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모녀, 진즉 집중투표제 도입했다면 승리했을 텐데

정민하 기자 2024. 3. 2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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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한 이사 수만큼 의결권 주는 집중투표제
한미 임주현·이우현 ‘몰표’했으면 이사회 장악 가능했을 듯
KT&G, JB금융도 집중투표제가 결과 갈라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표 대결 결과를 갈랐다는 평이 나온다. 한미사이언스가 당초 주변 권고대로 이 제도를 적용했다면, 승자가 달라졌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집중투표제는 선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주주가 보유한 주식 수가 100주고 후보가 5명이라면, 한 사람이 총 500표를 행사할 수 있어 특정 후보에 이른바 ‘몰표’를 행사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는 통상적으로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로 쓰인다. 소액주주들이 한명에 몰표를 행사하면 현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사회 의석을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JB금융지주는 이번 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영향으로 행동주의펀드 측에 이사 자리를 내줘야 했다.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 /조선비즈DB

집중투표제는 상법상 임의조항이다 보니 기업 정관에 ‘배제’ 조항을 넣으면 시행이 불가능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산규모 1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중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곳은 KT&G, SK텔레콤, 한국전력 등 3.5%에 불과했다.

한미사이언스 역시 정관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했다. 표 대결을 펼쳤던 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 모녀와 임종윤 전 사장·임종훈 전 한미약품 사장 형제 중 한쪽이 과반 지분을 확보해야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초 모녀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판은 지분 12.15%를 보유한 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형제 측 손을 들면서 바뀌었다. 양측 지분은 각각 42.66%대 40.57%로, 격차가 2%포인트로 줄면서 결과는 소액주주 손에 달리게 됐다.

개표 결과, 임주현 사내이사와 이우현 사내이사 선임안을 비롯한 송영숙 회장 측 추천 이사 6인은 전체 주식의 과반을 득표하지 못해 보통 결의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임주현 사장의 경우 2859만709주(약 48%), 이우현 OCI 회장은 2864만592주(48%)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쳤다. 반면 임종윤 형제 측 주주제안 이사들은 5인 모두 50%가 넘는 찬성표를 얻었다.

만약 한미사이언스가 집중투표제를 채택했더라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주주가 총 10명이고 각각 1주씩 갖고 있다면 이사선임 안건에 총 20표가 행사될 수 있다. 모녀와 형제를 지지하는 주주가 각각 4명, 소액주주가 2명이라고 가정해 보자. 모녀 측 주주 4명이 임주현 사장과 이우현 회장에게만 표를 몰아줘도 적어도 이들은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사회 최대 정원이 10명이고, 모녀 입장에선 이미 기존 이사회에 우군 4명이 있기에 과반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은 집중투표제가 사모펀드 등 투기자본 세력이 이사회를 장악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을 우려해 꺼리고 있다”면서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해 집중투표제 도입 고려는 물론, 소액주주 설득에도 형제 측에 비해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최소 두 명만 선임됐어도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8일 KT&G 주주총회에 참석한 방경만 사장(위쪽). 아래 사진은 지난해 3월 JB금융지주 주주총회에 참석한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가운데)와 김기홍 회장(오른쪽). /뉴스1 정민하 기자

집중투표제는 현 경영진에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한미그룹 외의 사례를 봐도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행동주의 펀드 FCP로부터 공격을 받던 KT&G도 집중투표제로 일부 이득을 봤다. 소액 주주였던 FCP는 자신이 추천한 후보를 선임하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제안했고 회사 측이 수락했다. 그러나 지분율 8.4%의 IBK기업은행이 등장하면서 수혜를 입는 쪽이 KT&G로 바뀌게 됐다. 결국 방경만 사장은 최다 득표를 기록하며 사장 자리에 올랐다. 다만 사외이사는 기업은행이 제안한 손동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선임됐다.

물론 집중투표제는 대체로 소액주주에 유리하다. JB금융 주총에서는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지분율 14.04%)가 제안한 사외이사 후보 2명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얼라인 측은 주총 전 이미 이사회 추천과 무관하게 1명의 사외이사는 선임 가능하다고 점쳤었다. 여기에 소액주주들이 대거 움직이면서 지난해 주총에서 완패한 얼라인이 2명을 선임하게 됐다. 다만 감사위원 등 제도가 적용되지 않은 다른 주주제안은 모두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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