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핵심부 ‘투톱’ 이러니 지지층 분열할 수밖에

한겨레21 2024. 3. 2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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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무 사퇴, 이종섭 자진 귀국으로 윤-한 갈등 봉합되는 듯 했지만… 한 위원장 의료 공백 중재 실패하며 보수층 술렁술렁
윤석열 대통령이 3월22일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9회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을 마치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런 대통령-여당 관계는 처음이다. 물론 현안 대응이나 선거 전략, 공천을 놓고 여당과 대통령 권력이 갈등하는 일은 늘 있었다. 그러나 그 내막이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은 거의 없었다. 이종섭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대사 논란은 선거를 코앞에 둔 여당이 안고 가기 힘든 악재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끊어내야 한다. 이 경우 대통령은 못 이기는 척 여당 요구를 수용하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다.

불쾌감과 배신감 토로했다는 대통령

그러나 대통령은 오히려 발끈했다. 2024년 3월14일 대통령실은 <와이티엔>(YTN)에 이종섭 대사 논란이 커진 데 대해 “야당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일부 좌파 언론이 결탁한 ‘정치 공작’”이라 했고 “세 축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덫을 놨다”고 했다. 대통령 의중이 반영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표현이다. 같은 날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도 직접 <에스비에스>(SBS)에 출연해 이종섭 대사에 대해 출국금지 조처한 공수처를 비난했다.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 역시 이날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왔다. 용산이 직접 언론 대응을 시작한 것이다.

이에 앞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월12일 “공수처가 더불어민주당하고 선거와 관련해 서로 의사소통하고 있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3월14일 용산발 주장의 예고편 같은 말을 기자들 앞에서 했다가 발언을 취소했다. 용산이 맡긴 임무를 수행하려다 호응이 시원찮아 실패한 것일까? 윤 대표는 2024년 1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둘러싼 대응을 놓고 지도부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을 때도 “사건의 본질은 부당한 정치 공작”이라며 용산의 입장을 대변했다.

어쨌든 이종섭 대사, 황상무 전 수석 등의 문제로 발생한 윤석열-한동훈 2차 갈등은 논란의 발언이 나온 지 엿새 만에 이뤄진 황 전 수석의 사퇴와 3월20일 이 대사의 억지스러운 자진 귀국 발표로 봉합되는 듯했다. 하지만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후보 공천에 관해 마지막 ‘윤핵관’이라는 이철규 의원이 시위성 기자회견을 열면서 앙금이 남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주기환 전 국민의힘 광주광역시당 위원장이 당선권 밖인 24번을 받은 데 반발해 사퇴한 것에,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이미 나오던 차였다.

가령 <중앙일보>는 3월21일 “18일 비례대표 후보가 공개되기 10여 분 전에야 명단을 받아본 윤 대통령은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윤 대통령이 비례대표 명단을 본 뒤 ‘내가 사람을 너무 믿었다’는 취지로 배신감을 토로했다는 말도 들린다”는 여권 관계자의 발언도 전했는데, 여당 비례대표 공천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이 거의 실시간으로 언론에 전해진 건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대통령이 국회 입성에 실패한 주기환 전 위원장을 민생특보로 임명하면서 이 국면은 일단 마무리됐는데, 누가 봐도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찍힌 모양새다.

한강은커녕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다?

권력 핵심부 ‘투톱’이 이러니 지지층은 분열할 수밖에 없다. 보수 유튜버들이 이번 논란을 빌미로 한동훈 위원장을 공격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을 위해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리는 배신자라는 논리다. 이종섭 대사, 황상무 전 수석 논란에 더해 도태우·장예찬 후보 공천 취소 결정까지 같은 맥락에서 다룬다고 한다. 이러니 핵심 지지 기반인 영남에서도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강은커녕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공천 갈등이 화제일 때만 해도 국민의힘은 ‘135석 플러스알파’를 전망했다. 그러나 이종섭 대사 논란이 불거지고 나서는 120석을 걱정했고, 최근에는 “100석도 위태롭다”는 표현이 보수언론에도 공공연히 등장한다. <조선일보> 3월27일치 5면 기사 제목은 ‘與도 野도 술렁거린다… 범야권 200석론’이다. ‘범야권 200석론’이 황당하거나 괘씸하다는 투가 아니다.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읽힌다.

여당의 대응은 고식적이다. 보수층이 분열하니 보수층이 좋아할 만한 걸 던져주면 되지 않겠느냐는 태도다. 한 위원장이 대구를 방문해 ‘범죄자 연대’와 ‘종북’을 막자며 힘을 모아달라고 한 게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태도의 화룡점정은 3월26일 한 위원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이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당정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취지의 조언을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배신의 정치’란 유행어를 남긴 이력이 있는 인물이다보니,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민심을 정확히 전해야 한다는 얘기보다는 대통령에게 괜히 대들지 말라는 지적을 한 게 아닌가 싶은 대목이다.

