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비밀 병기, 알리와 테무[이철호의 시론]

2024. 3. 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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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中의 과잉생산·실업난·디플레
알·테·쉬 중저가 수출이 탈출구
전 세계 전자 거래 시장 싹쓸이
中企 중저가 생태계 붕괴 심각
美는 인권과 개인정보로 반격
우리도 中 공습 정면 대응할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신년사에서 “일부 기업은 경영 압박에 직면했고 일부 대중은 취업과 생활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다져진 길을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부동산 위기, 실업난, 디플레이션의 삼각 파도에 휩싸여 있다. 외부에선 미국이 디리스킹(탈위험) 칼날을 벼르고 있다. 한마디로 복합골절 상태다. 해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예전처럼 재정을 확 풀자니 정부 빚이 너무 많다. 금리를 화끈하게 내리기도 어렵다. 부동산 거품이 두렵고 미·중 금리가 역전돼 외국 자본 대탈출도 걱정스럽다.

유일한 탈출구가 수출이다. 하지만 반도체·정보기술(IT) 같은 첨단 제품은 서방의 규제에 꽁꽁 묶여 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칩4 동맹을 앞세워 첨단 산업의 목을 조이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도 중국산 제품에 ‘60% 관세 부과’를 공언하고 있다. 중국의 ‘니어쇼어링’ 표적이 된 멕시코는 미국의 ‘멕시코=중국산 유입 뒷문’이란 비난을 가라앉히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다. 중국산 철강 공(鋼球)과 철강 못 등에 잇달아 최고 31%의 반덤핑 관세를 때렸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은 중저가 생활필수품 수출이다. 중국 수출은 1∼2월에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해 뚜렷하게 회복 중이다. 하지만 수출품 평균 단가는 9% 떨어졌다. 그만큼 중저가 제품을 대거 수출한 것이고 그 3대 혈관이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이다. 알·테·쉬의 약진은 시 주석에게 일석이조다. 중국의 과잉 생산을 해소하고 해외로 디플레이션 압력을 빼내는 배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임금이 싼 신장위구르 등 중서부 지역에서 노동집약적으로 생산해 최근 완비한 철도·고속도로망을 타고 대량 수출해 실업률도 낮춰주고 있다. 놀라운 가격 파괴의 비밀이다.

중국이 미국과 유럽의 눈치를 덜 살피는 것도 장점이다. 인플레이션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선진국들은 물가 안정을 위해 값싼 중국 생필품 수입 급증에 눈감고 있다. 지난해 테무의 쇼핑 앱은 3억3700만 건, 쉬인은 2억6194만 건 다운로드 돼 아마존(1억8812만 건)을 압도했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을 싹쓸이할 판이다. 테무가 처음 등장한 2022년 이후 모기업 판둬둬의 주가는 3배나 치솟아 시가총액이 260조 원이나 된다. 비상장인 쉬인도 기업 가치가 120조 원으로 팽창했다. 중국 증시가 죽을 쑤는데도 시진핑 정권이 의도적으로 밀어준 것이다.

유탄을 맞은 전 세계 이커머스 업계는 쑥대밭이 됐다. 이들이 중국 제품을 수입할 경우 관세와 부가세, 인증 비용 등을 부담하지만, 알·테·쉬는 현지 공장에서 해외 소비자에게 직판하다 보니 가격 경쟁에서 게임이 안 된다. 미국의 천원 숍인 달러 트리가 못 견디고 점포 1000개를 폐쇄할 정도다. 올 들어 2개월간 국내 인터넷 쇼핑업체도 2만4035곳이 폐업했다.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도 지난 1월 매출이 9% 넘게 감소해 이마트가 사상 처음 희망퇴직을 실시할 정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온라인을 넘어 실물 경제로 번져 중저가 제조업 생태계마저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의 32.9%가 알·테·쉬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저가 공세에 밀려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먼저 반격에 나섰다. 쉬인이 신장위구르에서 불법 강제 노동을 통한 면화로 의류를 생산한다며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또, 2016년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800달러 이하 국제 우편물에 무관세 혜택을 준 게 알·테·쉬에 빈틈을 열어주었다는 판단 아래 관세 그물망을 다시 촘촘하게 손질할 채비다. 브라질도 룰라 정부가 친중국 성향이지만, 알·테·쉬 공습을 견디다 못해 무더기 반덤핑 관세를 때리고 있다. 미국은 아예 틱톡이 개인정보를 중국으로 유출할 수 있다며 미 국내 사업권을 6개월 내 매각하라는 ‘틱톡 금지법’까지 만들었다.

한국도 더 이상 느긋할 여유가 없다. 알·테·쉬는 중국 내부 문제를 해외로 배출하기 위한 시진핑의 비밀 병기이자 대량파괴무기나 다름없다. 알리익스프레스가 한국에 1조 원을 투자하는 등 알·테·쉬가 대대적인 2차 공습에 나섰다. 국내 중소기업 생태계가 불가역적으로 망가지기 전에 중국발(發) 쓰나미에 정면으로 맞서야 할 때다.

이철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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