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셰’ 외친 이재명과 달랐던 和대사[핫이슈]
지난 25일 서울 정동 대사관에서 만난 반 데르 플리트 네덜란드 대사는 접견실에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도 함께 초청했다. 당시는 이미 자하로바 공연이 취소된 때였다. 플리트 대사는 “그 공연은 문화적 침투를 통해 한국에 친러시아 분위기를 조장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하로바를 ‘트로이 목마(Trojan Horse )’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남북한 간 전쟁이 났을 때 유럽이 북한 공연단을 초청한다면 한국인들 기분이 어떻겠나”라고도 했다. ‘논쟁’이 아니라 ‘대화’임을 강조하면서 본인 의견을 정중히 제시했다.
이에 대한 내 답변은 기존에 쓴 내용대로였다. 즉 “한국은 러·북 간 밀착을 막아야 하고, 문화 공연까지 금지하면 러시아가 무슨 짓을 또 꾸밀지 모른다. 한국과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맞닿아 있어 종전 후에도 관계를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문화 교류 정도는 출구로 놔둘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대사가 자하로바 공연은 단순히 문화가 아닌 정치적 사안이라고 거듭 밝히자 “한국 국민은 정치적 맥락을 갖고 공연을 보지 않는다. 순수 러시아 예술과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구별 못할 수준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인상적인 것은 네덜란드 대사가 남의 나라(우크라이나) 일에 관심을 갖고 적극 나섰다는 점이다. 자하로바의 서울 공연이 진행된다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상실감이 클텐데 이번 전쟁에서 서방과 연대해온 한국이 그래선 안 된다고 했다. 러시아에 맞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도우려는 마음이 읽혀졌다. 네덜란드가 유럽연합(EU) 의장국이어서 그런가 물었지만 “의장국은 벨기에”라고 했다. 피침략국을 지원하는 것이 자유세계 국가들의 가치있는 의무임을 대사는 일깨워줬다. 네덜란드는 영토는 작지만 그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 정의로운 목소리를 낼 줄 아는 큰 나라로 느껴졌다. 네덜란드 국민에 대해서도 존경심과 함께 좋은 인상이 그려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켜 땅 한 평 더 빼앗는다고 해서 국제사회 존중을 불러오지 못한다. 푸틴은 전쟁을 즐기고 있는지 모르지만 국제여론은 러시아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해외에 사는 러시아인들은 찬밥 신세다. 침략국 백성을 누가 가까이 하겠는가. 이는 사람 관계와도 똑같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성과 품격이 없으면 그를 우러러보지 않는다. 돈과 힘 자랑은 천박하다고 여겨질 뿐이다.
이 대표의 농담 섞인 발언 내용의 진위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글로벌 이슈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진정한 연대는 어렵다는 것이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침묵만 해서는 나만 아는 이기적인 나라로 비칠 것이다. 반면 불의에 함께 맞서는 한국 이미지는 우리 기업과 국민의 대외 활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 대표 ‘셰셰’ 발언을 해외에서 평가해주는 것은 중국 매체일뿐이다. 아마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 뉴스를 접한 뒤 한국 제1 야당 대표 수준을 냉소하며 혹시 많은 한국인들도 저럴까 하며 걱정할 것이다.
네덜란드 대사의 헌신적 모습은 그 나라와 국민 이미지까지 긍정적으로 만들었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도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해외에서 사업하고, 공부하고, 여행가는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보다 나은 대접을 받는다. K팝이나 K반도체도 중요하지만 타국 사정을 감안할 줄 아는 외교 기술도 필요하다. ‘다른 나라 일이 뭔 상관이냐’며 모르는 채 우리 이익만 좇아서는 국가 평판과 장기적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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