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똥배짱, 뒷배는 미국과 한국?

정인환 기자 2024. 3. 2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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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가자의 참극]유엔의 ‘즉각 휴전 결의’ 나왔지만 ‘구속력 없다’고 말하는 미국과 한국… 결의가 통과된 3월25일 구호품 받는 주민 등 향한 이스라엘 공격 계속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즉각 휴전’을 결의한 2024년 3월25일에도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 구급대원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다친 주민을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알발라의 알아크사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구촌의 평화와 안전 유지를 책임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즉각 휴전하라고 결의했다. 유엔 헌장 제25조는 회원국에 안보리 결의 이행을 의무로 규정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역에서 폭격과 교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인도주의적 지원 확대, 민간인 보호…

2024년 3월25일 안보리가 채택한 결의 제2728호는 A4용지 단 1쪽 분량이다. 안보리 결의치고는 이례적으로 짧다. 안보리는 결의에서 크게 세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라마단 기간(3월10일~4월9일) 동안 가자지구에서 즉각 교전을 중단하고 항구적이고 지속 가능한 휴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했다. 둘째,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모든 인질 석방을 요구했다. 셋째, 모든 구금 대상자에게 국제법이 정한 의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안보리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긴급히 확대하고, 가자지구 전역에서 민간인 보호를 강화하고, 국제인도주의법과 안보리 결의 제2712호와 제2720호에 따라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모두 제거하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안보리는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다.

결의안은 10개 비상임이사국(선출직 이사국·E-10)이 마련했다. 표결 결과 상임이사국(P-5)을 포함한 안보리 15개 이사국 가운데 14개국이 찬성표를 던졌다. 앞선 세 차례 휴전 촉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미국은 기권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표결 직후 “하마스에 대한 비난이 빠졌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결의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결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밝혔다. 대체 무슨 말일까?

“역사적인 날이다. 가자지구에서 즉각적인 휴전과 납치된 인질의 조건 없는 석방을 요구하는, 그간 절실하게 필요했던 결의를 안보리가 성공적으로 채택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모든 당사국이 오늘 채택한 결의를 충실히 이행해, 고통받는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3월25일 유엔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페드로 코미사리오 주유엔 모잠비크 대사는 결의 채택 직후 E-10 차원에서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토머스그린필드 대사가 ‘구속력 없는 결의’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유엔 헌장에 따라 모든 안보리 결의는 법적 구속력을 가지며, 유엔 회원국은 반드시 이를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견이 없는 건 아니었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가 불쑥 마이크 앞에 섰다.

“법률적으로 말한다면 법적 구속력이 없을 수 있다. 유엔 헌장에 따라 모든 안보리 결의는 법적 구속력이 있고 이를 이행해야 하지만, 이번 결의는 ‘결정한다’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안보리 결의 이행을 위한 강제 규정을 담은) 유엔 헌장 제7장도 발동하지 않았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구속력이 없을 수 있지만, 도덕적으론 결의가 국제사회의 합의를 담고 있으므로 이행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알리바이’ 만들어놓는 발언

미국 쪽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발언이다. 국내적 반전 여론과 국제적 비판 여론에 떠밀려 거부권 행사는 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쪽이 결의에 따르지 않더라도 안보리 차원의 제재를 피할 ‘알리바이’를 미리 만들어놓은 셈이다. 황 대사가 채 마이크에서 물러나기도 전에 코미사리오 대사가 다시 나섰다. 그는 “모든 안보리 결의는 법적 구속력이 있으며, 회원국은 이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코미사리오 대사는 국제법의 성문화를 위해 유엔 총회가 1948년 설립한 국제법위원회(ILC)에서 15년간 활동하며 위원장까지 지낸 국제법 전문가다.

뒤에 서 있던 마이클 임란 카누 주유엔 시에라리온 대사도 말을 보탰다. “(유엔 총회에서 법적 문제를 다루는) 제6위원회에서 5년간 활동한 법률가로서 말한다. 안보리 결의는 법적 구속력이 있다. 내 개인 의견이 아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1971년 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나미비아 위임통치를 불법으로 규정한 안보리 결의 제276호의 법적 구속력을 인정한) 권고의견에서 명확하게 밝혔다.”

안보리가 결의를 채택한 직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 “이번 결의는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 이행하지 않는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스라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파상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결의가 통과된 3월25일 오후 12시25분께 가자시티 동부 카니 건널목 부근에서 공중에서 투하된 구호품 회수를 위해 모여 있던 주민 다수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죽거나 다쳤다. 저녁 8시25분께에는 가자시티 알시파병원 인근 주거단지가 폭격을 당해 주민 5명이 숨졌다. 또 밤 9시20분께는 가자시티 알쿠와이티 교차로 부근에서 구호품 배급을 기다리던 주민 2명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결의가 통과된 3월25일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라히야 해안에선 공중투하된 구호품을 회수하기 위해 굶주린 주민들이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었고, 12명이 익사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3월27일 펴낸 최신 상황보고서를 보면, 3월25일부터 27일 정오까지 만 이틀 사이에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157명이 숨지고 195명이 다쳤다. 이로써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3월27일까지 가자지구 사망자는 3만2490명, 부상자는 7만4889명까지 늘었다.

개전 이후 가자지구 사망자 3만2490명

‘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및 침략행위에 관한 조치’를 담은 유엔 헌장 제7장(39조~51조)은 경제제재와 무력 사용을 포함한 안보리 결의 이행에 필요한 강제 규정을 담고 있다. 라마단이 채 끝나기 전(4월7일) 전쟁은 6개월째를 맞는다. 결의 제2728호 이행을 위해 안보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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