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 걸린 9세 아들 주사만 2900번 찔려···엄마 가슴엔 ‘피멍’이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2024. 3. 29. 1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전성 극희귀질환 ‘CAPS’ 환자 소수지만
원인 모를 발열·고열 반복···염증 전신 침범
2015년 ‘일라리스’ 허가됐지만 건보 미적용
합병증 막기 위해 대체제 ‘키너렛’ 매일 주사
이미지투데이
[서울경제]

“태어난 지 닷새쯤 됐을 때 아이 몸에 빨간 두드러기가 올라왔어요. 하루에 한 번 얼굴과 전신을 벌겋게 뒤덮었다가 사라지는데 어떤 자국도 남질 않는 거에요. 의아했지만 신생아기에 흔히 나타나는 태열 정도로 여겼습니다. ”

올해 아홉살이 된 서경아(가명·여) 씨의 아들은 ‘크라이오피린 연관 주기 발열증후군(CAPS·Cryopyrin Associated Periodic fever Syndrome)’ 환자다. 생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원인 모를 발진이 나타나더니 50일쯤 되던 날 열이 40도 가까이 오른 게 시작이었다. 대학병원에 입원해 수많은 검사를 받았지만 염증·백혈구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높고 헤모글로빈(Hb) 수치가 저하되어 있다는 것 이외에 뚜렷한 원인을 찾진 못했다.

◇ 8년 투병 기간 매일 아들 몸에 주사···“횟수 세보니 2900번 넘어”

아들은 하루에 한 번 39~40℃의 고열과 두드러기 양상의 발진에 시달렸다. 일단 증상이 시작되면 해열제를 먹여도 안 듣는데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정상 체온으로 돌아오고 발진이 사라졌다. 매일 반복되는 증상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떠돌다 1년이 조금 넘어갈 무렵 ‘CAPS 의심’ 소견을 들었다. 유전자검사를 포함해 이름 모를 여러 검사를 거쳐 2016년 4월 5일자로 정식 진단이 내려졌다. 서씨가 하루 한 번 매일 정해진 시간에 ‘키너렛(성분명 아나킨라)’이라는 주사를 아이 몸에 놓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다. 갓 돌이 지난 아들의 몸을 아빠 손에 맡겨 고정시킨 채 팔과 허벅지에 번갈아 주사기를 찌른 지도 곧 8년을 꽉 채운다.

서씨는 “생후 3300일을 겨우 넘긴 아이가 지금까지 주사를 맞은 횟수는 2900번이 넘는다”며 울먹였다. 주사를 맞을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아빠도, 엄마도, 형아도 안 맞는 주사를 왜 나만 매일 맞느냐’는 아이의 울음 섞인 외침은 매일 가슴에 박힌다. 하지만 투약 시간을 조금만 넘겨도 열이 오르면서 온 몸에 발진이 번지는 데다, 염증으로 인한 합병증이 언제 어디에 생길지 모른다는 말에 주사기를 들 수 밖에 없다.

◇ 국내 환자 10명 남짓···2015년 허가 신약, 건보 적용은 감감무소식

이름조차 생소한 CAPS는 국내 환자가 10명 남짓에 불과한 극희귀질환이다. 원인 미상의 발열·발진 등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자가 염증성 질환인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의 일종으로 침범하는 장기와 중증도에 따라 가족성 한랭 자가염증성 증후군(FCAS) 머클-웰 증후군(MWS) 만성 영아 신경 피부 관절 증후군(CINCA)의 3가지 질환으로 나뉜다. 환자마다 조금씩 경과는 다르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근골격계 이상, 아밀로이드증, 청각상실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해 영구적 장기 손상이 발생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CAPS는 NLRP3 유전자 이상으로 체내 염증반응을 조절하는 크리오피린 또는 NLRP 단백질 이상을 초래해 ‘인터루킨-1베타(IL-1β)’라는 염증성 물질이 과다 분비돼 발생한다. 현재로서는 IL-1β를 차단하는 주사제가 유일하게 효과가 입증된 치료방법이다.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 치료제로 미국식품의약국(FDA)·유럽의약품청(EMA) 등 주요 규제기관에서 허가된 약물은 ‘일라리스’(성분명 카나키누맙)가 유일하다. 국내에서도 2015년 허가를 받았지만 건강보험 급여 도전에서 두 차례 고배를 마시며 사실상 투여 길이 막힌 상태다.

◇ 두달에 한번 맞는 주사, 1년 약값만 2억···사실상 그림의 떡

서씨가 아들에게 맞히는 ‘키너렛’은 IL-1β 뿐 아니라 IL-1 수용체를 전부 차단한다. 해외에서는 치료효과와 순응도가 개선된 ‘일라리스’의 등장하자 대다수 환자들이 치료제를 바꿨다. 급여로 사용 가능한 국가는 30여 개국에 달한다. 일라리스는 기존 약과 달리 1회 투여하면 효과가 8주간 지속된다. 매일 60번 맞던 주사를 두 달에 한 번만 맞아도 된다는 얘기다. 미국·영국·독일·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일본·캐나다 등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약가를 참조하는 A8 국가에서 일라리스는 바이알 당 평균 약 1600만 원으로 책정돼 있다. CAPS 환자가 8주에 한 번 두 바이알씩 맞을 경우 1년 약값만 2억 원 가량 든다. 서씨를 포함해 대다수 부모들이 눈물을 머금고 일라리스 대신 키너렛 주사를 매일 아이 몸에 찌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