보수층이 분열하니 보수층이 좋아할 만한 걸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4년 3월2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대구 박 전 대통령 자택에서 박 전 대통령과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연합뉴스

한동훈 위원장은 이날 예방을 마치고 기자들에게 “굉장히 좋은 말씀을 들었다” “따뜻한 말을 많이 해주셨고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2018년 국정농단 재판을 할 때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로 법정에 직접 나와 이례적으로 구형문을 직접 읽었던 사실을 아는 유권자에게 이날의 장면은 그로테스크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수층에 속하는 일부 유권자의 결집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선거 전반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는 좀 의문이다.

수도권 출마 후보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거다.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윤재옥 원내대표(대구 달서을 출마)가 3월26일 “더 이상 이 나라를 범죄자들과 종북세력에게 내주지 맙시다”란 문구의 펼침막 게시를 전국 시도당에 ‘긴급 지시’했다가 수도권 중심의 반발에 부딪혀 철회한 것에서 이런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수도권 후보들은 고물가 등 민생 문제가 핵심인 상황에서 이념 논쟁을 전면화하면 오히려 역풍이 불 것을 우려했다는데,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한 위원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에 대해서도 비슷한 지적을 할 만하다.

한 위원장, 의료 공백 중재에 나서봤지만

이런 상황에서 한동훈 위원장이 의료 공백에 중재자 역할을 맡겠다 나서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에 호응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것은 나름대로 다른 방향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한 위원장은 3월24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회장단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뒤 “이탈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유연하게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강경한 분위기이던 대통령실은 곧바로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의 요청을 수용했다고 발표했다.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에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하고 의료계와 대화 협의체를 구성하라고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지시했다는 거다.

여기서는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다. 윤석열-한동훈 갈등은 완전히 수습됐고 한 위원장 위주의 현안 대응에 용산도 동의한다는 신호를 발신하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당 안팎의 요구를 수용해 ‘민생’을 중심에 놓는 전략으로 전환하겠다는 바를 천명하는 것이다. 민생에는 실로 많은 것이 포함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의과대학 정원 증원 논란으로 인한 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민생을 챙기겠다고 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 한 위원장이 호기롭게 ‘중재자’를 자처한 것은 좋았지만 의사들이 문제 삼는 ‘의대 증원 규모 2천 명’을 대통령실이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 대목에서도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게 됐다. 안철수 의원 등 지역구 후보들은 증원 규모를 줄이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언론을 통해서도 의료계가 수용할 만한 다양한 절충안이 제시되지만, 냉정하게 말해 대학별 배정까지 이뤄진 지금에 와서 의대 증원 규모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대통령실은 ‘2천 명’에 대해 지금까지 오직 ‘원칙론’으로 승부해왔다. 대통령실의 서사에서 지금 후퇴하면 ‘원칙’을 저버리는 일이 된다.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한 위원장이 ‘의료 공백’이 악재가 된다고 판단하는 후보들의 요구를 수용해 대통령실을 압박하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도 저도 안 되니 민생의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는 건 결국 ‘개발 이슈’다. 한 위원장은 3월27일 국회를 완전히 세종시로 이전하고 서울 여의도와 그 주변의 개발제한을 다 풀겠다며 “4월10일은 여의도 정치를 끝내는 날, 미래 정치를 시작하는 날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행정수도 완성 차원에서 국회 이전은 필요한 일일 수 있지만, 선거를 코앞에 두고 ‘개발제한 해제’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말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못 알아들을 사람은 없다. 과거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 용산 통개발’ 발언을 했다가 서울 집값이 치솟자 발언을 수정했던 전례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정부가 유권자 보수화를 우려해 집값을 일부러 올려 집을 소유하지 못하게 한 거라는 음모론을 주장했는데, 지금 여당도 같은 맥락에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통령 하야 시나리오 거론하는 보수 언론

‘민생’의 이름으로 유권자 욕망에 호소하는 이런 카드도 큰 효과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조선일보> 김대중 전 주필 칼럼에 힌트가 있다. 김대중 전 주필은 이번 총선 결과 여소야대 구도가 유지되면 윤 대통령은 제대로 뜻을 펼칠 수 없다며 “그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더 이상 이름뿐인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 나라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그의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윤 대통령이 스스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아무리 미워도 투표하라는 메시지를 보수층에 준 셈이다.

마침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후보와 지지자도 ‘200석’을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이재명 대표는 사실상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선명성 경쟁 구도를 의식했는지 연일 ‘탄핵’을 연상케 하는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보수의 마지막 무기는 끝내 전장으로 나올까? 아니, 좀더 솔직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게 과연 정치고 선거인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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