이상을 들여 운하를 확장했다. 미국 동부 해안의 항구들은 큰 선박을 상대로 입항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사고로 폐쇄된 볼티모어 항을 비롯해 마이애미항, 버지니아주 노퍽항구 역시 항구 깊이를 깊게 하려고 준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뉴욕 뉴저지 항만청은 아시아 및 기타 지역에서 화물을 실은 거대 선박을 수용하기 위해 17억 달러(약 2조2926억 원)를 투입해 베이온 다리를 건설했다. 베이온 다리 높이는 215피트(65m)에 달한다.

여기다 선박이 커질수록 거대 해운업체 사이의 경쟁이 제한되고, 세계 공급망이 중단될 위기가 심화한다는 지적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대형 선박을 구매·유지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고,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선사는 규모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일부 선사는 합병됐고, 또 다른 선사들은 선박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동맹에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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